창비주간논평
노인 자살과 대학 등록금
김종엽 / 한신대 교수
이달 초 대출 학자금을 갚기 위해 냉동설비 수리공으로 일하던 스물두살 청년이 한 대형마트의 작업장에서 질식사했다. 다른 한편 이달 중순경에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의무부양자 조사가 강화되면서 수급대상에서 제외된 노인이 자살한 일이 벌어졌다. 두 사건은 한 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대변하는 노인과 청년이 우리 사회의 현재 속에서 어떻게 포박되어 있는지 또렷이 보여주는 것 같다.
현재 우리 사회의 노인집단은 일제 식민지 치하 말기에 태어나 전쟁과 독재를 겪으며 힘겹게 살아오면서도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세대다. 그들이 이룩한 사회적 발전의 성과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늘어난 기대수명이다. 1960년대 52.4세에서 2011년에 와서 80세로 극적으로 상승한 것이다. 기대수명의 상승이 군사적 안전, 범죄 통제, 보건의료체제, 냉장고나 안전벨트로 대표되는 사회적 기술체제, 소득과 복지 그리고 사회적 평등도 등 사회 전반의 근대화와 체제정비에 의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압축적인 발전을 이루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한강의 기적' 뒤에는 세계 최고 노인 자살률이
하지만 이런 발전의 성과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노인 자살률이다. 우리 사회의 자살률은 잘 알려져 있듯이 OECD 국가 가운데 1위지만, 그렇게 우리를 1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노인 자살률이다. 70대 이상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는 OECD 대다수 사회보다 적게는 10배, 많게는 15배가 넘는 자살이 벌어지고 있으며, 우리에 이어 자살률 2위를 기록한 헝가리의 70대 이상의 자살률에 비해서도 2배가 넘는다. 우리 사회는 애써 늘린 수명을 자살로 마감하도록 노인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자살한다는 노부부의 마지막 말에서는 빈곤과 질병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무능한 자식에 대한 연민 혹은 자신들을 외면하는 자식조차 감싸는 최후의 안간힘이 전해진다.
이들 노인의 자살 소식은 방대한 사각지대를 가진 국민연금, 그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서 만들어진 기초연금제도의 초라함, 의무부양자 조사를 강화함으로써 입법 취지를 왜곡하는 관료적 복지전달체제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노인 자살은 이런 허술하고 비열한 제도를 향해야 할 공격성이 방향을 잃고 자신에게 향한 것과 다름없다.
빈곤과 절망의 덫에 빠진 청년세대
다른 한편 청년집단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태어난 행운을 누렸지만, 압제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을 빈곤과 착취로부터의 사회적 해방으로 확산하지 못한 폐해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이들은 어린시절 외환위기를 경유하며 양극화와 저성장 속으로 떠밀려들어온 최초의 세대다. 중하층의 자녀는 부모가 가지 못했던 대학에 진학했지만, 휴·복학을 거듭하며 쌓여가는 등록금 빚을 미래의 좋은 직장과 임금으로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전혀 없다. 입시경쟁에서 성공한 부유층 출신 명문대 학생들도 삶이 뼈아프기는 마찬가지다. 부모의 면밀한 입시관리 속에서 성장했고 여전히 부모의 부에 의존해야 하는 것을 너무 잘 아는 이들은 자신보다 학벌 좋은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조종당한다는 열패감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다수가 대학시절에는 '알바'라는 이름으로 저임금의 3D업종에서 일한다. 부모의 형편이 좀 나아 등록금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학생도 그들을 포획하다시피 한 소비주의의 힘 때문에 용돈 부족에 시달리며, 비교적 안전하지만 임금이 낮은 편의점에서 일한다. 하지만 등록금을 상당부분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학생들은 더 많은 임금을 위해 산재보험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위험한 일터로 떠밀리고 때론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재가 미래의 보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졸업 후에는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에 취업함으로써 직업이 아니라 '알바'라는 이유로 받아들였던 생활을 반복하게 된다. 이들은 낮아진 출산력의 부담을 그대로 떠맡아 현재 청장년층의 노후를 짊어져야 하고, 노년이 되면 지금의 쥐꼬리 같은 기초연금과 다름없이 되어버릴 국민연금을 수령하게 될 예정이다. 이들은 분노해야 할 상황에 있지만 분노도 힘에 겨워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책에서 위로를 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87년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이 두 집단의 현재 모습은 박정희식 발전국가체제에 신자유주의적 체제를 뒤섞은 형태로 존재하는 경제체제와 그것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이 입증되었음을 말해주거니와, 범위를 보육과 주택, 그리고 자영업 문제로 넓혀보면 그 양상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2012년 총선과 대선이 MB정부의 실정을 심판하거나 MB정부 아래서 벌어진 민주주의 후퇴를 극복하는 것 이상의 과제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87년체제의 한계를 87년체제의 긍정적 자원인 민주주의의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최근 백낙청 교수는 한 글에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맞이함에 있어 “원(願)을 크게 세우자”고 제안한 바 있다(〈'2013년체제'를 준비하자〉, 《실천문학》 2011년 여름호). 그렇게 원을 크게 세워야 하는 이유는 현 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를 정치공학적인 것에 한정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어차피 한나라당조차 수행하게 될 '반MB'에 매몰되지도 않아야 한다. 한나라당의 강력한 차기주자 박근혜의 약점 따위에 연연해서도 안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속 불가능해진 현 체제를 명예롭게 장사 지내고 새로운 체제를 출범할 용기와 능력을 갖추고 그것을 대중에게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2011.7.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