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류우익 통일부 장관에게 바란다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류우익 신임 통일부 장관을 환영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기 바란다. 통일부 장관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아니라, 차라리 없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나는 류우익 내정자가 이명박정부에서 처음으로 통일부 장관다운 장관이 되기를 바란다.
통일부로 출근하게 되면, 제일 먼저 대회의실에 걸려 있는 역대 장관들의 사진을 볼 것이다. 1969년 2월 초대 신태환 장관부터 34명이다. 현인택 전임 장관처럼 통일부를 자진 폐업시키려고 했던 이도 있지만,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도 적지 않다. 엄혹한 냉전시대에도 남북대화를 준비하고 제도와 법을 만든 선배들에게 영감을 얻기 바란다. 먼 훗날, 존경받는 통일부 장관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남북관계 개선 없이 가스관 연결은 불가능
가스관 연결사업, 좋다. 사할린의 가스가 북한을 통과해서 한국에 공급된다면, 남·북·러 모두에게 이익이다. 한·러, 북·러가 합의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남북이다. 그래서 블라지보스또끄에서 가스관 연결사업을 의제로 한,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이 결정적으로 간과란 점이 있다. 바로 가스관 사업이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가 가스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남·북·러 가스관 연결사업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90년 한·소 수교 직후부터 철도와 가스관 연결사업은 양국의 핵심 현안이었다. 1992년 7월 김달현 북한 부총리가 서울을 방문했을 때, 남·북·러 모두 이 사업의 추진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후 20년이 흘렀다. 그런데 왜 실현되지 않았을까? 남북관계 때문이다. 가스관 연결사업은 안정성이 보장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남북은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
과거와 다른 점도 있다. 한·러 양국의 합의는 더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관계는 최악이다. 가스관 연결사업만 별도 의제로 삼아 남북대화를 열 수 있을까? 그것은 이명박정부의 일방적 희망에 불과하다. 서해에서 대포를 뻥뻥 쏘고, 남북을 잇는 모든 길들이 끊기고, 그리고 여전히 남북경협을 퍼주기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가 정부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가스관만 달랑 이을 수 있겠는가? 꼼수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바란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정수가 필요하다.
금강산 관광 재개가 관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스관 연결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 핵심은 금강산이다. 그것이 남북관계의 문을 여는 입구다. 왜 그런가? 금강산은 이산가족들의 만남의 공간이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은 중단된 남북관계의 문을 열어왔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남북대화(1971)가 바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상황에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지 않은 채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기란 어렵다. 필자는 정부가 전면적으로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자신이 없으면, 최소한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한 시범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을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관광객 총격사건이 계기가 되었지만, 정부가 선결조건으로 내세운 신변안전과 재발방지 대책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진상조사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수준이 있다. 정부가 관광 재개의 의지만 있으면, 우리 국민이 안심하고 관광할 수 있는 여건과 제도를 마련할 수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져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의 진전도 가능하다. 말로만 보수를 외칠 것이 아니라, 이제는 보수적 의제를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때다. 그 모든 현안의 중심에 금강산 관광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나아가 개성공단을 제외한 모든 남북경제협력을 중단시킨 5·24조치(2010)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조치는 북한에 대해 제재 효과를 거두기보다 우리 중소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교역과 위탁가공업체를 비롯한 중소기업의 한숨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5·24조치의 출구를 모색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과 연계된 금강산 시범관광이 그 들머리가 되었으면 한다.
무엇이 대북정책의 원칙인가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고생'하는 말들이 적지 않다. 그중에 원칙이라는 말이 있다. 류우익 장관 후보자도 원칙을 지키며 융통성을 발휘하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원칙이 무엇인가? 북한이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 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원칙인가? 그런 원칙은 이미 허망해졌다. 기다리는 전략은 실패했기 때문이다. 압박과 제재로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북핵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북중 경제협력이 남북 경제협력을 대체했다.
기다리는 전략의 핵심에 '북한 붕괴론'이 있다. 대화를 하고 싶은가? 그래서 가스관 연결사업을 성사시키고 싶은가? 그러면 우선적으로 통일부에서 붕괴론의 흔적부터 지워야 한다. 지금도 남북협력을 위해 조성된 국민의 세금이 급변사태 대비 연구로 낭비되고 있다. 대화를 하려면 최소한 칼은 내려놓아야 한다. 붕괴론과 남북대화는 양자택일의 문제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대북정책의 원칙은 평화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유일한 원칙이다. 현인택 전임 장관은 무능한 이념의 전사였다. 필자는 새로운 장관이 유능한 통일부 장관이 되었으면 한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다. 그것이 과도한 요구라는 점도 안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임기에 역대 보수정부들이 남북관계에서 이룬 성과라도 따라잡기를 원한다. 올바른 원칙으로, 대화의 입구를 정확히 찾아서,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관문들을 통과하면 그곳에 가스관 연결사업이 기다릴 것이다. 제발 성공하기를.
2011.9.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