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묻는다
김석철 / 명지대 건축대 명예학장, 아키반건축도시연구원장
필자는 반세기 동안 서울에서 살았다. 백만 도시가 천만 도시로 확대되는 엄청난 변화의 현장에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1966년 서울 재개발계획의 책임자로 일했고, 1970년 강남과 여의도의 기반이 된 한강마스터플랜을 담당했으며,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을 계기로 '서울 600년 비전플랜'을 만들었다. 200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서울을 주제로 '서울 2010년 계획'을 발표했고 2010년에는 서울 디자인한마당에서 '서울디자인캐피털시티' 전시를 주도했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우리 정치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과 다른 방향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후보들에게 정치인, 행정가로서의 비전과 책략을 묻고자 한다. 여덟개의 질문을 통해 유권자와 후보자들 간 토론의 장이 열었으면 하는 것이다.
도시경영의 원대한 비전과 구체적 책략을
첫째로 얼마동안 시장을 하려는가 묻고 싶다. 이번 선거는 2년 반의 임기를 위한 보궐선거다. 2년 반만 할 것인지 다음 선거에도 출마해서 6년 반을 할 것인지를 먼저 말해야 한다. 재임기간에 따라 공약이 다를 수밖에 없다. 2년 반이라면 전 시장이 잘못했던 것을 바로잡고 하던 것을 잘 마무리하는 데만도 바쁜 기간이다. 그러나 6년 반을 생각하고 있다면, 6년 반 동안 이룰 수 있는 도시경영과 도시건설의 구체적 방안을 보여야 한다.
둘째 질문은 광장과 시장에 대한 것이다. 세계도시에 비해 서울에는 시민광장과 재래시장이 거의 없다. 시민광장과 재래시장은 도시의 꽃과 같은 곳이다. 여의도광장을 공원으로 만들었지만 시민들과 연결되지 않은 우범지대가 되어 있다. 광화문광장은 20만 인구가 사는 '사대문안 서울'만의 광장이다. 장충단공원과 국립극장, 시청광장과 을지로, 여의도공원과 국회광장, 예술의전당과 대법원을 연결하는 등 기왕의 도시구조를 개선하면 빠리의 샹젤리제와 모스끄바의 끄렘린광장 못지않은 천만 도시 서울의 시장과 광장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먼저 쉽게 할 수 있는 일로는 주말과 공휴일에는 빈 공간이 되는 초·중·고등학교 운동장에 냉난방 장치를 장착한 반경 2m의 우산을 50개쯤 늘어놓아 전천후 광장과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두가지를 다 해볼 생각이 있는가?
셋째, 서울에서 가난한 사람은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덥게 지내고 부자는 따뜻하고 시원하게 살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열 손실이 많은 집에 살기 때문이다. 열은 문과 창과 벽을 통해서 들어오고 나간다. 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단열과 통풍이다. 열 손실이 많은 홑벽과 바람이 지나다니는 창과 문을 고치는 어반 인테리어(urban interior)는 수요가 엄청나기 때문에 1000가구를 단위로 매뉴얼을 만들어 집행하면 집집마다 개별로 하는 공사비의 3분의 1 비용으로 저소득층도 부자 못지않게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건축가와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을 마음이 되어 있는지?
쏘프트 인더스트리와 관광인프라 구축
넷째는 서울의 대졸실업자와 은퇴지식인을 고용할 수 있는 쏘프트 인더스트리(soft industry) 대책이다. 서울은 도시산업이 쇠퇴하고 써비스산업이 위주인 소비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뉴욕의 쏘호(Soho)는 세계 최강의 의류제조업을 가진 디자인씨티고 타임즈스퀘어(Times Square)는 최고의 흥행성을 가진 엔터테인먼트씨티이며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이다. 서울에 도시산업을 위한 강력한 재정지원과 인재발굴이 이루어져야 한다. 서울의 경쟁력과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쏘프트 인더스트리에 대한 복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다섯째,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단체관광객을 위한 관광인프라 구축이다. 중국과 일본의 대규모 관광객이 머물 곳이 없다. 관광객의 3분의 2가 사대문 안으로 모이는데 사대문 안의 땅값이 너무 비싸 호텔이 들어서지 못한다.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에 있는 재동·교동초등학교와 대동세무고등학교 자리에 고밀도 한옥 호텔군을 세우면 그들을 수용할 수 있고 인사동보다 큰 전통시장을 만들 수 있다. 기존 법규와 조례로는 어려운 일이지만 시장선거의 공약이라면 실현할 수 있다. 뉴욕에 쎈트럴파크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선거와 언론의 힘이었다. 무상급식이나 한강르네쌍스 축소, 강남북 균형발전 등은 새삼스럽게 공약으로 들고나올 사안도 못 된다. 당장 할 수 있는 서울의 관광인프라 확충방안을 듣고 싶다.
여섯째는 서울시가 앞장서고 있는 초고층 유리건물에 관한 것이다. 초고층 유리건물은 기본적으로 반환경적일 수밖에 없다. 유리상자인 서울시청에 이중삼중 차열(遮熱) 장치를 한다지만 건물의 외피가 유리로 되어 있는 한 강렬한 빛이 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없고 차단된 열은 반사되어 도시를 덥게 한다. 초고층 유리건물이 들어설수록 서울의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이산화탄소가 늘게 마련이다. 용산의 대규모 유리 초고층단지가 서울시 허가 하에 이미 시행에 들어갔다. 선진국과 같이 초고층건축에 초과에너지세금을 부과하고 탄소 포집(捕集)과 산소발생을 의무화하여 용산의 초고층단지가 거대한 숲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지?
역사에 남을 서울시장이라면 시도해볼 만한 사업
일곱째는 '사대문안 서울'을 역사도시구역으로 특구화하는 일이다. 이는 행정구역 개편을 요하는 복잡하고 힘든 일이지만 시장이 공약으로 내세우고 강력히 추진해볼 만하다. 서울에 오는 사람의 대부분이 찾는 사대문안을 특구화함으로써 600년 전 정도 당시 서울의 성곽을 복원하는 등 세계적 역사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난개발을 제어하는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사대문안 주민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과 혜택이 당연히 주어져야 하며, '역사특구' 안에서 달러, 유로, 엔화, 위안화 등 국제통화를 (지금 신용카드를 쓰듯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외국인 방문자와 구역내 상인들이 모두 환영할 것이다. 물론 이것도 외환관리법 개정 등 중앙정부의 조처를 요하는 일이지만은 서울시장이 적극 추진할 만한 일이라고 보는데 그럴 용의가 있는가?
마지막 여덟째로, 역시 어렵기도 하고 많은 난관이 있는 사안이지만 역사에 남을 서울시장이라면 한번 시도해볼 만한 사업에 관한 것이다. 개성과 서울은 지난 천년 동안 고려와 조선과 대한민국의 수도였다. 40km 거리에 있는 서울과 개성을 한반도·한민족의 역사회랑(歷史回廊)으로 만들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역사도시구역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한 역사도시구역이 아니고 정치·경제·문화의 각 부문에서 한반도의 중심이자 세계적으로도 손꼽을 거대도시구역의 하나를 이룰 것이다. 이런 일은 대통령이 나서야 할 일 같지만 서울시장이 상징적 남북공동사업으로 물꼬를 틀 수 있는 일이다. 독일 통일이 베를린에서 시작된 것이 좋은 암시가 될 것이다. 남과 북 두 도시간의 역사·지리·인문의 융합을 시도할 용기와 비전이 있는지 알고 싶다.
여덟가지 도시경영 과제 중 앞의 다섯 과제는 보궐선거 후 2년 반 안에 해내거나 적어도 착수할 수 있는 일이고 뒤의 세 과제는 한 임기가 더 필요할 것이다. 두 후보가 치열한 선거과정 중 공약을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화한다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서울의 세계도시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후보 여러분의 답을 듣고 싶다.
2011.10.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