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연말정산이 씁쓸한 까닭
김종엽 | 한신대 교수
다들 12월엔 바쁘다. 해 넘기지 않고 끝내야 하는 일에 바쁘고 송년회로 바쁘다. 12월을 분주하게 하는 일 가운데에는 과세대상이 되는 근로소득 가운데 일부를 공제받기 위한 연말정산도 있다. 연말정산이라는 게 영수증을 모으는 등 부지런을 떨면 꽤 절세가 되니 소홀히할 수도 없지만 은근히 성가신 일이기도 하다. 국가는 손쉽게 원천징수를 하고 공제를 받기 위한 수고는 몽땅 내가 해야 하는 식이라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품을 팔아서 돈을 버는 기분으로 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고 꼼꼼히 챙겨본다.
하지만 그러고 있노라면 다시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해진다. 소득세는 한 국가의 시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데, 그 소득 가운데 특정 용도로 사용된 돈을 과세대상에서 빼준다면, 그 공제 또한 공정성과 연대의 원리에 입각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소득공제 규정들을 따라 연말정산 서류를 작성하다 보면 도무지 어떤 근거를 가진 것인지 납득이 안되는 항목들이 꽤 있다. 그중에는 생각해보면 괘씸하게까지 느껴지는 것도 있는데, 연금저축이 대표적이다.
2001년 이후에 연금저축에 가입한 사람은 연금불입액 가운데 240만원을 공제받을 수 있는 데, 올해부터는 그 액수가 300만원으로 상향조정되었다. 임금소득이 없는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공제액이 각각 100만원이고 부모님을 봉양하는 것에 대한 공제액도 각각 100만원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연금저축에 대한 공제액은 상당히 큰 편이다. 이런 연금저축 공제의 의도는 얼핏 보기에는 선량한 것 같다. 노령화 사회를 앞두고 사람들이 노후생활에 대비할 수 있게 하고 그런 개인의 노후 대비를 위한 노력에 대해 정부가 소득공제의 형태로 지원을 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런 연금저축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이 제도는 소득역진적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이 제도를 이용해 노후도 대비하고 절세도 할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아예 이용도 할 수 없거나 한다고 해도 적은 액수밖에 불입할 수 없어서 공제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소득공제가 이렇게 소득역진적인 형태로 이뤄지는 것은 본래 취지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여기에 더해 이 제도는 사회성원의 미래를 연대의 원리에 입각한 연금제도 안에 통합하는 것을 포기하고 시장에 내맡겨버린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된 맥락을 재구성해본다면 이럴 것이다. 한편에는 잘못 설계되어 기금이 고갈되었거나 고갈 직전이어서 제구실을 할 수 없게 된 골칫덩어리 연금제도를 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국가가 있다. 다른 한쪽에는 부실한 연금에 대한 대중의 불안에 기생해서 보험상품을 더 많이 팔고 싶은 보험회사들이 있다.
보험사는 국가에 이제 사람들 스스로 노후를 책임지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자가보험에 대해 소득공제를 해주자고 부추긴다. 국가는 연금저축을 통해 노년의 불안을 개인적으로 덜어낸 사람들은 자연히 공공연금 부실에 대한 국가 책임을 덜 추궁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 제안을 덥석 받는다. 아마 잘 포장하면 국민들에게 생색마저 낼 수 있다는 달콤한 생각도 한 것 같다. 그리고 보험사는 연금저축이 노후도 노후지만 무엇보다 절세에 도움이 된다고 사람들에게 속삭인다. 이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덜고 절세라는 덤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에 사람들이 이끌리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이 제도가 만들어진 맥락이 고약한 구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것을 통해 상당수 사람들이 혜택을 보기는 본 것일까? 아직 만기가 돌아오지 않아서 연금저축에 대한 총평은 어렵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통계는 이 제도가 대중에게 실익을 안겨줄 것이라 믿기 어렵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질병과 재해와 노후에 대한 불안으로 사보험에 불입하고 있는 돈은 한해 60조원쯤 된다. 그런데 보험사들이 한해에 지급한 보험금은 43조원에 불과하다. 아직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보험금을 염두에 둔다 해도 우리나라 생보사들이 얻는 수익은 한해 십조원을 훌쩍 상회함을 알 수 있다. 부실한 공적보험과 연금 탓에 사보험이 엄청나게 팽창해 있지만, 이윤을 제1원리로 삼는 보험회사들은 보험금 지급에 지극히 인색할 터다. 당연히 다치고 아파도 희한한 약관에 걸려 보험금을 제대로 못 받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흔히 공적부문의 비효율을 이야기하지만 효율적이라는 시장의 댓가 또한 엄청나다는 것을 이보다 잘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보험회사로 흘러들어간 방대한 자금이 어떻게 굴려지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생보사인 삼성생명을 보자. 삼성생명의 매출액은 2003년에 이미 23조를 넘었다. 삼성생명이 보험료로 거둬들인 돈이 삼성그룹 전체의 자금줄 노릇을 하는 것은 물론,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의 핵심고리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우리 사회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의 하나인데, 그 지배력의 한 뿌리가 우리가 낸 보험료인 셈이다. 그의 권력을 쌍수로 환영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입맛 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쓴 가장 큰 문제라면 단연코 부동산이다. 천정부지로 가격이 뛰는 부동산에 흘러드는 돈의 큰 줄기는 부동산 담보 대출금이다. 집 가진 사람이 그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 또 집을 사거나, 집 없는 사람이 살 집을 담보로 융자를 얻어 집을 사고 있다. 그런데 이 부동산 담보 대출의 출처에는 은행만이 아니라 엄청난 자금을 축적한 굴지의 보험사들도 있다. 아마도 보험사 직원은 저금리 하에서 보험금의 수익성을 높여 가입자에게 도움이 되고자 그리했다고 변명할 테고, 그게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의 뒷면에는 우리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서 낸 보험료가 우리를 위협하는 부동산 가격 앙등을 야기하는 원인의 하나라는 사실이 숨어 있다. 건강한 공공부문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회는 이렇게 자기패배적인 제도 속에서 굴러가게 된다. 해서 연말정산이 씁쓸하다.
2006.12.26 ⓒ 김종엽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