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희망의 버스, 세상을 향한 다른 스케치
신유아 / 문화연대 활동가
309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85호 크레인에서 거주했던 시간이다. 김진숙이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한진중공업 노사합의의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것은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을 통해 뜨겁게 소통되었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라는 절망의 늪에서 피어난 새로운 희망 때문이었다.
2011년 4월초 김진숙의 고공농성이 100일이 다 되어갈 무렵 '파견미술팀'은 85호 크레인을 찾아갔다. 100일이 다 지나도록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외치는 정리해고의 문제를 문화적 표현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대형 걸개그림을 크레인에 걸고, 조선소 공장에 버려진 쇳조각들을 용접하여 '85'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여기저기 뿌리며 한진중공업과 김진숙의 이야기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미디어활동가들이 걸개그림을 배경으로 영상물을 제작해 공장건물을 스크린 삼아 상영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희망의 버스'라는 이름으로 소셜미디어와 개인 블로그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희망의 버스가 남긴 것
이들의 작업은 한국판 'Occupy'(점령)운동의 시발이 되어 다양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것이 모여 『깔깔깔 희망의 버스』라는 책과 사진집 『사람을 보라』가 출간되었다. 영화인 1543인 지지선언이 있었고 5개 국어로 번역한 소책자도 제작되었다. 어린이책 작가모임은 전국의 해고노동자 자녀들에게 책을 보내주었으며, 인디밴드들은 음향장비를 챙겨와 개성적인 공연을 펼쳤다. 5차 희망의 버스를 준비하면서 작가들은 85개의 '소금꽃 작업실'을 운영했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작업을 공유하고 하나의 의제로 모아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문화예술인들의 작업은 과거 집회 및 시위의 도구에 그쳤던 문화가 아니라, 다양한 참여와 새로운 행동 방식을 이끌어냈고, 쇠파이프와 화염병 이상으로 힘을 발휘하는 강력한 표현으로서 문화적 저항의 의미를 담았다.
1차 희망의 버스는 온라인 까페를 통해 알려졌다. 청주와 군산에서는 희망의 버스 탑승객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고, 순천에서는 의료진이 희망의 버스에 탑승했으며, 전국에서 수백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희망의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음식을 나누고, 책을 나누고,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가자들은 일상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드러냈고, '무지개버스' '장애인버스' '퀴어버스' 등으로 연대하기도 했다.
다양한 문화실험과 새로운 저항 양식
이들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나뉘지 않았으며,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는 주체적 표현을 보여주었다. 여느 집회에서 보아오던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문화, 법제도의 틀에 갇혀버린 무기력한 저항의 문화를 넘어 유쾌하고 평화로우면서도 참여자 모두가 주체화되는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문화의 장이 열린 것이다. 희망의 버스는 1인시위의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진중공업 본사 앞에 라디오부스를 만들어 온·오프라인으로 전국에 생방송을 했으며, 24시간 1인 릴레이 시위를 1시간 단위로 진행하기도 하고, 유모차를 끌고 조남호 회장의 집 주변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엄숙주의와 패배주의를 넘어 발랄하고 유쾌한 저항과 연대를 상상하려 한 '깔깔깔'은 희망의 버스가 추구하고자 했던 가장 아름다운 표현일 것이다.
희망의 버스는 부문과 지역을 넘어 전사회적인 연대의 문화를 실험했으며 복지담론을 넘어 노동의제를 사회에 전면화했다. 특히 IMF 이후 만연한 기업 구조조정의 핵심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이 사안이 노조의 울타리를 넘는 모두의 문제임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 모두 소금꽃이다") 이제 희망의 버스는 당면한 생존권 및 정치적 요구의 관철을 넘어, 새로운 사회적 관계와 윤리 그리고 사회운동의 주체의 형성과 구조를 조직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새로운 사회를 희망하는 총체적인 문제제기로서 희망의 버스가 기록되어야 한다.
희망의 버스 운동은 한진중공업이라는 단위사업장의 최종 합의안의 내용을 넘어 309일간에 걸친 김진숙과 그의 동료들의 강인한 저항과 이에 공명한 폭넓은 사회연대의 과정이었다. 이 운동은 김진숙과 85호 크레인이라는 구체적인 대상, 그리고 여기에 접속하는 수많은 다중적 주체들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영토에서 비정규직·정리해고의 문제가 소통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자율적인 문화예술인으로 거듭나는 축제의 장이 생성되었다.
희망의 버스, 더 많은 희망을 꿈꾸며
이제 희망의 버스는 또다른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희망의 버스는 우리 사회의 절망이 존재하고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다. 그것은 노동현장을 찾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일 수도 있고, SNS의 영토를 횡단하는 디지털 연대일 수도 있으며,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축제일 수도 있다. 그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사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사회적 모순에 저항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 떠나는 희망의 버스 운동이 계속적으로 공진화(共進化)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2011.1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