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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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한‧러 가스관사업과 동북아 경제

권원순 / 한국외대 교수, 경제학부

 

최근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 파이프라인을 통해 국내에 도입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는 국제 천연가스시장의 동향을 살펴볼 때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국제 천연가스시장은 일본의 대지진 이후 급변하고 있다. 후꾸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은 발전용 천연가스 수요를 확대했고, 일부 유럽 국가들은 원자력발전의 단계적 중단을 선언하며 이를 대체할 에너지자원으로 천연가스를 주목하면서 자원확보에 나서고 있다. 또한 중국과 인도 같은 이머징마켓(emerging market) 국가들의 경제발전과 함께 이 지역에서의 천연가스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와 함께, 천연가스는 화석연료지만 연소과정에서 오염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점도 천연가스 수요 증대에 한몫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의하면 천연가스에 대한 수요가 2035년에는 1조 8천㎥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천연가스 최대 생산국인 러시아 생산량의 3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러한 여건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도 천연가스의 안정적 공급은 경제성장을 위해 절실한 문제다. 당장 2015년부터 막대한 수급불균형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어려운 과제다. 

 

가스관 사업이 최적의 경제성을 가지려면

 

이러한 국제 천연가스시장 여건하에서 우리에게 최적의 대안은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도입이다. 특히 경제성 극대화를 위해서는 가스파이프라인을 통해 들여오는 것이 LNG 방식으로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이점이 크다. LNG 방식으로 도입할 경우 가스구매 비용을 제외하고 유지보수비와 건설비를 포함해 226억달러, 파이프라인으로 도입한다면 47억 9천만달러 정도가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송비 측면에서도 영국열량단위(mmbtu)당 파이프라인에 의한 도입 비용이 0.31달러로 LNG 방식으로 도입할 때의 0.94달러에 비하면 약 30%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치는 북한 통과 파이프라인으로 가스를 도입하는 것의 경제성을 잘 보여준다.

 

이와 함께 몇가지 문제점이 해결된다면 경제성은 배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가스공급의 차단 가능성과 이에 따른 안보 문제다. 이는 북한과 러시아의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하겠지만 우리도 나름의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우선 검토해볼 것은 북한을 통과하는 데 따른 통과료를 지불하되 이를 현물로 제공하는 방안이다. 천연가스나 전기 등을 지급하는 방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북․러 정상회담 시 북한일행이 동시베리아·극동 최대의 수력발전소인 부레야발전소를 방문한 사실은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또한 중요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 러시아의 가스공급 의지이다. 러시아는 최근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노드스트림(Nord Stream)이라 불리는, 뻬쩨르부르그-핀란드-발트해(해저)-독일에 이르는 연간 수송능력 200억㎥의 가스파이프라인을 완공했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파이프라인의 대체 라인으로, 앞으로의 가스공급 차단 가능성을 무력화하는 동시에 대(對)유럽 가스공급 증대를 충족시킬 수단이 될 것이다. 이런 예에서 보듯이 러시아는 북한 통과 가스파이프라인의 공급이 차단될 시 향후 극동지역에 건설될 가스액화시설에서 생산되는 LNG를 이용해 대체하는 식으로 가스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리라 짐작해볼 수 있다. 

 

한편 통과료를 대신해 가스를 현물로 북한에 공급한다면, 가스 파이프라인의 경로를 북한을 통과해서 우리나라의 배관망에 접속시키고, 이로부터 다시 의정부를 통해 북한에 공급하는 가스 파이프라인망 구축으로 북한의 차단 가능성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에 대한 수용 여부를 지켜봄으로써 북한의 가스공급 안정성 보장 의지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극적인 '투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또한 이 과정에서 이미 조성단계에 있는 삼척의 가스인수기지의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동절기 수요에 대응하거나 가스도입 지점을 다변화하는 등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러시아산 가스를 제3국으로 수출하는 역할까지 부가적으로 수행할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이는 우리가 파이프라인으로 운송된 가스의 소비국인 동시에 통과국의 지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구매력을 이용한 협상에만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가스 파이프라인에 공급될 가스를 생산하는 가스전(지하의 가스층에서 천연가스를 산출하는 특정한 지역)에 투자하고 지분을 확보하는 일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향후 러시아 동시베리아 가스전을 비롯해 극동지역 대륙붕의 유전 및 가스전의 개발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러시아에 대한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관련 산업으로의 파급효과를 기대하게끔 한다. 다시 말해 신규 가스전의 개발이 가스파이프는 물론이고, 가스화학 및 정제에 필요한 설비 생산, 시추선(試錐船), 해상부유식 석유․가스설비(FPSO), 쇄빙유조선 및 가스운반선 등 많은 산업분야에 미치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지 러시아산 천연가스의 구매라는 차원에서 가스관사업에 접근할 때 놓치기 쉬운 지점이다. 

 

이런 일련의 상호보완적 산업프로젝트 외에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러시아 가스산업의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는 ‘가즈프롬’(Gazprom, 러시아의 국영 천연가스회사)의 지분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는 가스 안정성의 제고, 신규 가스전 사업 참여, 새로운 산업분야와의 협력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독일은 1998년 러시아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시기에 가즈프롬의 지분을 매입하여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 가스공급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의 야말 및 네네츠 지역의 신규 가스전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최근 유럽연합(EU)이 개정한 자원분야의 독점금지법안 때문에 생산·운송·분배·판매를 하나의 기업이 할 수 없게 됨에 따라 가즈프롬의 지분을 처분하기 전까지 독일은 6.8%의 지분을 보유, 이를 이용하여 가즈프롬에 상임이사를 파견하고 가스분야의 협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러시아의 가스공급 안정성 의지를 확인하는 방안으로 가즈프롬의 지분을 확보하고 독일과 유사한 수준으로 러시아와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와 에너지인프라

 

이밖에 러시아는 내년부터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내년 5월에 취임하는 새 대통령의 리더십을 9월에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새롭게 선보이고 역내에서의 자국의 역할과 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동북아 지역에서 에너지와 물류의 인프라체계를 갖추고 그 중심으로 부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미 사할린-I에서 생산된 원유가 데까스뜨리항을 통해 수출되고 있고, 사할린-II의 원유와 가스도 수출되고 있다. 이밖에 동시베리아-태평양원유파이프라인(ESPO)을 통해 운송된 시베리아산 원유가 블라지보스또끄 인근의 꼬즈미노터미널을 통해 수출되는 일련의 에너지·물류 인프라의 발전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제반 여건을 감안하여 우리는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을 전략적으로 검토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북한 통과 파이프라인의 구축이 원만히 합의된다 하더라도 러시아산 천연가스 가격에 대한 협상은 중요한 과제로 남을 것이다. 이를 통해 결정된 가격은 러시아가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진행할 가스가격 협상의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북한 통과 가스파이프라인의 건설의 과정에서 대두될 북한 지역의 철도망의 현대화 및 전력 문제에 대응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러시아 동시베리아·극동지역 에너지자원의 개발과 이용이라는 미래가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의견을 모으고,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북한 통과 가스파이프라인이 우리에게 가져다줄 '안보'와 '경제'와 '에너지자원'은 어느 하나도 놓칠 수 없는 과제임이 분명하다.

 

2011.11.2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