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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이대로 발효된다면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4년 7개월 동안 온갖 추문을 몰고 다녔던 한미자유무역협정(FTA), 그 비준안이 뿌연 최루가스 속에 마침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어느 나라나 FTA라는 것 자체가 일부 산업(업종·기업) 종사자에게는 이익을 주고 다른 산업(업종·기업) 종사자에게는 손해를 주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 간에 갈등 없이 조용히 비준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유난히 충돌이 심했던 것은 절차상 심각한 흠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의 경우 FTA 같은 국가중대사에 대해서는 대내협상과 대외협상이라는 두가지 절차를 거친다. 여기에서 대내협상이라는 것은 FTA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 대표와 피해를 보는 사람들 대표, 그리고 정부와 의회 대표가 모여서 FTA 협상범위와 피해대책 등을 사전에 미리 협의하여 국민적 합의사항을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미국의 경우 이 합의사항은 의회의 법률로 입법화되어 협상단의 협상권한을 제한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실한 대내협상, 과장된 경제성장 기여도

 

그러나 그동안 우리나라 대내협상은 어떠했던가? 대내협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정부는 한미FTA의 긍정적 효과만 일방적으로 홍보하기에 바빴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반발을 막무가내로 억눌렀다. 막대한 혈세를 동원한 한미FTA 홍보 또한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수치들로 가득 채워졌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우리 경제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발효 첫해에 수출은 연간 8억달러(대략 1조원) 정도 늘어나고 수입은 그것의 절반 정도 늘어나 일시적으로 무역수지 개선효과가 소액이나마 나타날 것이다. 한미FTA의 최대 수혜품목인 자동차의 경우 미국 관세율이 5년에 걸쳐 낮아지는 반면, 최대 피해품목인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의 관세율은 5~15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면 한미FTA로 인한 무역수지 개선효과는 그마저 사라질 것이다.  수출증가효과와 수입증가효과가 엇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발효 첫해에 수출이 연간 8억달러(대략 1조원) 정도 늘었을 때 그것은 경제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할까.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수출의 경제성장기여율이 연평균 53%였고, 이 중에서 대미수출의 경제성장기여율이 3.1%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미FTA로 인한 경제성장기여율은 0.8%에 그칠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경제가 향후 연간 4% 성장한다고 가정할 때, 거기에 0.032% 성장률을 더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가 향후 연평균 25만개 늘어난다고 가정할 때 한미FTA가 2천개의 일자리를 늘려준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급진적인 개방의 역기능

그러나 이런 분석수치들도 한미FTA의 순기능만 고려한 것이므로 현실을 지나치게 과장했다 할 수 있다. 한미FTA의 역기능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국내외 여러 사례들은 급진적인 개방의 역기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1994년 북미FTA(NAFTA)가 발효된 이후 10년간 멕시코의 고용률(15세 이상 인구 중 취업자수 비율)은 60.2%에서 57.1%로 2.9% 떨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 국내외 대기업에 대한 급진적인 유통업 개방은 이 산업의 고용비중을 18.5%(1995)에서 15%(2010)로 끌어내렸다. 급진적인 개방이 일자리를 창출한 것보다 더 많은 수의 일자리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급진적인 개방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멕시코의 1인당 실질GDP성장률은 NAFTA 발효 전에는 13년간 중남미 32개국 중에서 16번째였지만, 발효 후 13년간에는 18번째였다.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 급진적인 유통업 개방을 한 결과, 이 산업의 경제성장기여율은 7.6%(1990년대 전반기)에서 1.8%(2000년대 후반기)로 추락했다. 이런 지표들은 급진적인 개방의 역기능이 순기능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의심스러운 '외국인투자 확대' 효과

 

정부는 한미FTA가 외국인투자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연구원마저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이 연구소의 모 연구원은 2006년 국회 토론회에서 최근 미국의 투자는 주로 금융 및 서비스 분야에 치중하고 있어 FTA가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도할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자료에 따르면 1994년 NAFTA 발효 이후 FDI 유입효과는 거의 없었다. 이 자료에 따르면 NAFTA 체결 전 6년과 체결 후 6년 사이 멕시코로의 FDI 유입액은 209%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전세계 각국으로의 FDI 유입액은 평균 196% 증가해 멕시코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또 정부는 ISD(투자자-국가 소송제) 등 외국인투자자 보호장치들이 외국인투자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은행은  2005년 보고서에서  BIT(양자간 투자협정)나 FTA 등을 통한 투자자보호제도가 FDI를 추가로 유입시킨다는 실증적인 증거가 없다고 서술했다.

 

경제개혁 가로막을 ISD 조항

 

문제는 ISD 등 외국인투자자 보호장치들이 FDI는 유입하지 못하면서 국내 경제개혁을 방해하는 심각한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ISD는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현지에서 불이익을 당했을 경우 제3의 중재기관에 국제중재를 요청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70년대 이후 선진국 대자본들이 개발도상국에 진출할 때의 위험부담을 줄일 목적으로 개발도상국 정부에 의무를 지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선진국 입장이라면 ISD는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미국 같은 초강대국을 상대로 하고 있고 또 우리 경제체제가 개혁할 것이 엄청나게 많은 자본주의라면 ISD는 변화와 개혁 자체를 가로막는 가장 위험한 독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입버릇처럼 손해보는 FTA는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FDI는 유입하지 못하면서 경제개혁을 심각하게 방해하게 될 ISD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집착하고 있다. 졸속과 독선, 그리고 무지와 아집이 낳은 한미FTA, 그것이 발효된 후 어떤 비극이 나타날지 한국경제의 미래가 암담하기만 하다.

 

2011.1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