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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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서울대 법인화 이후 한국 대학의 미래

김명환 / 서울대 영문과 교수

 

서울대가 법인으로 바뀐 지 한달이 지났다. 서울대를 비롯한 국립대학의 법인화는 한국의 교육과 학문연구에 장기적으로 심대한 파장을 미칠 중대사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 큰일이 워낙 많다보니 이 정도는 쉽게 묻히기 쉽다. 작년 5월말부터 무려 28일에 걸친 학생들의 행정관 점거농성을 비롯해 학내외에서 끈질긴 법인화반대투쟁이 있었고, 지방 국립대학들은 교수 총투표나 총장 입후보자 선언 등의 형식으로 법인화 추진 포기가 잇달았지만 서울대는 결국 국립대학법인이 되고 말았다. 

 

재작년인 2010년 12월 8일 4대강사업 관련 예산안을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할 때 끼워넣기로 통과된 서울대 법인화법은 그 과정과 내용이 졸속 그 자체였다(법인화 추진의 문제에 대해서는 졸고 〈서울대 법인화는 귀신이 하는 짓!〉창비주간논평 2011.6.8 참조). 그 탓에 법인 전환이 된 후에도 부속 초·중·고교, 네 곳의 학술림, 심지어 중앙도서관의 가람문고와 규장각 도서마저 법률적인 문제로 인해 법인 서울대에 귀속될지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심각한 후유증마저 낳고 있다.
 
서울대 법인화의 졸속 추진이 가능했던 이유

 

그럼에도 서울대 법인화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었을까? 뭐든지 자기 식대로 밀어붙이고 마는 현 정부의 막무가내가 이 일에서도 어김없이 통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무슨 일이든 잘못되면 MB정권 탓으로 돌리는 관성이 되기 쉽다. 미래를 위한 진지한 성찰에 도움이 될 사태 분석이 긴요하다. 

 

서울대 법인화의 배경은 서울대 교수진의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의 취약함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또 학내 구성원의 합의를 원만히 이끌어내야 할 서울대 대학본부 역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나 논의절차도 없이 법이 날치기 통과되었을 때 총장을 비롯한 서울대 당국은 한마디 유감 표명이 없었다. 또 법인화의 전면 재검토(법인화 폐기가 아니다!)를 요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한 교수의 수는 151명으로 전체 전임교수진의 10%에도 미치지 못했고, 대체로 일반 교수들은'관망파'에 머물렀다. 다시 말해, 서울대 법인화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고등교육에 끼칠 영향은 고사하고 서울대 교수 자신의 연구와 교육에 미칠 파장에 대해서마저도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

 

일각에서는 법인화 추진의 역사가 90년대 중반의 이른바 '서울대학교특별법' 논란부터 따져도 20년에 가깝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런 논의는 서울대가 어떻게 자신의 지위와 기득권을 더욱 탄탄히 하느냐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고등교육 전반의 공공성과 자율성을 높여 공정한 경쟁 속에 더 나은 연구와 교육을 지향하는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말하기 민망하지만, 법인화를 적극 지지하고 추진한 분들은 소위 세계 10위권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울대에 자원을 몰아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사고방식에 알게 모르게 물들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재벌이 잘되어야 우리 경제가 살아나니 재벌에 특혜를 주는 것이 옳다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서울대 공대가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등 다른 뛰어난 교육기관과 경쟁관계에 있었기에 상호 발전할 수 있었음은 당사자들부터가 잘 알고 있는 일이다.

 

서울대 법인화는 이전에도 온전하다 할 수 없던 학내 민주주의를 두가지 면에서 결정적으로 훼손했다. 첫째, 총·학장 직선제가 사라졌다. 일부에서는 총·학장 직선제의 부작용을 부각시키기도 하지만, 이 제도는 1987년 6월항쟁이 없었으면 얻지 못할 성과였다. 총·학장 직선제는 개선을 신중하게 논의할 일이지 함부로 폐지하는 것은 곧 민주주의의 후퇴를 뜻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법규개정을 통해 법인화와 무관하게 여타 국립대학의 직선제까지 없애버렸지만, 우리보다 앞서 법인으로 전환한 일본 토오꾜오대도 총장 직선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기억할 만하다. 둘째, 평의원회가 심의·의결기구에서 심의기구로 격하되었다. 평의원회는 그동안 각 단과대학별로 교수회의에서 선출한 교수들과 노조가 뽑은 소수의 직원, 그리고 외부 인사로 구성되었으며, 대학 내의 의회 기능을 수행했다. 이 평의원회가 심의기구로 격하됨으로써 대학운영의 주역인 교수들은 자신의 의사를 대학운영에 반영할 또 하나의 중요한 통로를 상실했다.

 

몰락한 학내 민주주의 

 

서울대 법인설립추진단은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법률의 제약과 일정의 촉박함을 구실로 내세우면서 학내 구성원이 받아들이기 힘든 정관 초안을 10월에야 내놓았다. 이에 대해 인문대학, 자연대학 등의 교수들이 내부 논의를 통해 우려와 비판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고, 교수협의회는 12월초 정관 초안에 대한 찬반 투표를 이메일로 실시하여 822명 투표(투표율 39.5%)에 찬성 123명(15%), 반대 699명(85%)이라는 결과를 발표했다. 오연천 총장마저도 12월 6일에 전체 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내년 후반부 관련 법령과 정관 개정 노력도 지속적으로 전개해나갈 것입니다"라고 밝혔다.평의원회 역시 12월 26일의 성명서에서 총장 선출과 이사 선정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고 투명성과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함을 강조했으며, 더불어 평의원회가 명실상부한 대의기구가 되어야 한다면서 당장 지금부터 법률과 시행령, 정관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월 28일의 법인 출범을 코앞에 두고 총장, 평의원회, 교수협의회 등 주요한 학내 주체들이 한목소리로 아직 시행하지도 않은 법률과 정관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실제 현행 정관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이사회와 총장, 임원(이사와 감사)에 관한 몇가지만 지적해보자. 서울대 정관 제15조(이사회의 정족수 등)에 따를 때, 별도 규정이 없는 일반 안건은 재적이사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하며, 총장 선임과 임원 해임은 재적이사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이러한 규정은 다른 사립대학 정관과 비교해도 느슨하다. 연세대와 고려대 모두 일반 안건 의결의 경우 재적이사 과반수 찬성을 필요로 하며, 연세대는 총장을 "이사회에서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이사 3분의 2 이상의 의결로 선임"한다. 또 두 대학 모두 선임된 임원의 인적사항을 공개하고 이사회 회의록도 회의가 열린 후 10일 이내에 3개월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서울대 정관에는 이런 공개 규정이 전혀 없다. 결국 서울대 정관은 학교의 운영에서 독선과 전횡을 제도적으로 허용할 위험이 크다.    

 

도대체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대학 운영의 주역이어야 마땅할 서울대 교수진의 입장에서 냉정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다. 서울대 총장과 대학 집행부는 국회가 법을 통과시킨 이상 우리는 그것을 시행해야 한다며 어쩔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법인설립추진단 역시 '법률의 제약 때문에 정관이 학내 구성원의 우려를 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 '정관 아래의 각종 규정들을 잘 만들어 일반 교수진의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하고 운영의 묘를 살려나가겠다'며 납득하기 힘든 편의주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정관 초안이 논란이 되는 막판에 이르러서야 평교수들 사이에서 우려하는 여론이 비등하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제대로 된 사전 설명도 없는 상태에서 개별 교수들에게 공무원과 법인 교원 중 택일하라는 '신분전환희망조사서'가 느닷없이 이메일로 발송된 볼썽사나운 일도 교수 사회를 술렁이게 했다. 

 

서울대 교수진의 냉정한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이렇게 뒷북치는 꼴의 반대여론이 나온 데는 수긍할 만한 이유가 없지 않다. 우선, 학내 민주주의의 취약성 때문에 정년보장을 받지 못한 신진·소장교수는 이 중대 사안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거나 반영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또 발언권이 있는 선배 교수의 경우, 연구실과 강의실을 오가며 학문에 충실하기도 바쁜 마당에 학교 일을 맡은 분들이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도 많았다. 그러나 얼핏 흠잡기 쉽지 않은 이런 태도 뒤에는 큰 문제가 숨어 있다. 이제까지 서울대가 잘되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될 것이라는 안이한 사고방식, 그리고 여기에 결부된 뿌리깊은 엘리트의식이다. 국가와 사회가 베풀어온 남다른 혜택으로 풍부한 자원을 배분받고 뛰어난 학생들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 엘리트주의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사실 서울대학교 교수진은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거의 무임승차의 혜택을 누려왔다. 군사독재 시절 곡학아세하는 어용교수들이 적지 않았지만, 우여곡절 많은 민주화 과정에서 그 잘못에 대한 단죄는 불행하게도 없었다. 물론 민주화에 앞장서서 고초를 치른 교수들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순수하고 양심적인 학자들이 다수였지만, 남다른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지식인집단으로서 책임있는 실천적 모습을 보여준 경우는 드물었다. 4․19 이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학생들을 기리는 캠퍼스의 추모비들이 증언하는 바와 견주어도 이러한 취약점은 두드러진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립서울대학교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시행령·정관에 학내 민주주의의 숨통을 막을 독소조항들이 숱하다는 사실에 대해 서울대 교수진이 상대적으로 둔감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법인화의 득실을 놓고 대차대조표를 따지는 과정에서, 서울대의 행보가 전국의 다른 대학들과 고등교육 전체에 미치는 막중한 영향력, 달리 말해 서울대의 사회적 책임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미래를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서울대 교수진에게 더이상 민주주의의 혜택이라는 무임승차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하루하루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대학운영에 대해 고민하고 싸워나가지 않는다면, 내부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된 법률·정관개정이 난관에 처할 것은 물론이고 서울대가 우리 사회에서 누려온 크나큰 명예가 점차 빛바랠 염려가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만약 이런 어두운 전망이 현실화된다면 한국 고등교육의 자율성과 공공성, 그리고 참다운 경쟁력은 회복하기 힘든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엄중한사실이다.

 

2012.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