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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노조의 ‘끝장파업’을 응원하며

백병규 / 미디어오늘 전 편집국장
 

"MBC는 맨날 파업만 하느냐는 핀잔을 수없이 들어야 했던 지난 5년은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MBC가 변했다, MB의 방송이 돼버렸다'며 욕하는 시민들 앞에서 부끄러웠고 '현장에서 투쟁하자'며 힘겹게 파업을 접고 복귀한 뒤 정작 그러지 못했던 스스로와 동료, 선후배들 앞에서 또 부끄러웠습니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그 오랜 시간 억지로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부끄러움과의 싸움입니다. 망가져가는 뉴스와 조직을 붙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우리도 괴롭다고 애써 변명해왔던 시간에 대한 반성입니다."

 

MBC 5년차 여기자의 말이다. '부끄러움과의 싸움', 아마 이 말처럼 MBC 파업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말도 없을 것 같다. 벌써 4주째로 접어든 MBC노조의 파업은 바로 이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자로서, PD로서, 또 공영방송의 종사자로서 최소한의 기본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 정권이 교체되고 언론환경이 바뀌어 설령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온다고 하더라도 이대로는 공영방송 종사자로서 일말의 도덕적 자긍심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절박함이 MBC노조가 '끝장투쟁'이라는 물러설 수 없는 배수진을 치고 나선 배경일 것이다.

 

이것은 부끄러움과의 '끝장투쟁'이다

 

'권력의 힘이 빠지는 임기말이 돼서야 나서느냐'는 냉소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MBC 파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동안 MBC 사람들이 시류에 순응했던 것만은 아니다. 이 정권 들어와서 MBC노조가 파업을 한 것만도 이번까지 다섯차례다.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나선 것도 두번째다. 나름 치열하게 저항하고 싸워온 셈이다. 그러나 MBC가 'MB씨 방송'으로 망가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 속도를 줄이지도 못했다. 87년 민주화 이후 어렵사리 쌓아왔다고 믿었던 내부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치명적인 허약성이 드러난 것이다. 정권 초기 정연주 전 사장의 축출과 함께 권력에 넘어간 KBS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KBS나 MBC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명박정권 4년 동안의 역주행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인권위원회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거의 모든 공적 기구는 말 그대로 삽시간에 권력의 도구로 재편됐다. 정치는 실종됐고 야당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권력의 독주와 남용을 제어하기 위한 한국사회의 공적 제도와 씨스템은 무기력했다. 제도와 씨스템만으로는 최소한의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담보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과 각성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온 데에는 '영혼 없는' 혹은 '영혼을 판' 공직자, 지식인, 언론인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MBC 기자들의 제작거부와 노조 파업 역시 그런 각성과 자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MBC노조는 '큰집에서 조인트' 까이고 권력의 '청소부 역할'을 맡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부' 아니면 '전무'의 요구다. 접점을 찾을 수 없는 싸움이다. 상황은 녹록지 않다. 김재철 사장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다. 계약 기자와 PD, 작가 들로 구멍난 뉴스를 메우고, 명예훼손으로 노조위원장을 고소하는 등 강공을 펴고 있다. 방송장악의 총사령탑이었던 최시중씨가 방통위원장에서 물러났고 2월말 주총이 열린다지만, 방통위나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약없는 싸움이다.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길밖에 없다. 온전히 MBC 사람들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MBC 5년차 여기자의 말처럼 "완전히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더이상 희망이 없"고 "이번 싸움이 그간의 부끄러운 세월을 끝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방송 바라는 시민의 열망에 부응하길

 

사실 어떻게든 질 수 없는 싸움이다. MBC 보도국 보직부장 3명이 파업대열에 합류한 것만 봐도 이미 승패는 갈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KBS 기자와 PD 들도 제작거부를 선언했다. KBS노조 파업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민심도 그것을 예고하고 있다. '나는 꼼수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광적 환호, 해직언론인들이 대안뉴스로 만든 '뉴스타파'나 MBC 파업 기자들이 제작한 '제대로 뉴스데스크'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좌고우면하지 않는 권력 비판, 제대로 된 뉴스, 기본을 하는 방송에 대한 시민의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반면 MBC나 KBS 뉴스에 대한 시청자들의 차가운 반응은 권력의 방송장악이 결국 빈껍데기만 남았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MBC와 KBS 노조의 이번 싸움은 4년에 걸친 이 정권의 방송장악 기도에 대한 종결판이 될 것이다. 나아가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그 방식을 공영방송 종사자들이 스스로 개척해갈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엄중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조․중․동을 비롯한 다수의 '보도기관'이 시민의 대변자임을 포기하고 권력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괜찮은 공영방송의 존재는 한국사회의 생명수 같은 존재다. MBC와 KBS 사람들의 이번 '끝장투쟁'에 우리 시민들 또한 초연할 수 없는 이유다.

 

2012.2.2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