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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없는 한국, 꿈이 아니다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변화 담당국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작년 9월 15일 초유의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예고 없이 전국 656만호에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3천여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기다렸다는 듯이 언론에서는 일제히 전기가 부족하다며 현실적인 대안은 원전뿐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인데 더 많은 전기를 쓰고 더 많은 원전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잠시 움츠러들었던 한국의 핵산업계가 이에 힘을 얻었는지 후꾸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신규원전 후보지로 삼척과 영덕을 선정했다. 그리고 새로 부임한 지식경제부 차관은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 신년강연회에서 국가를 위해 국내에 불고 있는 탈핵 분위기를 함께 돌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4년 기념 기자회견에서 프랑스는 (에너지)자급율이 105%인데도 전력의 8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한다면서 독일이 (원전)폐기한다는 건 다른 얘기며, 그들은 프랑스 원자력 발전 전기를 가져다 쓰면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리가 원전을 쓰지 않으면 전기요금이 40% 올라가야 한다면서 기름 한방울 안 나는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로 원전밖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인 사실에 대한 무지를 넘어 왜곡이며,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유럽의 사례와 전기요금 논쟁
 

독일은 사민당과 녹색당이 합의해서 2000년 탈핵 원년을 시작할 때 원자력 전기 비중은 30%였다. 그후 10년간 꾸준히 에너지 수요관리를 하고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를 늘려온 덕에 후꾸시마 원전사고 이후로 오래된 원전 7기와 고장으로 멈춰 있던 1기를 바로 폐쇄하고도 2011년에도 유럽 전역에 60억kwh 가량의 전기를 수출했다. 우리나라에서 작년 고리 2호기가 생산한 전력보다 많은 양이다. 사실 독일은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 당시의 신재생에너지법(EEG)에 의해 촉발된 재생에너지붐으로 지난 2002년부터 전력 수출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이제는 친환경 전기의 비중(20.4%)이 원자력 전기의 비중(17.7%)을 앞질렀다. 2022년까지 가동중인 원전을 모두 폐쇄할 계획이지만 핵산업계의 부도 걱정만 아니면 그 이전에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즉 원전 가동은 전기가 더 필요해서가 아니라 핵산업계의 경제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프랑스는 OECD 국가 중 미국, 일본, 독일, 한국, 이딸리아에 이어 6번째로 에너지 수입이 많은 나라다(2009년 기준 프랑스 134.38Mtoe, 한국 198.1Mtoe). 전기 난방 등 과소비 패턴이 구조화되어 원전 발전량이 차지하는 비중이 75%로 높으면서도 그동안 폐지했던 중유발전소를 재가동하고 겨울에는 주변 나라들에서 전기를 수입하고도 부족해서 지난 2009년에는 제한송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서도 원전 폐지가 전기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최고 15%까지 오를 것이라는 논란도 이어졌다. 그런데 8기 원전의 문을 닫은 작년말 전력거래소상 전기가격은 그대로였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단가는 기술발전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는 반면(태양광은 지난 25년간 1/7로 줄어듦), 원전은 사고 위험으로 인한 지속적인 비용 상승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일본은 후꾸시마 사고 이후 앞으로 2년간 피해보상 비용만 6조엔이고 방사능오염 제염 비용은 아직 계산조차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요금 상승 요인은 그동안 실패한 전력 및 전기요금 정책 탓이 크다.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 이하로 제공하고 일반용(상가 및 업무용 건물) 전기요금 역시 누진율이 없어 최근 몇년간 전기소비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다. 결국 작년까지 한국전력공사의 누적 적자는 50조 3천억원에 이른다.

 

일본의 탈핵 분위기와 서울시의 당찬 도전
 

후꾸시마 사고 이후 일본은 어떨까. 정기점검에 들어간 원전이 하나둘씩 늘면서 가동중인 원전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후꾸시마 사고 전에 일본은 54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었다. 2009년에는 전체 전력공급량의 27%가 원자력 전기였다. 그런데 지난여름 12~16기의 원전만 가동하더니 지금은 2기로 줄었다. 5월이면 그 2기도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 중단될 것이다. 원전이 없는 일본이 되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27일자 사설에서 "대지진 후 약 1년간의 절전이 '강요'에서 '적극적인 도전'으로 변하여, 전국의 기업과 가정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정말 '절전은 최대의 전원(電原)'인 것이다"라면서 "절전으로 경제가 위험해지고 국민생활이 혼란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에너지 절약을 통해 경제사회의 형태를 변혁하여 새로운 성장으로 이어가는 전략이 현실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일본에 54개나 되는 원전이 애초부터 필요했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고 평했다.

 

서울시가 2014년까지 원전 1기만큼의 전기를 줄이겠다고 나섰다. 작년 정전사태로 긴장한 지식경제부가 시행하는 절약 캠페인과는 다르다. 전기 부족이 두려워 전기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가동중인 원전 1기를 대체하기 위해 전기를 줄이는 것이다. 게다가 시내 지붕 5천 곳에 태양광 발전기를 올린다고 한다. 전기를 소비만 하는 게 아니라 생산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에 원자력 전기가 31%였다. 10여년 전 탈핵 원년을 시작한 독일과 같은 수준이고 대부분의 원전을 가동 중단한 일본보다 약간 높다. 그렇다면 우리가 21기의 원전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할까? 서울시장 한명 바뀌니 원전 1기 줄이는 결정을 했다. 국회의원 10명이 바뀌면 원전 10기를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100명이 바뀌면? 우리 아이들을 원전사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날을 10년쯤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70여개 시민사회·종교단체로 구성된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은 3월 10일 시청광장에서 후꾸시마 원전사고 1년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많은 시민이 모여 그 힘으로 정치를 바꾼다면 '원전 없는 한국'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2012.2.2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