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민주통합당, 역사의 죄인이 될 수도 있다

김동춘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레이건 시대 미국 국세청은 소득신고에 대한 회계감사를 중단했고, 환경보호청은 오염배출 공장에 눈감았으며, 연방거래위원회는 불공정거래에 대해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연방통신위원회는 공중파를 기업에 넘겨주었다. 이명박 시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의 불법에 눈을 감았고, 법무무 장관은 '친기업' 정책을 펴겠다고 했으며, 감사원과 금감원은 저축은행 비리를 묵인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국민의 채널을 보수언론에 선물로 안겨주었다. 레이건의 자유시장만능주의가 엔론 파산, 캘리포니아 부도, 동부지역 정전, 그리고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러왔듯이 이명박의 친대기업 정책은 저축은행 파산으로 수많은 서민의 피눈물을 짜냈고, 수많은 중소기업을 몰락시켰고, SSM(기업형 슈퍼마켓)의 무분별한 팽창을 용인하여 영세자영업자를 파산으로 내몰았다.

 

레이건 시대 미국정부가 기업에 대한 감시견에서 애완견으로 변했듯이, 이명박 시대 한국정부는 기업, 아니 재벌기업의 애완견이 되었고, 레이건 시대 미국에서 언론과 지식인들이 "GM에 좋은 것이면 미국에 좋은 것"이라 외쳤듯이 이명박정부, 아니 민주정부 이후 한국에서도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은 것"이라는 논리가 거의 신앙처럼 굳어졌다. 레이건 이후 미국에서는 민주당 클린턴이 두번이나 집권하고 개혁성향의 오바마까지 대통령이 되었지만 레이건 시대의 감세와 탈규제 정책을 완전히 뒤집지 못했으며, 아직도 법인세는 레이건 시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다. 레이건의 보수혁명을 뒤집기에 미국의 민주당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이념적으로 무장해제된 상태다.

 

이명박 시대 4년, 민주당은 무엇을 했나

이명박정권의 감세정책과 친대기업 정책이 한국의 빈부격차를 벌려놓고, 46개 산업에서 재벌이 시장을 독점하도록 만들었으며, 수백조 넘는 부를 그들에게 이전시켜놓았다. 그런데 우리의 의문은 이명박정권이 4년간 이렇게 나가는 동안 구 민주당은 어디에 있었으며, 그전 10년 집권한 동안에는 뭘 했느냐는 것이다. 사실 김대중정부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민영화가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IMF 위기극복이라는 명분하에 김대중 노선에 비판적이던 시장주의자들을 중용하여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개혁'을 추진했다. 노무현정부는 삼성경제연구소의 '2만불 시대' 담론을 수용했으며 조직노동에 적대적이었고 한미FTA를 추진했다. 구 민주당에는 '선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난 4년 동안 소수야당이라는 이유로 이 모든 일의 책임에서 빠지고 있다.

 

우리는 민주정권 10년 동안 '이헌재 사단'으로 알려진 재경부 출신의 모피아가 청와대, 여당의 경제라인을 장악한 것을 보았다. 즉 열린우리당-민주당은 정권은 잡았을지 모르지만 경제정책의 주도권은 언제나 현 여당과 사실상 철학을 공유한 집단에 넘겨주었다. 그런데 이들 경제관료 출신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들 모피아를 중용한 것도, 그들의 말을 충실히 들은 사람들도 구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장악할 실력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의 처음이자 끝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라는 책에서 조지 레이코프가 미국 민주당을 비판한 것처럼 이들은 애초부터 큰 그림, 즉 이념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즉 세세한 정책에 대해 맞장뜰 실력이 안되면 큰 이념이나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우고, 고통받고 있는 국민과 직접 만나서 그들의 육성을 무기로 삼아 여론을 동원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과거 민주당 내에 그런 의원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는지 우리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스스로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진보세력'에 도움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비전 없는 정권심판론의 한계

민주통합당은 이제 상황이 변했으니, 한미FTA도 반대하고 재벌개혁도 하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솔직히 이들이 미덥지 못하다. 우선 참여정부와 이명박정부 하에서 그들이 했던 일을 정확하고 엄밀하게 복기, 반성하는 것 같지 않고, 그것에 기초해서 자신의 대안을 세우는 것 같지도 않다. 미래는 불투명하지만 과거는 거의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이들이 다수당이 되거나 집권할 경우 어떻게 될지는 2004년 총선 승리 직후 열린우리당이 무엇을 했는지 보면 다 알 수 있다.

 

역대 최대의 자산가격 폭등은 참여정부 당시 발생했고 경제양극화, 중소상인 몰락, 비정규직 확대 모두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에 본격화되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서민경제 살린다는 명분하에 재벌의 경제범죄를 거의 묵인했고, 좋은 취지로 출발한 종합부동산세도 반토막 내고 말았다. 이 정부 들어와서는 SSM 규제 등에 대한 정책에서 극히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지금 선거를 앞두고 과연 달라진 것이 있나?   

 

그런데 이명박의 실정 덕(?)에 그들의 주가가 엄청 올랐다. 어부지리(漁父之利)는 이런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제 그들은 '정권심판'을 하자고 외친다. 그런데 비전 없는 심판은 재앙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사실 심판조차 제대로 못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언론의 보도통제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민주통합당이 어떤 노선과 철학 하에서 이 정부를 심판하려는지, 심판 후에는 무엇을 할지 잘 알 수가 없다. 우선은 지금까지 진행된 총선 공천자의 면면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공짜란 없다, 과감히 변신하라

이명박정부에서 고생한 옛 동료들을 봐주려는 것은 분명히 읽을 수 있는데, 지금 서민대중이 요구하는 심각한 양극화 해결, 재벌개혁,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 해소, 온 국민의 교육문제 스트레스 같은 사안을 지금까지 자신의 필생 과제로 삼아 활동해온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풀뿌리에서 서민대중과 호흡해온 사람들을 전면에 배치한 것 같지 않다. 2030세대가 세력화되는 징후가 보이니 청년 비례대표를 뽑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좀 어이없는 발상이다.

 

그런데 민주통합당은 두 전직 대통령 같은 지도자도 없고 싱크탱크도 없다. 이런 마당에 국민의 팽배한 반 이명박 정서를 과감히 수용하여 대안으로 결집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제대로 된 공천과 야권연대다. 즉 시대적 과제를 대변할 '선수'를 과감하게 기용하고 야권연대를 통해 대중의 변화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이나 좌파가 죽으면 중도성향의 민주통합당도 죽는다. 미국의 오바마가 레이건의 보수혁명을 뒤집을 수 없는 이유도 미국에 힘있는 진보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 변화 요구가 천지에 진동하고 한국사회를 한단계 도약시킬 좋은 기회가 왔는데, 기득권에 안주한 구 민주당-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의 무사안일과 무대책이 그것을 좌절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 학생의 피로 권력을 거저 얻었던 1960년 당시의 민주당은 5·16 쿠데타의 일격을 맞아 곧바로 사라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민주통합당의 과감한 변신을 기대한다.

 

2012.3.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