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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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6월항쟁 20주년, IMF 10주년에 맞는 대선

김정훈 | 성공회대 연구교수

새해가 밝았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1987년에 시작된 민주화가 20년을 맞이하는 해이고,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였다던 IMF 외환위기가 10년을 맞는 해이다. 더구나 이런 의미있는 해에 향후 대한민국의 방향을 결정할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자연적 시간의 변화에 인간의 선택이 겹쳐지는 시기, 올해는 우리에게 중요한 때임이 분명하다.

무언가 변화가 예상되는 시기에 사람들의 마음은 들뜨기 마련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람들은 '희망고문'에 지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빠듯해 보인다. 정치불신과 무관심 혹은 패배주의, 이것이 요즘 희망을 가졌던 사람들의 정조인 듯하다.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실에 대한 비관이 주조인 사회,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저 학계의 한귀퉁이에서 밥 벌어 먹고사는 C급 학자인 나에게도 미래는 비관적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꾸준히 발전해온 민주주의가 퇴보할 것 같고, IMF 외환위기 이후에 심화된 사회적 양극화가 고착화될 듯하며, 한반도의 평화정착은 요원해 보인다.


다시 파시즘이 도래할 것인가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이런 거시적인 변동의 배후에 가려져 있지만 정작 삶에 있어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일상마저 불안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알랭 리피츠가 이야기했듯이, 사회적 양극화가 구조화된 사회에서 저항이 조직되지 못하면 그 사회에서는 일탈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잘 아는 1992년 LA 흑인폭동을 미국의 흑인들은 'LA혁명'이라고 부른다.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구조화된 차별 속에서 살고 있는 흑인들에게 폭동도 혁명과 같은 저항의 방식인 것이다. 만약 사회적 양극화가 지속된다면 우리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장면 배달조차 검열을 받는다는 '타워팰리스'에서, 그리고 잊을 만하면 벌어지는 강남증오범죄와 연쇄살인사건에서 이러한 징후를 읽는 것은 나만의 과민반응일까? 미래에도 우리의 일상은 안전할 수 있을까?

이에 더하여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사회정의'가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문의 이름으로 식민지와 독재가 미화되고, 학살자의 이름을 딴 공원이 생기는 현상을 보면 우울함을 넘어 무서워진다. 이것은 단순히 민족정체성을 부정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가 합의한 사회정의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정의가 무너진다면, 그다음의 사회가 '파시즘'일 거라고 예상하는 것은 허황된 일일까? 제발 아니기를 바라지만 우리의 아이들에게 식민과 독재가 정당하다고 가르치는 사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007년 대선, 한국 민주주의의 갈림길

미래가 이러하다면 2007년 대선에서의 선택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7년 대선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냐 심화냐, 혹은 과거로의 복귀냐 새로운 미래로의 전진이냐를 결정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2007년 대선이 퇴행과 복귀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심화이며 새로운 미래의 창조이기를 바란다.

2007년 대선으로 민주주의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1987년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제대로 복원되어야 한다. 1987년 우리 국민이 바란 것은 단순히 절차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실질적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와 삶의 질이 동반성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IMF 외환위기 이후는 그렇지 못했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가 보여주듯이 실질적 민주주의는 오히려 퇴보했다. 따라서 1987년 민주화의 열망이 그 자체로 복원되어야 한다.

1987년의 민주적 가치가 복원된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에 맞게 재창조됨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회정의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심화시킬 새로운 희망의 논리는 낡고 허구적인 냉전시기의 이데올로기 논쟁을 넘어, 또한 민주 대 반민주라는 민주화시기의 갈등구조를 넘어, 세계화라는 변화된 상황에 주체적으로 대응하는 창조적 논리여야 한다.

패배주의와 무관심을 넘어

지금까지 노무현 정권을 지켜보며 우리는 복원과 창조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민주화의 지속과 확대를 바라는 국민들이 없기 때문도, 또한 허구적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국민들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정책이 없기 때문도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국민들은 탄핵반대시위와 2004년의 총선을 통해 복원과 창조의 열망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문제는 열망이나 대안이 아니라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세력'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2007년 대선이 희망의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과거의 민주화운동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면서 현재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는 기성 정치집단에 대한 미련을 접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지금은 패배의식과 무관심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지만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합리적 시민과 진보적 대안을 하나의 힘으로 조직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2007년 대선은 민주주의의 심화와 새로운 미래의 시작일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1987년에 시작된 민주화의 역사는 새로운 세력의 형성이 다만 허황된 꿈이 아님을 경험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2000년의 총선연대, 그리고 2004년의 탄핵반대시위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2007년을 맞아 미래는 우울하고 희망은 불안하지만,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다시 한번 역사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더 정확하게는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위해 현명하게 선택하기를 기대해본다.

2007.01.09 ⓒ 김정훈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