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남긴 것
박정은 / 참여연대 평화국제팀장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막을 내렸다. 행사는 요란했고, 과도한 경호조치에 '핵안보정상회의 기념 걷기대회'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도 많았다. 핵안보 자체보다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에 대한 주요 정상들의 입장에 더 시선이 모아지기도 했다. 정상회의 결과물도 핵안보 논의가 갖는 비중만큼 실무적인 수준으로 도출되었다.
정상회의 끝에 발표된 서울코뮤니케는 2010년 1차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결과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핵테러 위협을 국제안보의 최대 위협으로 다시 강조했고, 핵물질과 핵시설 방호 그리고 관련 국제협약 비준 및 준수 등 핵안보 강화를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책임과 역할을 재확인했다. 고농축 우라늄 사용의 최소화, 고농축우라늄과 플루토늄의 통합 관리, 그리고 핵안보 문화 증진과 인적자원 개발 등도 다시 거론되었다. 정부는 지난 워싱턴 회의에서 제시되었던 핵안보 조치들이 실질적으로 이행되도록 한다는 데 이번 서울 회의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서울코뮤니케도 온통 각국 정부의 '자발적인' 조치와 '고려'를 '장려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어, 사실상 각국의 선의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핵테러 위협을 기정사실화한 정상회의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의 시작과 끝은 핵테러 위협에 대한 강조였다. 테러집단에 핵물질이 유입되지 않도록 막는 것은 예방조치로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국제사회 주요 국가 정상들이 대거 모여 한목소리로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은 핵테러 위협을 인류 최대과제처럼 말하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핵테러를 물리쳐야 한다'는 강한 어조의 결의나 핵안보정상회의가 '핵테러를 잊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는 등의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은 마치 우리가 지금 테러집단의 핵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가상의 위협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 위협을 과장하고 공포와 불안을 조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 등 일부 핵국가를 제외하면 핵테러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 공동의 위협이라 보는 공감대는 거의 없다. 핵국가들의 전면적인 핵군축과 핵무기 사용위협 배제, 핵발전의 중단과 감축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핵안보란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니 핵테러 예방을 목표로 한다는 핵안보정상회의는 그 존재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핵테러 위협을 애써 각인시키고 있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하다.
후꾸시마 핵재난 이후 1년이 지난 시점에 개최된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의 평화적 이용, 즉 핵발전소의 중단 없는 가동을 천명했다. 하지만 핵발전을 계속할수록 여기에 쓰이거나 생산되는 방사성물질과 핵물질은 핵안보를 더욱 어렵고 취약하게 할 것이다. 실제 서울코뮤니케는 이러한 어려움을 고백한다. '핵안보와 원자력 안전 중 어느 하나도 훼손되지 않도록' 문제가 되는 부분에 관한 '적절한 권고'를 제공하기 위해 IAEA가 회의를 조직한다는 식의 애매한 표현으로 비켜가고 있다. 또한 핵발전소에서 나오는 사용후 핵연료나 방사성 폐기물의 관리를 위해 각국이 '적절한 계획 수립을 고려할 것'을 권고하고 있기도 하다.
핵발전과 핵안보는 직결된 문제
하지만 핵발전은 핵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일본의 경우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를 꾸준히 재처리하여 현재까지 45톤의 플루토늄을 영국, 프랑스, 일본 현지 등에 보관하고 있다. 지금도 사용후 핵연료 저장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핵재처리 요구가 끊이지 않는다. 한국 역시 핵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가 너무 많이 쌓여 재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 임하는 정부와 핵산업계의 입장이다. 더욱이 핵발전소 최대 밀집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을 포함해 미국과 중국 등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에 나서고 있다. 정부가 핵안보정상회의의 성과로 핵물질 감축을 대대적으로 자랑하면서 동시에 핵발전을 지속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백보 양보해서, 핵물질 감축을 통해 핵안보를 강화하고자 한다면, 더이상 핵물질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미국의 승인하에 존재하고 있는 일본의 재처리 및 농축 시설의 폐쇄를 결단해야 한다. 한국정부도 일본의 경우를 핑계 삼아 미국과의 협상에서 요구하고 있는 재처리 권한 확보 시도를 당장 접어야 한다. 전세계 핵무기와 핵물질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러시아가 더 철저하게 감축에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이를 위해 유엔 군축회의에서 비동맹그룹과 핵보유국들의 견해차로 표류하고 있는 '핵분열성 물질 및 핵폭발장치 생산 금지 조약'(FMCT)이 체결되어야 한다.
핵군축과 원전의 점진적 대체로 나아가야
한국사회에서 핵문제는 으레 북한 핵개발 문제로만 인식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끼에 핵폭탄이 투하되면서 해방을 맞이한 우리의 역사는 당시 피폭자 중에 7만명의 한인이 있었으며 이들의 고통이 지금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게 만들었다. 미군이 한반도에 전략핵무기를 배치했었다는 사실도, 핵무기를 탑재하고 핵연료로 운항되는 미국의 핵항모가 언제든 남한내 기지를 드나들고 있으며 다량의 열화우라늄탄이 미군기지에 쌓여 있다는 사실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나아가 북한 핵개발에 대응해 미국의 전략핵무기를 재배치하자거나 우리 스스로 핵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스스럼없이 나오고, 핵발전소의 잦은 사고와 고장에도 일관되게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하는 핵산업계에 우리의 안전을 맡기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안보 분야의 최대 정상회의라면 소위 '북핵 문제'를 넘어 핵군축과 핵발전의 점진적인 대체를 논의하는 장이어야 했다. 그렇지만 애초부터 이러한 의제들은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않았다. 최대 규모의 정상회의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한국사회의 핵에 관한 척박한 인식을 들여다보는 그런 기회조차 되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핵테러 그리고 여전히 낯선 '핵안보'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동안 정권 차원의 민간인 사찰과 은폐 의혹의 한가운데 있는 청와대와 정부는 일시적으로 국민의 시선을 돌려놓는 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운은 오래가지 않을 듯하다. 먹을 것 없이 요란하기만 한 잔치의 끝이 더 공허하듯이 말이다.
2012.3.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