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저축은행 사태와 금융감독당국의 책임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저축은행 사태가 정기적인 뉴스가 되고 있다. 2011년 상·하반기 그리고 2012년 상반기에 이르기까지 철마다 찾아왔으니 말이다. 싼타클로스가 찾아오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저축은행 영업정지가 꼬박꼬박 발생하는 것은 전혀 달갑지 않다. 그런데도 저축은행에 대한 금융감독을 책임지는 금융감독당국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최근의 저축은행 사태는 물론 은행 경영자의 탐욕과 탈법에서 비롯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떤 반론도 제기할 수 없다. 따라서 저축은행 부실의 일차적인 책임은 당연히 해당 금융기관의 경영주가 져야 한다. 그러나 탐욕과 탈법은 인간의 생래적인 본성이다. 특히 약속과 신용에 근거한 상품을 파는 금융산업에서 탐욕과 탈법이 주는 단기적 보상은 너무도 크다. 그래서 금융산업은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탐욕과 탈법의 수레바퀴를 굴려왔다. 보스턴에서 활약하던 희대의 사기꾼인 찰스 폰지(Charles Ponzi)가 벌인 사기극은 금융 교과서에 '폰지 게임'(Ponzi game)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탐욕과 탈법에 취약한 금융감독체제
현대사회가 이른바 신용사회로 나아가고 금융산업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를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이에 대한 해답으로 등장한 것이 금융감독이다. 그 기본구도는 이러하다. 탐욕에 불타고 기회만 있으면 불법을 저지를 만반의 준비가 된 '늑대'들로 금융산업을 채우되, 이들이 지나치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서 경제 전체를 말아먹지 않도록 적절한 감시자를 세우자는 것이다. 늑대 대신 양을 풀면 금융산업의 효율성이 달성되지 않고, 감독자 없이 늑대만 풀면 서로 이전투구를 하면서 밥그릇 자체를 깨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겉으로는 이런 체제를 갖추었다. 특히 1997년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통합감독체계라는 이름으로 정비된 바 있다. 하지만 신용카드 사태와 저축은행 사태를 겪고 난 지금, 그동안 감독자는 늑대를 열심히 감독하기는커녕 돈을 받고 한눈을 팔았거나, 다른 목적에 늑대를 이용했던 정황을 도처에서 발견하고 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금융사고가 여기저기서 조그만 규모로 터질 때마다 이를 반성과 시정의 계기로 삼기는커녕 행여나 구린 구석이 들통날까 두려워 편법과 은폐로 일관해왔다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귀깨나 뀌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은밀하게 늑대를 한마리씩 끼고서 입맛대로 잔치를 벌이고, 냄새 맡고 찾아온 감독자에게는 눈알을 부라리거나 잔칫상의 부스러기를 몇점 던져주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모양새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혹시라도 필자의 얘기가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문 닫은 저축은행들의 실소유주와 로비 대상명단을 한번 훑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 저축은행 하나 문 닫는데 국회의원들이 몸이 달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는지, 왜 감사원까지 모양새 빠지는 일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정권실세와의 유착이 다반사로 제기되는지.
'늑대들의 잔치'를 막기 위한 조치는
이제 저축은행 업계가 '늑대들만의 리그'에서 '금융산업의 일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몇가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지경이 되었다.
첫째, 부실에 책임있는 기업주와 부실 관련자들은 단순히 형사상의 제재뿐 아니라 철저한 민사상의 책임추궁을 받아야 하고 다시는 금융기관의 경영자로 명함을 돌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둘째, 금융감독 실무를 맡았던 금융감독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은 물론이고, 정책을 담당했던 금융위윈회와 예금보험제도의 건전성을 책임지는 예금보험공사(예보)의 책임도 잊지 말고 규명해야 한다. 특히 문제가 터지면 언제나 '마름'에게만 책임을 묻고 정작 '지주'에게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던 관행을 타파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적기시정조치를 유예한 장본인인 금융위의 역대 해당 공무원 전원과 부실 우려 금융기관을 한번도 지정해본 적이 없는 예보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셋째,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본 저축은행의 채권자는 억울한 점이 있다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이를 보상받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 달려가 드러눕고 싶겠으나,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비슷한 문제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지도 못한다. 건전성 감독이나 행위규제 감독을 게을리하면 끝까지 채권자에게 시달린다는 인식을 감독자에게 명확하게 심어주어야 그들이 늑대를 제대로 통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감독자가 금융감독에 열심히 임할 구조를 짜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금융위가 감독의 전권을 가지고 있는 한 그 임무는 실패하기 마련이다. 고인 물은 썩고, 절대권력은 부패하기 때문이다. 감독 권한을 쪼개거나 중복해서 부여하는 방법을 심각하게 검토해볼 때가 되었다.
2012.5.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