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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노동운동,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거듭나야

이수호 | 전 민주노총 위원장

새해 벽두부터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현대자동차 파업사태가 20여일 만에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의 상징인 현자 노조와 우리나라 굴지의 자본권력인 현대자동차의 갈등은 우리 사회 노사관계의 대리전이면서, 노동운동의 현주소이기도 하여 전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었다.

국민 여론을 등에 업은 언론의 총공세, 지역 시민사회단체를 표방한 보수 우익의 준동,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등의 국가권력을 빙자한 정부의 위협, 국가경제 위기를 앞세운 경제5단체의 협박, 때맞춘 전 위원장의 구속으로 노조의 도덕성에 똥물을 끼얹은 검찰의 개입 등 사면초가에서도 노조는 부분파업을 강행하면서 정면으로 맞섰고, 회사는 결국 노동자의 단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에서 노사는 막대한 정치적·경제적 손실을 입게 되었고, 결국 노사 양쪽 모두에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또한 노사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균형잡힌 시각이 부족했던 우리 사회는 셈하기조차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동네북이 되어버린 노동운동

특히 오늘의 노동운동은 동네북이 되었다. 임금투쟁을 하면 집단이기주의로 몰아세우고, FTA 반대투쟁, 미군기지 확장 저지투쟁을 하면 노조가 왜 그런 일에까지 나서느냐고 질책한다. 노동관계법의 개악을 막아 비정규노동의 확산을 저지하고 노동기본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총파업투쟁을 하는데,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는 언론이 없다. 돈으로 간부를 매수해놓고는 노조의 도덕성만 문제 삼는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민주노동운동은 당당하게 전진해왔다. 헌신성과 투쟁력, 역사적 소명의식은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탄압 속에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조직으로 단련되었고, 끊임없이 숙고하고 반성하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위기를 딛고 재도약하고자 하는 의지 속에는, 과도한 정파적 대립을 단결의 밑거름으로 삼아 자정의 힘으로 여러 모순과 비리, 불합리와 비능률 등에 대한 척결 의지가 숨쉬고 있다. 나아가서 사회변혁의 주체로서의 책무를 잊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의 위기라 일컬어지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조직 내부로부터의 자성과 혁신을 위한 노력은 언제나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다만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적이고 급속한 도입으로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양극화가 심화된데다, 노무현정권의 노동정책 실패와 수구세력들의 증오의 정치가 진보개혁세력과 노동운동에 대한 적대감을 형성하는 동안 노동계는 지혜롭게 대처하고 진화하지 못했다. 오히려 기대에 반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희망과 대안으로 서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노동운동 내부의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이는 노조의 관료화, 권력화, 분파간 헤게모니 싸움에서 비롯되었으며 간부비리, 폭력사태 등으로 외화되면서 심대한 도덕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잘못된 정파운동과 과도한 노선갈등은 가장 먼저 혁파되어야 할 지점이다. 차이를 강조하는 정파조직 때문에 대의기구가 제구실을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사회적 대화를 공약으로 하여 당선된 지도부가 반대정파의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기도 했으며, 상대적 선명성과 운동논리를 앞세우다 실사구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기업별 노조에 대공장·정규직·제조업 중심의 조직형태를 탈피하지 못한 점도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 길로 갈 때만이 비정규직을 포괄함으로써 노노간의 갈등을 해소하여 함께 투쟁하며 성과를 나눌 수 있고, 노동운동의 민주화를 진전시킬 것이며,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차별도 좁혀지고, 투쟁력은 배가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정책 생산능력이 부족하고, 간부나 조합원에 대한 체계적 교육이 미흡한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사후약방문 식의 투쟁보다는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사고의 유연함과 성찰은 꾸준한 교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선진형 노사관계는 불가능한가

자본주의 발전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 그리고 이에 기초한 쟁의권의 보장과 역사적 궤를 같이한다. 인류 역사는 진보의 과정이고 그 구체적 내용은 일하는 사람, 직접 생산자인 노동자 농민의 자유와 권리의 확대로 표현된다.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다. 그들은 생활상의 요구 때문에 자기가 생산한 경제잉여에 대해 좀더 큰 권리와 배분을 요구하게 되어 있다. 그 과정이 사회적·법적 테두리 속에서 이루어지게 함으로써 체제 자체를 위협하지 않도록 제도화한 것이 노조이고, 이의 실행을 위한 교섭과 쟁의행위는 노조의 핵심 권리이다.

이러한 사회권으로서의 노동기본권을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사회구성원의 생존을 보장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며,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국가라는 공동체의 존재이유이며 발전을 위한 기본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에 합치하기 위해서, 기본권의 작동이 원활하기 위해서 '자율적 노사관계'가 필요한 것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와 가진 거라곤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가 대등하게 맞서기 위해서는 노조의 단결된 힘이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행사되어야 한다. 법의 미비함과 운용의 차별, 공권력을 동원한 탄압은 그 균형을 깨는 행위이다. 노사는 각기 자기가 가진 정당한 힘으로 협상하고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성숙한 노사관계 없이 사회발전은 불가능하다. 사회통합과 진보개혁을 향한 노사정을 비롯한 사회적 대화가 지속되어야 하며,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손배가압류, 지도부 구속 등을 통한 노조탄압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쟁의행위에 대한 불온한 시각보다는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이해 속에 빠른 타협을 끌어내도록 해야 한다.

세계 경제규모 10위를 자랑하는 나라답게 노사관계도 선진화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공신력과 경쟁력을 높여나갈 수 있다. 무책임한 질타나 과도한 기대보다는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노력을 믿고 기다리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두 다리의 힘의 균형이 깨지면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2007.01.23 ⓒ 이수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