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
조효제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대한민국의 고위공직 중 국가인권위원장만큼 일하기 어려운 자리도 없을 것이다. 또 인권위원장만큼 사람 고르기 어려운 자리도 없을 것이다. 우선 논쟁적이고 까칠하기로 이름난 '인권'이라는 주제에 대해 전폭적으로 공감하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이 첫 관문을 통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사형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성적 소수자, 이주노동,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인권원칙에 따라 일관된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의 평균인 중에서 얼마나 될까?
또한 정서적으로 인권에 공감한다 하더라도 전문성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나온 후 지금까지 국제사회가 발전시켜놓은 인권 지식과 제도가 워낙 방대해서 그것에 대해 대략이나마 감을 잡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권위는 엄연히 공조직이므로 국가기관을 이끄는 장관급 수장에게 요구되는 통솔력과 정무적 판단력을 갖춰야 하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권력자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권위원장은 인권운동에 대해 이해가 깊고 시민사회와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더 좋기로는 시민사회운동가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네가지 조건을 어느정도라도 갖춘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될까? 바로 이 때문에 인권위원장을 고를 때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현 국가인권위원장 인선을 돌아보면
여기서 현 국가인권위원장이 임명되기 직전의 상황을 잠깐 돌이켜보면 좋겠다. 서울시장 재직 때부터 시청 옆에 자리한 국가인권위를 가리키면서 "저런 기관을 세금으로 운영하다니……" 하고 혀를 차곤 했다는 분이 대통령이 되면서부터 시민사회는 인권위원회의 위상과 위원장 인선을 놓고 걱정에 빠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권위의 조직규모를 줄이고 인권운동 출신의 전문인력을 내보내는 등 위원회의 힘을 빼는 공세가 펼쳐졌다. 급기야 전임 위원장이 "정권은 유한하지만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을 남기고 사퇴하면서 후임 위원장의 지명이 아주 절박한 문제로 부각되었다.
당시 필자는 세가지 씨나리오를 내심 가정했다. 첫째, 정권교체와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인권위원장 자리에 걸맞은 인물이 오는 경우. 최선이긴 하나 희박한 가망이라고 봤다. 둘째, 정권과 코드가 맞으면서도 인권을 비교적 잘 아는 인물이 뽑힐 경우. 차선책이자 현실적으로 무난한 선택이라고 봤다. 셋째, 뉴라이트 계열 또는 편향된 인권관으로 무장한 '신념'의 인물을 낙점하는 경우.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카드였다.
그런데 막상 신임 위원장이 발표되자 필자를 포함한 시민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시쳇말로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상 씨나리오 자체가 무너졌고, 누구도 정체를 잘 알지 못하는 미확인 보행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위에서 말한 조건 중 어느 하나도 자신 있게 내세우기 어려운 자격미달씨를 국가인권위원장에 앉히다니, 최악의 경우보다 더 나쁜 결과를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런 식의 결정을 감행한 MB정권의 의중이 무엇이었던가? 만일 그 인선이 복잡한 청와대 내부정치의 우연한 산물, 즉 자연발생적인 것이었다면 그야말로 개념 없는 무능정권 소리를 들어 마땅했다. 이렇게 중차대한 자리를 그런 식으로 채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만일 그 인선이 '절대자'의 지적설계의 소산이었다면 그것은 정말 절묘한 선택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위의 도덕적 권위와 영향력을 땅에 떨어뜨렸고, 헌신성을 지닌 인권위 직원들의 풀을 한껏 죽였으며, 현실성도 없는 북한인권 타령으로 밤낮을 새우게 했고, 시민사회에 대해선 '빅엿'을 먹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쪽 해석이 맞든 이런 게 MB정권의 본질이다.
인권위에 정말 필요한 인물을 찾자
인권위의 어느 직원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인권위가 수행하는 업무의 95퍼센트는 통상적인 업무라서 정권교체나 위원장의 성격과 관계없이 일상적으로 처리가 된다고 한다. 문제는 나머지 5퍼센트라는 것이다. 상징적이고, 민감하고,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한 인권위의 태도, 바로 이런 점으로 시민들은 인권위를 평가한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안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보여주는 위원장이 국가인권위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는 지적이었다.
이제 곧 인권위원장의 연임을 놓고 국회 청문회가 열릴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현 위원장은 청문회 준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겠지만 그가 국회에서 당할 곤욕을 상상해보면 인간적으로 측은한 마음마저 든다. 어차피 몇달 뒤 누가 되든 대통령이 바뀌면 현재 위원장은 등 떠밀릴 가능성이 농후한데 왜 연임이라는 독배를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것 역시 '절대자'의 고도의 배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사족으로 한마디 보태고 싶다. 이제 법률 전문가가 아닌 사람, 여성, 그리고 비주류에 속하거나 소수자에 속하는 인물이 국가인권위원장을 맡을 때가 됐다. 언론이나 명망성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더라도, 찾아보면 그런 인재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 변화 자체가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성숙한 인식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어야 마땅하다.
2012.7.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