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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방송파업 해결을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김경환 /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청자다. 주인 없는 공기업의 소유구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방만한 경영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당연하다. 공영방송의 최고 관리·감독 기구인 이사회 역시 그 결과물의 하나다. 공영방송 이사회는 국민을 대표해 공영방송을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사장과 임원을 선임하며, 경영 감시와 평가를 맡는다. 임기 3년의 공영방송이사는 KBS 11명,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9명, EBS 9명의 총 29명이고,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다만 EBS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임명한다.

 

그러나 막중한 역할에 비하면 국내 공영방송 이사의 자격조건은 너무나 허술하다.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비정당원, 공무원법 제33조 1항에 해당되지 않는 인물이 라는 요건이 전부다. 현행법에 따르면 심지어 다른 방송사의 대주주일지라도, 어제까지 정당원이었던 인물이라도 공영방송 이사 조건에 저촉되지 않는다.

 

공영방송 이사의 자격요건과 추천권 논란 

 

이와 함께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논할 때 항상 논란이 끊이질 않는 부분은 이사의 추천권이다. 간단히 말해 여당과 야당, 대통령이 이사 추천권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관련법상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관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배분한다. 법과 제도가 아니라 정치적 역학관계나 협상력에 따라 여당과 야당의 이사추천 몫이 늘었다 줄었다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문제는 이로 인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이사가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고 자신을 추천한 정당의 정치적 성향을 방송 내용에 강제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는 점이다. 언론사 중 가장 먼저 파업을 시작한 MBC 노조의 요구사항 역시 정권이 임명한 낙하산 사장의 퇴진이었다. 정권의 눈치만 살피는 정치편향적인 인물이 공영방송의 수장이 된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이 파업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몇몇 언론사의 파업이 대부분 정리됐지만 유독 MBC 파업이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교롭게도 공영방송 이사의 임기가 다가오는 8월과 9월에 한꺼번에 종료된다. 이를 계기로 국회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선 공영방송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것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물이 선임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핵심이다.

 

어떤 후보를 누가 어떻게 뽑아야 하나

구체적으로 현행 11인 또는 9인으로 각기 다른 이사의 정원을 12인으로 통일하고, 이사 추천 역시 대통령이나 방송통신위원회, 국회로 나뉘어 있던 것을 대통령이 속하거나 속했던 국회 교섭단체(여당)와 그외 국회 교섭단체(야당)가 동수로 6인씩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 기존 방송통신위원회가 실무를 맡던 공영방송 이사후보의 공모와 추천은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구성하여 실시하는 안도 검토 대상이다.

 

이사의 직무상 정치적 독립성 보장과 전문성 확보를 위한 자격조건 및 결격사유 조항에 대한 내용도 대폭 보완이 필요하다. 자격조건 관련 조항에 방송 및 관련 분야에서 최소한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한 자로 명기하면 비전문적이고 정치편향적 인물의 무분별한 이사 추천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공영방송 이사회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인 사장 선임에 대해서는 이사회 내에 사장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하여 사장을 공모하고, 사장 선정 시에는 이사회 3분의 2 찬성으로 결정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면 그간 논란이 되어온 사장 선정과정의 불투명성과 정치편향을 막을 수 있다.

 

통상적으로 노조파업은 임금인상이나 근로조건 같은 노동환경 개선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번 방송사 파업은 그 배경과 원인이 다르다. 임금인상이나 복리후생이 아니라 방송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배제를 내걸기 때문이다. 우리 공영방송은 국민을 대표해 정부나 국회가 이사 및 사장 선임에 직접 개입한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나 대통령이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거나 추천하는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용인할 만하다. 문제는 이사와 사장의 소임에 적합하지 못한 인물이 선임된다는 것이다. 공영방송 지배조건 개선의 해법을 이사와 사장에 대한 엄격한 자격조건 및 제한조건 신설에서 찾는 까닭이다. 이사와 사장 선임절차에서의 투명성 보장과 합리적인 제도 개선만이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공영방송이 정파성에 휘둘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장마가 시작됐다. 가뭄으로 비상이 걸렸던 국토가 해갈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은 장대비를 뿌리며 바짝 타들어갔던 대지에 생기를 부여했다. 하지만 겨울 끝자락부터 초하까지 MBC 파업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파업으로 바짝 타들어간 방송 현장을 적셔줄 정치권의 시원한 해결책을 기대해본다.

 

2012.7.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