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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불산유출사고, 정부는 없었다

고도현 / 환경연합 시민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

 

추석연휴 전 9월 27일 구미4단지내 '휴브글로벌' 공장에서의 불산(불화수소산, HF) 유출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을 넘어선 지금, 5명이 사망했고 건강이상증세로 검진 및 치료를 받은 사고현장 주변 공장 근로자와 인근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무려 만건을 넘어섰다.

 

불산은 일반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물질이나 불산을 접해본 노동자나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다루기가 꺼려되는 무서운 독성물질로 알려져 있다. 자극성의 냄새와 무색의 물질인 불산은 유리와 금속을 녹이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유리 가공이나 반도체에 주로 사용된다. 불산은 물에 잘 녹을 뿐만 아니라 끓는점도 낮아 공기 중에 쉽게 떠다니는 물질이며, 특히 인체에 흡입독성이 강하고 뼈에서 칼슘을 빼내는, 그야말로 뼈를 녹이는 강력한 독성물질이다. 발암물질은 아니지만 급성독성에 의한 만성영향을 준다.

 

맹독성 사고에도 두 손 놓아버린 정부

 

이러한 맹독성의 불산유출사고 피해수습에 과연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나? 사고 당일 불산에 오염된 현장을 중화제인 석회 대신 물로 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불산이 인근 마을과 공단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사고 직후 마을을 향해 오고 있는 하얀 연기를 목격한 마을이장의 기지로 마을주민들은 불산을 피할 수 있었다. 구미시는 사고발생 후 몇시간 뒤 4단지 입주업체에 전원 대피령을 내렸고 주민들에게는 그보다 늦은 시각에야 대피 조치를 취했다. 사고 직후 주민대피 과정에서 구미시는 없었다.

 

사고 다음날,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피해현장의 대기 중 불산 농도가 1ppm이며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농도인 30ppm에 미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구미시는 국립환경과학원의 유선결과통보를 가지고 주민대피를 해제했고 50미터 반경 밖의 업체는 정상가동시켰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이 발표한 1ppm은 안전한 수치가 아니다. 산업환경기준에 따르면, 8시간 노출 기준 시간 가중치 평균 0.5ppm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국립환경과학원이 말하고 있는 30ppm 기준의 근거는 IDLH(Immediately Dangerous to Life and Health Level)인데, 이 농도는 30분 이내에 도망쳐야 비가역적인 건강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근로자와 주민들의 안전이 달려 있는 중요한 측정자료를 정밀측정기가 아닌 간이측정기로 측정했으며, 추후 대기 중 불산 잔류도 측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국내 최고라고 자처하는 정부의 환경전문연구기관도 불산사고에는 속수무책이었으며,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 뒤에야 마을에 측정장비를 설치하여 뒤늦게 마을 현장조사를 하면서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유해물질관리체계의 총체적인 부실을 보여주는 사례

 

무서운 독성물질이 8톤이나 유출되었는데도 사고 시 불산이 사람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주민들, 심지어는 사고현장 바로 옆 공장 노동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사고 당일 안개처럼 하얀 연기를 본 노동자들은 현장 가까이서 구경까지 했다고 한다. 또한 사고 이후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 구미시 어디에도 구미불산유출사고 관련 내용은 없었다. 과연 구미4공단에서 불산유출사고가 있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추석연휴가 지나고 불산유출사고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할 즈음에 부랴부랴 구미시는 홈페이지에 사고현황을 올려놓기 시작했으며, 경북도지사와 환경부장관이 연이어 마을을 방문했다.

 

그러나 사고가 한참 지난 뒤에 방문한 정부관계자들 누구도, 농작물이 타들어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계속 살아도 괜찮으냐는 피해지역 주민의 질문에 속시원하게 답을 주지 않았다. 노동자의 안전과 근로환경을 감독해야 하는 고용노동부도 사고 수습과정에서 화학유해물질 유출사고 위기대응 행동 매뉴얼대로 하지도 않았고 사고업체를 한번도 감독한 적이 없는 등 위험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도 부실했다. 대통령도 뒤늦게 교통사고 수준의 대응에 대한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는 말에 환경부, 고용노동부와 구미시는 서로 책임공방만 하고 있으며, 국립환경과학원은 대기와 수질, 토양에 대한 조사 결과 불산이 미검출되거나 기준치 이내라는 발표로 피해주민들을 재차 우롱하고 있다.

 

이번 사고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위기대응 실패 및 소통부재로 인한 관재였으며 유해물질관리체계의 총체적인 부실을 보여 준 사례다. 산업발전을 위해 공장 노동자와 인근지역 주민의 생명을 담보해야 하는 후진국형 사고는 더이상 재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실효성이 있는 사고대책 매뉴얼 등 각 부처에 산재되어 있는 유해물질안전체계를 재정비하고, 사고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산업단지 유해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장 노동자와 인근 마을주민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또한 사전예방 차원에서 유해물질로부터의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위험물질을 다루는 공장 인근의 안전이격거리 지정도 조속히 수립해야 할 것이다.

 

2012.10.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