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문재인 후보 정치개혁안에 바란다
이철희 /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삶이 고달프다. 그래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개혁이 대선의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이번의 정치개혁은 정치가 좀더 멋지고 폼나게 바뀌라는 새단장이 아니다. 먹고살기 힘드니, 정치가 그 삶의 문제를 다루라는 것이다. ‘정치가 달라져야 내 삶이 달라진다면 정치를 바꾸자’, 이것이 지금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동력이다.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꺼내놓은 정치개혁안은 특권은 줄이고 비례대표는 늘리자는 게 핵심이다. 특권을 줄이는 안은 국회의원의 영리목적 겸직 금지, 헌정회 연금 폐지 등이다. 비례대표제 확대와 관련된 안은 국회의원 300명 중에 100명을 권역별 정당명부에 의한 비례대표제로 선출하는 것이다. 문후보는 또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 책임총리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공약도 있다.
정치인과 유권자를 갈라놓는 정치관계법,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대중과 유리되고, 정치인이 서민의 삶과 무관한 벼슬아치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관계법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은 정치인과 유권자를, 피선거권자와 선거권자를 갈라놓고 있다. 선거운동의 유형과 기간을 정해놓아 그외에는 정치인이 유권자와 접촉해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그나마 정당활동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나 지구당이 폐지되어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정당은 사실상 사라진 셈이다. 정치가 삶의 문제를 다룰 수 있으려면, 또 정치인이 대중의 먹고사는 문제를 천착하도록 하려면 정치활동 규제를 풀어야 한다. 정치가 보통사람의 일상으로 들어갈 때 비로소 삶에 기초한 정치가 활성화된다.
비례대표 의원수를 늘리는 것은 필요하고 정당하다. 이딸리아 정치학자 사르또리가 지적한 대로 지역구제하에서는 복지 등 계층적 어젠다보다 사회간접자본(SOC) 유치 따위의 지역 어젠다가 기승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비례대표제의 핵심은 비례성을 높이는 것이다. 선거구를 여러개로 쪼개면 비례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권역별로 명부를 제시하는 것은 좋으나 선거구는 하나로 운영하는 것이 좋다. 독일의 경우에도 정당명부 작성은 권역별로 하지만 전체 의석수를 결정하는 것은 전국 차원에서 얻은 비례대표 득표율에 따른다. 문후보가 아직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추후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전체 의석수를 늘리는 것까지 나아가면 좋겠다. 통상 적정 의석수에 대한 정치학자들의 중론은 인구수의 세제곱루트인데, 이렇게 계산하면 우리의 경우 364명이다. 아예 최장집 교수의 지적처럼 세비와 각종 특권은 줄이고 임기는 4년에서 2년으로 단축하되, 의원수는 500명으로 늘리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의원수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나 전경련 등 재계에서 의원 축소를 주장하는 점 등을 감안해도 민주주의를 위해 의원수의 증원은 필요한 과제다.
문후보가 말하는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의 선의에 그 성패가 맡겨진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선의를 갖고 총리에게 권한을 넘겨야 운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책임총리법을 제정해 총리의 책임․권한을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 헌법에 명기된 국무위원 제청권과 행정각부 통할권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분명하게 적시해야 한다. 더불어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원 개인이 아니라 제도로서의 입법부에게 더 많은 권한과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이런 점에 대해서도 문후보가 응답해야 할 것이다.
더 나은 정치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관계법을 일대 혁신해야 한다. 현행 공직선거법의 기본 원리는 이렇다. ‘정당(정치인)과 유권자의 정치활동이 선거 관련 활동과 선거와 무관한 활동으로 구분될 수 있고, 선거 관련 정치활동은 허용된 기간을 제외하고 금지되어야 한다.’ 1958년 민의원 선거법에 처음 등장한 이 원리는 1934년에 제정된 일본의 중의원 선거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56년 대선에서 진보당의 조봉암이 선전하자 이러한 원리가 보수세력에 의해 도입됐다(송석원 「선거운동 규제입법의 연원」, 2005). 공직선거법을 포함해 정치관계법은 대폭 손질되어야 한다. 정치가 대중 속으로,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살고, 그 정치에 의해 보통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정치의 확장을 위해서는 지구당이 부활되어야 한다. 지구당이 없어져 지역 단위에서 사회경제적 약자의 목소리가 전달될 수 있는 채널이 사라졌다. 당원협의회가 있긴 하지만 정당이라는 공적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현직자나 출마 예정자의 사적 선거기관으로 변질되었다. 돈이 들지 않도록 규제는 하되, 지구당을 부활해 정당이 지역의 생활공동체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의 정치개혁안은 유의미한 진전을 담고 있다. 동시에 정치를 살리는 근본 대책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이 방안을 계기로 더욱 활발한 논의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정치개혁을 이뤄낼 시민운동이 생겨나고, 제도개혁도 성과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2012.10.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