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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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2012년 대선과 핵‧에너지 문제

이유진 /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이명박 대통령은 5년 임기에 이 땅의 핵산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녹색성장’을 상징으로 핵에너지를 띄우더니,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현재 31.1% 수준인 전력 중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높이기로 했다. 신규 부지로 영덕과 삼척을 지정했고, 5개의 핵발전소가 한참 건설 중이다. 본인이 자랑하는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를 기념해 12월 27일을 ‘원자력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발생한 일본 후꾸시마 핵발전 사고는 한국의 에너지정책에도 반전을 가져왔다. 핵발전의 안전신화가 무너졌고, 잦은 고장과 속속 밝혀지는 납품비리 사고로 핵에너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핵발전의 안전 관리를 강조하며 증설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건부 반대’를,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신규 핵발전 증설과 수명연장에 반대하는 ‘탈핵’을 주장하고 있다.

 

안 후보의 ‘탈핵’ 공약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세 후보가 제시한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박근혜 후보는 아예 에너지 부문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문재인 후보는 “2030년까지 전력수요는 전망치 대비 20% 줄이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20%로 확대”하겠다고 밝혔고, 안철수 후보도 “서민의 부담이 커지지 않는 범위에서 왜곡된 전기요금체계를 개선하고,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30% 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가 닦아놓은 핵발전 진흥정책의 영향으로 박근혜 후보의 ‘조건부 반대’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 나머지 두 후보의 경우에도 지금까지 발표한 정책만으로는 임기 중에 ‘핵발전’ 비중이 오히려 증가하게 된다. 두 후보가 고리1호기, 월성1호기를 폐쇄한다고 해도, 건설 중인 5개의 발전소를 그대로 짓게 되면 전력 중 핵발전 비중은 37~38%로 증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건설 중인 핵발전소에 대한 폐쇄 결단 없이는 ‘탈핵’ 공약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가지 더 우려스러운 것은 두 후보 모두 핵과 재생에너지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핵을 실현하려면 향후 10~20년간의 에너지 믹스(energy mix)를 제시해야 한다. 2030년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20%(문재인)와 30%(안철수)라면, 나머지 석유․석탄․천연가스․핵에너지의 비중을 얼마로 잡고 있는지, 임기 중에 어떤 에너지를 늘리고 어떤 에너지를 줄여갈 것인지에 대한 조합을 밝혀야 한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신규 핵발전과 석탄발전을 둘 다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런 정책이 현실성을 가지려면 이들의 축소로 생기는 공백을 어떤 에너지로 대체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에너지 분권 실현이 관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녹색당이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면, 이런 공약을 제시하겠다. 우리나라는 최종에너지인 전기가 유류보다 싸기 때문에 난방, 산업용 가열공정, 비닐하우스 가온(加溫)도 급격하게 전기로 전환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전력소비 급증이 지속된다면, 모든 에너지원을 다 동원해 전력을 생산해도 지난해 9월 15일과 같은 제2, 제3의 정전사태를 막을 길이 없다. 따라서 전기요금 인상과 에너지 세제 개편을 동원한 강력한 수요관리정책을 펼쳐야 한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적어도 50% 인상하고, 전기 다소비 산업체는 상용 자가발전 비율(30%)을 의무화하고, 핵발전을 대체할 징검다리 기술로 가스복합발전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핵발전중심 전력정책은 대량생산 대량송전 방식이기 때문에 특정 지역에 고통을 전가하게 된다. 따라서 에너지 생산시스템을 지역분산형으로 전환해 지자체의 에너지정책 수립과 집행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산업부문은 상용 자가발전 비중을 높이고, 가정·상업 부문은 지자체가 적극적인 수요관리와 에너지 생산 정책을 펼쳐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다. 모든 지역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책임을 골고루 질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에너지 공약으로 답해야

 

지역분산형 전원 확대에서 재생에너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어느 정부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장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시민 참여와 주민수용성이 결여된 양적 보급 중심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따라서 정부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부활해 시민이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고, 관리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가 에너지공사를 만들어 건축물 단열개선사업을 포함한 에너지서비스 개선과 재생에너지 사업을 벌이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에너지 분권을 통해 지역분권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체제 구축을 위해 다음 5년(2013~2017)이 매우 중요하다. ‘탈핵과 에너지전환’을 목표로 ‘에너지 믹스’를 재편하고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그 일은 에너지 산업구조 개편을 전제로 하는 강력한 의지와 비전, 세부 정책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수준의 정책으로는 어림도 없다. 대선 후보들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공약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임기 5년 동안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실현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한층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2012.1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