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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안철수 현상’과 소통하려면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안철수 교수는 대선후보에서 사퇴했지만 여전히 대선정국의 주요변수로 남아 있다. 그는 현재 한국정치의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상징이고, 정치 변화를 위한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금 올 한해를 돌이켜보면, 안철수 교수에게나 우리 국민에게나 간단치 않은 시간이었다. 연초만 해도 4월 총선에서의 야권 승리, 그것도 압도적 승리까지 예상이 되었으나 결국 야권의 실패로 끝났다. 통합과 연합이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은 결과였다. 그 결과 총선 이후 박근혜 대세론이 거센 파도처럼 몰려왔다. 이때 안철수 교수가 홀로 이 파도를 막는 방파제로 나섰다. 그리고 혈혈단신으로 새 정치를 갈망하는 에너지를 모아 철옹성처럼 보였던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렸다. 마지막에 단일화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퇴해 많은 사람을 안타깝게 했지만, 지금 민주당과 야권이 대선승리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에는 그의 공이 절대적이다.

 

문재인과 민주당, 안철수를 잠시 잊어라

 

물론 단일화 과정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감동적인 단일화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되면서 지지층에서초차 피로감이 급속도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단일화가 되어 많은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했지만 변화를 갈망한 사람들이 결집하지는 않고 있다. 지난 9월 21~22일 진행된 <한겨레> 여론조사에서는 문후보와 안후보의 단일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58.1%가 단일화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를 야권 단일후보에 대한 지지도였다고 간주하면 현재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는 이와 큰 차이가 있다. 두 후보가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한 후보가 사퇴하는 방식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지면서 '컨벤션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단일화는 되었지만 이번 대선은 생각보다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현재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다소 뒤지고 있지만 박근혜의 지지율은 대체로 단일화 이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야권 지지표, 특히 안철수를 지지하던 유권자 중 상당수가 부동층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가 다소 낮게 나오고 있지만, 이들이 투표장에 나온다면 박근혜를 선택하기보다는 문재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들을 어떻게 투표장에 나오게 할 것인가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한층 안철수의 지원에 매달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안철수 현상'과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잠시 안철수를 잊을 필요가 있다. 단일화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는 안철수 교수와 안철수 캠프 인사들과 합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치 현실을 몰라서가 아니다. 이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안철수 후보도 사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정권교체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으로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양약식 대증요법이며 체질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야권 지지자들은 두 캠프의 결합과 함께 대선에서 선택의 대상이 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의 체질개선도 원하고 있다.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주기를

 

민주당이 외부로부터 수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낯선 모습이 아니다. 2008년 총선 참패로 최대 위기에 맞닥뜨렸던 민주당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연합정치로 기사회생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는 '혁신과 통합' 등 시민사회의 역량을 흡수하며 큰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총선 이후에도 안철수 현상을 통해 새 기운을 얻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 고비마다 변화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특히 4월 총선은 외부수혈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도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안철수 후보와 함께 논의한 정치쇄신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측의 제안 중 일부 내용에 대해 트집을 잡거나 아마추어리즘으로 몰아붙였으나 정작 자신의 정치쇄신 구상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정확하게 전달하지는 못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자신으로 단일화가 되었으니 이제 안철수와 안철수 캠프의 지원만 받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선거운동에 임한다면 유권자들, 특히 안철수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마음은 민주당으로부터 더 멀어질 것이다. 사실 선거운동본부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유권자들의 큰 관심사가 아니다. 더 큰 관심은 단일화 이후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는가에 있다. 지금은 안철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선거일을 불과 20여일 앞두고 무슨 뾰족한 방안이 있겠느냐고 반문한다면 이는 선거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일상적인 선거운동을 위한 시간을 절약해서라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특히 선거 승리 이후에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정에서 민주당이 다시 기득권에 연연하거나 오만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주어야 한다. 인수위 구성과 새 정부 구성 등의 과정에서 자신을 비우고 국민참여의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앞세우겠다는 구체적인 결의를 보여주어야 한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쓸 때는, 측근들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을 그러한 구체적 결의의 예로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26일 박근혜 후보가 이미 유사한 약속을 했다.

 

이미 한걸음 늦고 있는 것이다. 세력을 늘리기 위한 통합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는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줄 때 안철수 현상과의 소통, 그리고 진정한 통합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이 큰 승리를 거쳐 2013년체제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 것이다.

 

2012.11.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