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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나의 냉소에 부치다

황정은 / 소설가

 

지나치게 조용하고 맥없다고 생각했는데 투표 날짜가 다가올수록 시끌벅적한 잔치가 되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야. 그래도 어딘가에는 이 잔치가 아무래도 내 것 같지는 않다고 여기는 네가 있을지 몰라서, 이 잔치에 내 몫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여기는 네가 꼭 있을 것 같아서, 쓰고 나면 괴로울 뿐인 이런 글을 쓴다.

 

내게는 1984년에 관한 짧은 기억이 있어. 특별하게 나의 부모가 가난했던 시절로 나는 아홉살이었어. 그 시절에 나의 가족은 밥때가 되면 동그란 밥상 앞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틀어두고 밥을 먹곤 했는데 그날도 그런 저녁이었을 거야. 뉴스에 등장한 국무총리라는 말을 듣고 나는 국무총리가 뭐냐고 물었어. 아버지는 대통령 다음가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어. 그럼 대통령이 죽으면 국무총리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냐고 나는 물었어. 아버지는 그 질문을 듣고 놀라서 내 입을 막았어. 한 손으로 내 머리를 누르고 다른 손으로는 내 입을 틀어막은 채로 그는 나를 혼냈어.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어. 어디 가서 그런 말을 하고 다니면 부모가 잡혀간다는 거였어. 하면 안된다는 다짐을 몇번이나 두고서야 그는 손을 거뒀어. 아버지가 어찌나 손에 힘을 줬는지 나는 입이 아팠고 이도 아팠는데 아프다는 내색도 하지 못했어. 두려움 때문이었어. 내 부모가 정말 무언가를 무서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어. 당시의 내게는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이 나의 부모였는데 그 부모가 무서워하는 것이라니 그건 얼마나 무서웠겠어. 그런 시절이 있었어.

 

나는 나의 첫 대통령 투표를 기억하고 있어.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내가 아저씨, 라고 부르는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했어. 그의 정당, 그의 가치관, 그가 제시하는 정책에 호감을 느끼거나 공감해서는 아니었고, 다만 비주얼적으로 그가 나의 아버지와 가장 닮았기 때문이었어. 하나 더 말해보자면, 그래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고 묻던 그의 반문, 그 정중한 욕 같던 반문이 유쾌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오기를 부리듯 투표를 하면서도 실은, 누가 되든 나와는 관계없다고 나는 생각했어.

지금의 너처럼 내게도, 뚫고 나와야 할 지옥이 있었고, 나의 지옥에 전화 한통 걸어서 안부 한번 물을 리 없는 대통령 따위, 무슨 상관이었겠어. 그 먼 자리에 누가 앉든 서든, 그게 내 소소한 일상과 무슨 상관이었겠어. 어차피, 하고 냉소한 뒤로 나는 무기력했어. 나의 이십대가 그랬고 그것이 내가 선택한 나의 정치적 태도이다,라고 나는 생각했어.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한 채로 편하게 남아 있기를 선택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 냉소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은 쉬우니까. 별다르게 힘들이지 않아도 좋으니까. 누가 국회로 들어가든 어차피 그 사람이 그 사람,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두 눈이 오로지 나의 손, 나의 발 근처에만 머물렀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라. 세상은 달라졌고 매순간 달라지고 있었는데, 다만 내가, 그 달라짐을 감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추지 못했을 뿐이었던 거지.

 

지난 대선 이후로도 세상은 달라졌어.

그 달라짐을 겪고서야 너와 나는 잃은 것들, 잃을 수 있는 것들, 빼앗길 수 있는 것들을 알아보았고,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으므로, 이제 다시, 달라질 수 있어.

바로 지금, 1984년에 내가 아버지에게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묻는다고 이가 아플 정도로 입을 틀어 막히는 아이가 있을까. 그런 질문을 한다고 아이의 입을 틀어막는 부모가…… 없다면 그건 너와 내가 이미 달라졌기 때문인 거야. 너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이미 달라졌기 때문인 거야. 그 달라짐은 특별한 한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라기보다는 너처럼 그리고 나처럼, 소소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들이 국민으로서의 자신을, 자신들의 고민을, 가장 압도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선거였던 거야.

 

그러므로 나는 이번 선거가 축제가 되었으면 좋겠어. 월드컵보다도 올림픽보다도 재미나고 신나는, 잔치가 되었으면 좋겠어. 유력한 대선후보들의 잔치가 아닌,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 너와 같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즐길 줄 아는, 잔칫날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날 그 자리에 네가 있다면 좋겠어.

 

2012.12.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