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무엇이 문제인가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력계획)은 쉽게 말해 지역 사회가 한바탕 갈등과 혼란을 겪고서야 겨우 건설할 수 있는 핵발전소, 석탄화력발전소 등을 어디에, 얼마나 건설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대도시와 산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서 개인토지를 공시지가로 강제 매입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송전탑 부지도 결정한다. 당연히 누군가는 이익을, 또다른 누간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계획이다.

 

이렇게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는 전력계획을 발표하는 공청회가 첫번째는 무산되고 두번째는 소동 끝에 설연휴 직전인 지난 7일에 개최되었다. 그리고 다음주 18일 월요일에 전력정책심의회를 통과하면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확정될 예정이다.


2년마다 앞으로 15년 중장기 전기수요를 예측하고 발전소와 송배전 시설을 계획하는 전력계획은 2010년에 5차 계획에 이어 2012년말까지 6차계획이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새정부의 에너지 정책 변화의 눈치를 본 것인지 미루다가 갑자기 1월말부터 속도를 낸 것이다.

 

과정과 내용에서 부실한 계획

 

그러다 보니 과정도 내용도 역대 계획 중에서 가장 부실하다. 수요계획과 발전계획을 논의하는 소위원회 개최 횟수도 예년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전력계획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요예측 회의도 서면으로 대체해버렸다.이러니 내용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가 원전을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해서인지 원전 계획이 빠졌다. 8년째 공사중단 중인 신고리 원전과 수도권을 잇는 초입, 밀양 송전탑을 포함한 송배전 계획도 빠졌다. 수요관리와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목표만 나와 있고 구체적인 계획이나 수단이 없어 희망을 피력한 정도일 뿐이다.

 

이번 계획은 결국 세가지로 압축된다. 우리는 앞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과 같이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가 될 것이고,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서 평균 22%의 전력예비율을 확보할 것이며, 그를 위해서 세계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상관없이 석탄 화력발전소를 대폭 확대할 것인데, 대부분 민간 건설기업이 건설할 것이다.

 

미국보다 1인당 전기소비 높아질까

 

미국, 캐나다, 호주 같은 나라들은 국토 면적이 넓다. 1인당 점유하는 공간도 넓고 송배전 손실도 많다. 당연히 1인당 전기소비량이 높다. 반면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가 높다. 전기소비가 많을 필요가 없는 조건이다. 그런데 이미 독일, 영국, 일본보다 1인당 전기소비가 많은 상태고, 6차계획에 따르면 2024년경에는 현재의 미국보다 1인당 전기를 많이 쓰는 나라가 될 것이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1990년대 들어서 전기소비가 정체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4배 이상 증가했고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왜 이런 예측이 나온 것일까. 수요예측에 대입하는 변수가 문제다. 이번 계획에서 변수들은 연간 GDP 증가율, 에너지다소비 산업비중, 그리고 전기요금이다. 그중 전기요금 상승률을 물가상승률의 3분의 1로 잡았다.

 

지금도 전기요금이 원가보다 낮아서 한국전력은 전기를 팔수록 손해라고 한다. 특히 상업용‧산업용 전기요금이 지나치게 싸다보니 불필요한 전기 사용이 많다. 제조업 전기소비의 절반이상이 전기가 필수적이지 않은 가열, 건조, 난방, 로 등에 이용된다. 고층 빌딩이 유리건물이면서 전기로 냉난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렇게 쓰는 전기가 전체의 77%가량이다. 가정에서 쓰는 전기는 15% 안팎에 불과하고 앞서 비교한 나라들의 절반도 안 된다. 결국 산업용‧상업용 전기소비를 다른 나라들에 비해 두세배는 쓴다는 것인데, 이렇게 비효율적인 전기낭비 구조는 80년대에 9차례에 걸쳐 비정상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한 정책에서 비롯됐다. 전기요금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3분의 1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비정상적이었던 80년대를 포함한 지난 과거 30년 동안의 전기요금 상승률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전기요금 상승률은 물가상승률과 같았다.

 

일단 발전소부터 짓고 보자, 4대강 기업에 주는 MB의 마지막 선물

 

과도한 수요예측을 조정할 책임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9‧15 정전사태의 트라우마 때문에 전력공급 유지에 급급한 공무원들이 선택한 방법은 일단 발전소를 많이 짓고 보자는 것이다. 평균 22%의 전력예비율은 1년 중 여름과 겨울 며칠 또는 몇시간 동안 필요하게 될 최대전력소비에 대한 대비책일 뿐이다. 그러니 평소에는 70~80%의 전기가 남아도는 상황이 될 것이다.

 

좁은 국토에 이제는 발전소가 들어설 데가 부족해 청정지역 강원도까지 진출하고 수도권 내륙에도 대형 발전소가 세워진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화력발전소다. 6차계획을 들여다보면 화력발전소는 다른 분야와 달리 유독 설립부지와 준공연도 등이 자세히 기재돼 있다. 총 18기가 추가되었는데 이 중에 민간발전소가 12기다. 6차계획에 해당하는 2025년 이후가 아니라 2016년에서 2020년에 몰려 있어서 사실상 5차계획의 보완에 불과하다. 대부분 박근혜정부 임기 중에 착공을 해야 준공할 수 있는 계획들이다. 그런데 민간 화력발전소 기업들의 면면이 낯익다. SK건설, 삼성물산, 동양, GS, 대우건설, 동부, 현대산업개발 등 4대강사업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대규모 건설기업들이다.

 

한전은 민간 화력발전회사들에게서 한전 발전 자회사들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사들인다. 그만큼 민간회사들의 영업이익은 늘어난다. 대기업들은 싼 전기요금으로 특혜 받고 비싸게 전기 팔아서 특혜 받는 이중 특혜를 얻고 있다. ‘4대강 기업에게 주는 MB의 마지막 선물’이라는 비아냥은 여기에 근거한다.

 

무리하게 확대되는 화력발전소 계획 탓에 부처 내 협의도 무시되었다. 인천 앞바다 영흥도에는 6호기까지 석탄화력발전소가 증설될 계획이다. 수도권 대기오염 문제 때문에 5,6호기도 건설 승인 당시 향후 증설 설비에 대해서는 ‘청정연료’를 사용하도록 조건부로 승인했는데, 이번 6차 전력계획에서는 영흥도 석탄화력발 전 7,8호기 건설 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국내외에서 사기, 휴지조각이 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명박 대통령이 녹색성장 구호를 이용해서 4대강사업과 원전만 추진한 것이 아니다.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예측(BAU) 대비 3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고 세계에 공언했다. 재작년에는 이를 위한 부문별 할당량도 발표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의 36%가 발전과정에서 나온다. 그만큼 발전부문의 감축 목표가 중요한데도 30%보다 낮은 26.7%를 할당했다. 그러나 이번 6차계획에서는 오히려 5차 때보다 202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예측치가 19% 더 많다. 결국 수요를 관리해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다고 해도 2020년까지보다 줄어들기는커녕 10%가 더 많게 되었다. 국제적으로 사기를 치는 꼴이 된 것이다.

 

사실 이는 유보된 원전과 송배전 시설도 마찬가지다. 원전을 건설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미 작년 6월 이사회에서 신고리 7,8호기를 취소하고 이를 영덕 신규부지로 이전할 것을 결정했고, 지경부는 올해 예산에 삼척과 영덕 신규원전 부지 지자체에 지급하는 특별지원금을 반영‧확정해 놓고 있다. 한편, 한국전력은 신규원전 건설을 전제로 하는 765kV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겠다고 주민들을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전 계획이 유보되었다면 관련 예산 집행도, 송전탑 건설 공사도 중단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력정책 책임질 이가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전기가 남아돌던 70~80년대에 원자력발전소를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싼 전기요금을 기반으로 한 업종들을 진흥시켰다.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되고도 한참 지난 지금도 이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술이 발달하고 정책도 선진화되어 전기수요는 정체를 넘어 감소될 수 있다. 전기수요를 줄이는 기술과 산업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매년 20~70% 가량 고속성장을 하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시장은 장밋빛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역행하고 있다.

 

정부관료들이 세상이 변한 것을 모를 리 없다.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이다. 엘리트 관료 중에서 싼 전기요금으로 전기수요를 늘려 왜곡되고 비효율적인 에너지소비구조를 갖게 된 지난 시절의 전력정책을 평가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전력정책을 세우려고 시도하는 이가 없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6차계획은 이대로 가다 다함께 죽자는 것이다. 자본은 그 사이에도 이익을 챙기기에 바쁘다.

 

이번 6차계획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그리고 너무나 노골적이다. 6차계획에 담겨야 할 많은 계획들을 올해 마련될 상위 계획인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이후로 미뤘다. 그렇다면 차라리 확정하지 않는 편이 낫다.

 

2013.2.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