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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세가지 ‘신뢰 게임’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싱크탱크 ‘미래지’ 원장

 

북한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중요 일정에 개의치 않고 과감한 선택을 해왔다. 미국 대선 직후인 2012년 12월 12일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것도 그렇고,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후 첫 연두교서를 하기 직전인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한 것도 그렇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눈치를 안 보겠다는 매우 과감한 결단과 메시지다.

 

떠오르는 또 하나의 강대국인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의 행동이 과감한 것은 마찬가지다. 중국은 작년말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유엔 제재안 2087호 채택을 지지했고 3차 핵실험 징후가 나타나기 전에 북한의 핵실험을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중국에 대해 북한은 매우 과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유엔 제재안 채택을 놓고 공개적으로 중국을 향해 강한 불만을 나타냈고, 급기야 3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이에 최근 중국에서 반북한 정서가 표출되기 시작했고,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했는지 지난 3월 7일 고강도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 2094호 채택에 중국이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당장의 핵 억지력 확보에 성공한 북한

 

이 일련의 과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북한이 주변 강대국에 맞서 핵 억지력을 확보해온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처럼 세계적으로 고립된 국가, 적대적 국가에 둘러싸인 국가는 믿을 만한 핵 억지력이 없으면 당장 오늘내일의 생존도 담보하기 어렵다. 이는 중동의 아랍 국가들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에 핵도 없고 미국과의 강력한 군사동맹도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입장에서 그러한 악몽을 막기 위해선 믿을 수 있는 핵 억지력, 특히 적대국인 한국과 미국에 대한 핵 억지력이 필요하다.

 

핵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기술적인 면에서의 핵능력(capability)이고 다른 하나는 그 능력을 실제로 사용할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얻는 실제 핵사용의 신뢰(credibility)다. 아무리 핵능력이 있어도 실전에서 사용할 의지가 없다면 상대방은 억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실전에서 사용할 의지가 있더라도 믿을 만한 핵능력이 없으면 상대방은 겁을 먹지 않는다.

 

북한은 지난 수십년간 최우선적으로 핵능력 확보에 매진해왔다. 플루토늄을 사용한 핵능력,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한 핵능력, 그리고 핵폭탄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중장거리 운반수단에 관한 기술력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시설을 공개하기도 하고, 미사일도 쏘고 핵실험도 했다. 작년말과 금년초에 있었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성공과 핵실험으로 인해, 풍부한 우라늄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제 미국까지 사정권에 둔 핵무기 개발능력을 전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이제 그 주변국은 핵능력이 없다는 전제로 북한을 대할 수 없다.

 

한편 두번째 조건인 핵사용의 의지 면에서도 북한만큼 확고한 국가를 찾기 어렵다. 그동안 북한이 시도한 수차례의 도발에 따른 예측 불가능성이 실제로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에 더해서 이번 장거리 로켓 발사결정과 3차 핵실험의 결정은 강대국이 아무리 견제하고 겁을 주어도 ‘한다면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만약 이번에 중국의 설득과 압박으로 핵실험을 포기하고 장거리 로켓 발사를 중단했다면 북한의 핵억지력은 큰 손상을 입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제 2013년초, 북한은 핵억지력을 확보하는 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중국-북한의 힘겨루기 게임을 신뢰구축 게임으로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중국은 어떠한 문제를 안게 될까? 중국의 우선순위가 지속적 경제성장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안정에 있다는 점은 여전할 것이다. 경제성장이 지속되지 않으면 중국 정부가 거대한 국가를 통치하는 1차 전선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중국은 대국으로서의 영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 문제를 안게 되었다. 힘은 있지만 쓰지 못한다는 ‘힘 사용의 신뢰’ 문제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외치며 중국을 압박해오는 상황에서 영향력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 미국과 일본에 대한 중국의 억지력은 급감할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그리고 전술적으로 중국은 북한에 대해 ‘힘 사용의 의지’를 보일 수밖에 없다. 최근 외견상 달라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태도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지금 한반도의 주변은 신뢰의 게임 속에 있다. 북한과 중국은 억지력과 영향력 확보를 위해 힘을 실제로 쓸 수 있다는 ‘힘 사용의 신뢰’ 게임을 하고 있는 한편, 한국은 ‘신뢰 프로세스’를 말하고 있다. 이 세가지 중 ‘힘 사용의 신뢰’ 게임은 어느 순간 통제 불능의 상태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 한국은 가능한 한 빨리 남북한의 ‘신뢰구축’ 게임을 작동시켜 나머지 두 게임의 판을 엎어야 한다.

 

2013.3.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