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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용산개발사업,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변창흠 /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52억원의 이자채무를 상환하지 못해 부도의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전략적 중심지에, 개발지구 내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공기업 코레일과 서울시의 의지가 실린 SH공사, 국내 최고기업 30개사가 참여한 개발사업이기에 충격이 크다. 앞으로 이보다 좋은 입지에서, 이보다 신뢰할 만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도시개발사업이 나타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한발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상황은 달리 보인다. 우선, 사업의 규모가 지나치게 컸다. 사업비 31조원으로 단군 이래 최대라고 불렸던 이 사업은 부지만도 516,692㎡로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90%에 달한다. 서울시가 토지만 개발하고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 민간기업 들이 땅을 사고 직접 사옥을 지어 입주했던 DMC와 달리, 용산은 사업시행자가 건축과 분양까지 맡은 사업이다. 건설하는 시설의 연면적만도 335만㎡이며 오피스 건설면적은 서울시 전체의 한해 공급면적을 상회한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한강르네상스사업을 추진하면서 안 그래도 큰 부지에 서부이촌동의 주거지역까지 포함시켜 덩치는 더 커졌다.

 

시장 예측과 토지가격 조절 실패가 원인

 

또다른 문제는 시장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사업은 현재 건설 중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 외에도 용산국제업무단지, 상암DMC, 뚝섬, 잠실운동장, 삼성역, 중구 등 7개의 100층 이상 초고층빌딩 건설사업이 검토되던 시기에 등장했다. 정부청사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 본격화되고 저성장시대에 돌입한 서울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규모의 개발사업을 뒷받침할 만한 수요가 나타날 수 없다. 서울시 내에는 여전히 상암DMC, 마곡첨단산업단지, 문정미래형업무단지, 위례신도시 등이 개발 중이다. 게다가 31개의 재정비촉진지구와 약 1300개의 정비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이 사업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토지가격 조절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토지가격은 2001년부터 2010년 기간 동안 872%가 올라 같은 기간 서울시 지가상승율 61%의 14배에 달한다. 이 때문에 당초 장부가액으로 8천억원대에 불과했던 철도기지창의 토지가격은 최종 낙찰가격 8조원, 분할납부 이자를 포함하면 9조 2천억원으로 부풀려졌다. 나중에 포함된 서부이촌동 부지는 전체 면적의 11%에 불과하지만 보상비만 3조원에 이르렀고, 사업이 장기화되면서 금융비용을 더욱 키우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문제를 예측하고 관리하지 못한 것은 개발주체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초 코레일은 공기업 경영정상화 차원에서 만성적인 부채 상환을 위해 철도기지창 매각을 추진했으나, 경험에 비해 과도하게 규모가 큰 개발사업을 주도하다가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개발주체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에 출자한 기업들은 사업의 장기적인 운영수익보다는 단기적인 분양수입이나 시공이윤, 프로젝트금융 수수료에 관심이 있었다. 개별출자자의 이익은 전체 개발사업의 이익과 상충되기 때문에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웠고, 그 때문에 해외의 투자자를 안정적으로 유치하는 데도 실패했다.

 

공공성 강화한 새로운 개발주체 구성해야

 

용산은 서울의 5대 부도심의 하나일 뿐 아니라 도심, 여의도, 상암, 강남으로 연결된 다이아몬드형 국제업무지구의 중심지에 입지해 있다. 이미 호남선 KTX 시발역일 뿐 아니라 앞으로 신분당선, 인천국제공항철도 등으로 연결될 서울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 지역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서울의 발전방향과 경쟁력이 좌우된다. 따라서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은 수요와 사업성 부족, 사업관리의 실패로 중단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일시적인 사업성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정부의 출자나 서울시의 토지상환채권 발행으로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용산국제업무지구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세우고 계획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 초고층빌딩과 최고급 주택으로 들어찬 서울에서 가장 값비싼 공간이 아니라 용산민족공원과 연계하여 공공성과 개방성을 지니면서 서울의 전략산업 성장의 토대가 되는 업무공간을 창조해내야 한다. 이 일을 민간 개발주체에만 맡길 수 없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주도하여 용산지역을 개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고 사업을 주관할 수 있는 개발공사를 설립해야 한다. 이 개발공사의 운영에는 토지소유자와 지역주민이 참여해야 한다.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고려하면 장기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발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에 토지매각 대금과 보상금이 과도하게 투입되는 사업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전체 토지가격을 재평가하고, 매각대금을 사업 후에 회수하거나 지분으로 출자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단기적인 분양수입이 아니라 토지를 임대하거나 건축물을 건설·관리하면서 장기적인 운영수입을 통해 꾸려갈 수 있도록 사업을 재설계해야 한다.

 

용산의 위기는 오늘날 우리 개발사업의 현주소이다. 뉴욕의 배터리파크시티는 공공이 개발하고 토지를 임대해서 경쟁력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토오꾜오의 롯본기힐즈는 모리빌딩이 주민들과 오랜 협의를 거쳐 창조적인 공간을 만들었고 지금도 관리·운영하고 있다. 분양수입을 위해 ‘먹튀’하던 시대는 갔다. 저성장시대에 맞는 새로운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맞는 개발 주체와 방식을 도입하는 것만이 유일한 용산의 해법이다.

 

2013.3.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