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김재철 퇴임 이후 MBC와 박근혜 시대의 방송정책
조준상 / 공공미디어연구소장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MBC 사장 김재철씨를 지난 3월26일 해임 의결했다. 지난해 3월부터 11월까지 세차례 부결되고 나서 네번째 만에, 그것도 찬반 5 대 4로 가까스로 결정이 났다. 김씨가 취임한 게 2010년 4월 5일이니 임기 3년에서 9일이 모자라는 셈이다.
그는 <피디수첩> 불방 결정을 비롯해 각종 시사프로그램을 없애고, 7억여원에 이르는 법인카드 유용 혐의를 비롯한 숱한 비리 의혹의 주범이었다. 네차례에 걸친 구성원들의 파업이 있었고, 11명이 해고되고 200여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부럽지 않은 전권을 지녔던 그는 이렇듯 현대판 분서갱유를 MBC 안에서 서슴없이 자행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한 시사주간지의 여론조사가 보여주듯이, 그의 재임기에 MBC 신뢰도는 2010년 18.0%에서 2012년 6.1%로,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으로 <뉴스데스크>를 꼽는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11.8%에서 2.3%로 곤두박질쳤다.
MBC 정상화의 험로와 공영방송 구조
그런 그에게 MBC 역사상 첫 해임된 사장이라는 극적인 불명예와 오명을 임기 만료 9일 전에 안겨줬으니 대다수 MBC 구성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가고도 남게 한다. ‘사필귀정’으로 다가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해임 의결 직후, 김씨가 부당 전보한 65명이 지난 2일자로 원직에 복귀하면서, MBC 정상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상화의 길은 험난하고 험난하다. 게다가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 ‘김재철의 서울MBC'와 ’어정쩡한 공영방송 서울MBC‘를 구분하고, 전자의 폐해를 극복함과 동시에 후자의 어정쩡함을 보수하는 제도화를 함께 모색해야 하기에 그렇다. 어정쩡한 공영방송 거버넌스 구조를 뜯어고칠 필요성은 김씨가 쫓겨나면서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는 물러날 때까지도 서울MBC가 놓인 어정쩡한 공영방송 구조를 십분 활용했다. 방문진의 해임 의결 하루 뒤인 4월 27일 사표를 내고 퇴직금 3억여원을 일시불로 받아간 것이다. 본인의 귀책사유로 해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런 ‘먹튀’ 행각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문제는 이런 황당한 사태가 어정쩡한 공영방송 구조에 내포돼 있다는 데 있다. 방문진은 최대주주일 뿐 정수장학회를 포함한 전체 주주의 해임 결정이 있어야 한다든지, 대표이사직 사임과 주주총회에서 이사직 해임은 별개의 문제라는 식의 법률적 다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얼마가 됐든 시청자의 수신료 일부라도 받는 공영방송이었다면, 본인의 귀책사유로 해임이 의결된 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는 행태는 경영원리 차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간단치 않은 제작 자율성 확보
김씨 이전의 서울MBC 거버넌스의 실체는 전문가주의에 기초한 ‘내부자 통제 모델’이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의 장점은 자유로운 의견교환과 제작 자율성 등으로 거론돼왔다. 김재철씨가 도입한 ‘시용(試用) 기자’는 내부자통제 모델의 근간이던 전문가주의를 뿌리부터 부정한 것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옛 거버넌스를 그대로 복원하려는 시도는 낭만적인 꿈에 해당한다.
반면교사는 KBS의 거버넌스 모델이다. 대의제 규제형식을 갖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이사회에 내부 구성원의 전문가주의가 결합하는 방식이다. 김씨 이전의 서울MBC에서 대의제 규제형식은 부재하다. 방문진은 KBS 이사회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권한과 기능도 그렇다. 얼마가 됐든 수신료를 방송재원의 일부분으로 삼는 거버넌스 구축 노력이 안팎의 호응을 더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김재철의 서울MBC‘를 극복하는 일은, 결국 경영진이 제작 자율성을 보호해주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여러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고 채워내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가 깔아놓은 방송 장악과 미디어 통제라는 토양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 달콤한(?) 매력은 이미 대선 과정에서 충분히 발산됐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방송과 미디어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정책의 전체적 방향이 ‘현상 유지・관리’로 흐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배경을 이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방송 장악 없다는 약속을 믿을 수 있나
“방송 장악할 의도가 없음을 약속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말은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하지만 글렀다. 오히려 이명박정부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박근혜 선거캠프에 참여한 친박계 중진이자 4선 의원 출신으로 새누리당 당적을 잠깐 내려놓은 이경재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지명한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에 업무의 3분의 2를 넘겨주고 방송광고 정책 정도만을 온전히 맡는 정도로 방통위가 축소됐음을 감안하면, 훨씬 더 노골적인 의지의 표현이라 할 만하다. 100% 인수위원회 방안대로 미래창조과학부가 출범하지 못하는 데 대한 ‘보복 심리’마저 느껴진다. ‘제2의 최시중’ 지명이라 분석되는 이유다.
이명박정부 때 공보처 차관으로 케이블방송 도입을 주도했느니 하는 지명 근거는 부차적이다. 핵심은, 그의 지명을 통해 보도여론에 진출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폐지하고 족벌 신문자본들이 ‘종편’이라는 이름으로 보도여론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한 2009년 언론관계법 날치기 처리에 면죄부를 줬다는 데 있다. 이씨는 당시 날치기 처리를 주도했던 인물의 하나다.
박근혜정부 아래에서는 날치기 미디어법이 내포한 또 한가지 방향이 전면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정부가 종편에 ‘올인’ 하고 그 뒤치다꺼리 하느라 미처 관심을 쏟지 못했던 방향이다. 바로, ‘올아피(All-IP, 음성․데이터․멀티미디어 등 모든 서비스가 인터넷 기반으로 제공됨) 환경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진흥’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 사업자에 의한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시장의 재편이다. 교육이나 의료 분야에서 거대 통신사업자와 수도권 병원이나 학원 등이 손잡고 지역을 상대로 인터넷을 통해 원격 의료서비스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리활동도 본격 추진될 것이다. 이를 위한 준비는, 이미 2012년 10월 MB 정부 때 ‘기가코리아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마련돼 있다.
장악된 방송 상황을 유지・관리하는 채찍과 당근의 병행, 거대 사업자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지형 재편을 위한 규제완화, 불행하게도 김재철씨의 해임(?)은 바로 이런 흐름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2013.4.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