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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개성공단과 북한의 의도

김영윤 / 남북물류포럼 회장

 

극한으로 치닫는 북한의 행보가 예상보다 훨씬 빨라졌다. 개성공단 통행을 차단했던 북한이 숨 돌릴 겨를도 주지 않고 다시 개성공단 운영을 잠정 중단시키는 조치를 단행하고 5만 3천여명에 달하는 근로자를 철수시켰다. 원자재가 공급되지 못하고 근로자가 없는 상태에서 조업은 더이상 불가능하다. 공단이 폐쇄된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망연자실한 기업들은 중단의 장기화가 가져올 엄청난 직·간접 손실을 걱정하고 있다. 상황이 왜 이런 극한으로 치달았을까?

 

북한이 비록 "만약 개성공단 남한 근로자들이 인질이 될 경우 군사적인 조치를 감행하겠다"는 국방부장관의 발언을 빌미로 개성공단의 조업을 중단시키기는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남한을 더 큰 전쟁의 위협으로 몰아넣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에서 개성공단은 지난해 12월 미사일 발사와 금년 2월 제3차 핵실험에 따라 경색된 남북관계의 희생양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공단 중단, 북의 속내는?

 

물론 북한이 가진 개성공단 자체에 대한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개성공단의 확대를 요구했으며, 계획대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 대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이를 실천하기는커녕 "남북관계가 경색되어도 '달러 박스'인 개성공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남한의 발언에 자존심이 상한 북한이 마침 국방부장관의 '인질' 발언을 문제 삼아 개성공단을 폐쇄로 치닫게 한 것이다. 그러나 기실 그 이면에는 개성공단 관련 대규모 경협을 원하는 의중이 있는지 모른다. 한편 그동안 북한은 개성공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인력을 중국으로 송출시켜 돈을 벌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는 주장도 있다(남문희 〈개성공단 인력 중국으로 보내 돈 더 번다?〉, 《시사IN》 2013.4.13).

 

그럼에도 남북관계를 극도로 악화시키고 전쟁위협을 가하는 북한의 저의는 무엇일까? 북한 내부의 결속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을 압박해 관계를 정상화하고, 남한과는 경제협력과 지원을 얻어내는 데 무게가 실린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 때문에 체제를 위협받고, 경제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봉쇄당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체제 존속과 경제난국 돌파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남한과의 평화협정 체결이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이를 들어주지 않는 미국과 한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힘이 필요하다. 상대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하면서 효율적인 방법은 핵을 개발하고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투발수단을 갖추는 것이다. 미국·남한과 대화가 없었던 기간에 북한은 전력을 다해 핵을 개발하고 이를 운반할 미사일을 실험해왔으며, 그 결과 이제는 무시하지 못할 성과를 가졌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북한이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큰소리치며 위협을 가할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남북평화협정 체결의 수단

 

최근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나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Key Resolve) 및 독수리(Foel Eagle) 연습에 대해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핵공격까지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도 미국과 한국에 대적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졌다고 믿는 데서 연유한다. 북한은 키리졸브와 독수리 같은 연습이 북한을 물리적으로 무너뜨려 병합하려는 훈련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되받아치는 차원에서 전쟁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미사일 발사에 대한 유엔 제재도 마찬가지다. 유엔 안보리 대북 추가제재 결의 2094호는 이전과는 다른 강력한 제재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활동을 저지하고 관련 물자와 자금을 차단하는 조치를 포함, 강화된 금융제재와 화물 검색, 선박·항공기 차단 및 금수조치 등을 담고 있다.

 

이같은 조치는 북한으로 하여금 8년 전 공포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미국이 BDA의 북한 금융자산을 동결함으로써 엄청난 곤란을 겪었던 북한에겐 악몽에 가까웠다. 키리졸브 훈련도 매한가지다. 비록 ‘방어훈련’이라고 해도 주한미군과 해외 미군 병력, 한국의 군단, 함대 사령부와 비행단급 부대를 포함, 핵추진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등이 동원되는 대규모 훈련에 체제위협을 느끼는 북한은 오히려 전쟁 불사로 대응하려는 것이다. 여기에도 물론 미국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가장 급한 과제는 남북 양쪽이 더이상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의식해서 취할 조치가 아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곧바로 실천해야 할 일이다. 주고받기식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차분하게 대화할 분위기를 조성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남한은 극도의 위협과 공포를 조성하는 북한의 궁극적 저의를 세심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가 핵문제 해결에 대한 새로운 모색에 다가설 수 있도록 협조하고, 개성공단 향방에 자신의 생각을 차분히 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먼저 대화를 제의하는 결단이 필요

 

북미관계의 개선을 위해 우리 정부가 협력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극도로 대치된 상태. 어느 쪽이라도 일단 먼저 대화할 용의를 보인다면 상대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많은 국민이 최고국정권자가 고뇌에 찬 결단으로 대화를 제의하는 감동적 모습을 원한다. 직접적이든 제3자를 통해서든 대화의 통로를 열자. 지금은 이것만을 생각해야 할 만큼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이 심각하다.

 

2013.4.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