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왜 지금이 북한과 경제적으로 협력할 적기인가
뤼디거 프랑크(Ruediger Frank) / 오스트리아 빈대학 동아시아학과장, 동아시아 경제 및 사회
이 글은 본지와 기사교류 관계에 있는 미국의 동아시아문제 전문지 《아시아퍼시픽 저널》(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의 4월 8일자 기고문을 축약 번역한 것이다. 대북관계의 전략 재설정이 한창이다. 이는 4월말 한미 독수리훈련이 끝나면 점차 드러날 것이다. 지난 60년대 북의 국방-경제 병진노선이 끝내 군사력 강화쪽으로 경도되었던 전례에 비추어, 최근 북이 내건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은 다른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개성공단 사태의 해결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상황에서 경제협력론자인 필자의 주장은 이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원문 제목은 "Why now is a good time for economic engagement of North Korea"(http://www.japanfocus.org/-Ruediger-Frank/3923)이다―편집자.
2011년 12월 김정은은 아버지 고(故) 김정일의 후계자로 발표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2012년 4월과 12월 두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하고 2013년 2월에 세번째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는 퇴색됐다. 핵실험 직후 평양은 위협적인 선언을 잇달아 내놓았는데, 그중에는 미국에 맞서 핵무기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이라는 발상이 대체 타당하기나 한 것일까?
제재는 평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나는 타당하다고 본다. 오히려 진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 지난 십년 중에서 가장 높을 수 있다. 얼핏 납득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처럼 낙관적인 전망을 하게 된 이유를 몇가지 들어보겠다.
(1) 북한을 고립시키겠다고 가장 강경하게 주창하는 사람들에게조차, 제재를 비롯한 소극적/적극적 비협력 정책들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음은 이제 분명해졌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계속 진행되고 있고, 북한정권은 전혀 불안정한 기색이 없다.
(2) 제재를 했을 때와 경제협력을 했을 때 각각 따르는 인도적 결과를 재차 강조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본다. 조이 고든(Joy Gordon)은 제재가 마치 중세의 포위공격처럼 작용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성 안에서는 노약자들이 제일 먼저 그리고 가장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굶주리는 아동들의 모습을 보면 북한 인민이 자신의 지도자들에 맞서 봉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대개는 현실적이지도 않다. 반면 북한경제의 개선은 대다수 북한 인민의 삶의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들이 받는 혜택은 각기 다르겠지만 말이다.
(3) 현실주의자들은 상호의존이라는 자유주의적 발상에 반대할 이유를 수두룩하게 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역 또는 투자를 통해 남과 북의 호혜적 경제관계가 구축되었을 때 그런 협력을 유지하려는 북의 관심과 이해관계가 커질 가능성을 저버려서는 안된다. 난점은 그러한 관계에서 ‘임계질량’, 즉 북한과 최소한의 교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1990년 이전의 사회주의 국가들뿐 아니라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남한에서 집권한 진보적 정부조차 그만한 교역량을 달성하진 못했다. 따라서 교역으로 인한 이득이 적었을 때 북한정권이 경제협력을 무효화하거나 협력 없이 생존하기는 비교적 쉬웠다. 지금까지 북한과의 상생이라는 이상은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협력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너무 적었기 때문이다.
(4) 경제적 교류협력정책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일반적 요인은 지정학적 고려사항들과 관련 있다. 중국이 북한의 유일한 ‘교사’가 되는 상황을 나머지 세계가 반기겠는가? 특히 남한은 이 점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한다. 중국기업들은 개별로든 합작 형식으로든, 대규모 광산 프로젝트에서부터 은행, 주유소, 자동차 정비, 종이타월, 플라스틱 장난감에 이르기까지 북한경제의 거의 모든 방면에 침투했다. 중국인들은 무자비하지만 매우 효율적인 교사다. 물론 많은 남한사람들이 (북한) 천연자원의 방출과 그로 인한 통일 배당금의 감소를 우려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진짜 걱정거리는 다른 데 있다. 점점 많은 북한사람들이 (자본주의라고 하는) 게임의 규칙을 배우고 있고 그런 게임을 함으로써 경험을 습득하고 있다. 게임에 대한 지식의 비대칭성이 줄어들면서, 남한의 상대적인 힘도 약해지고 있다.
(5) 금, 철광석, 자철광, 무연탄과 같은 북의 천연자연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싸고 숙련된 노동력, 그 행정적·경제적 주체들의 미약하나마 점증하는 역량, 그리고 개선 중인 법률·사업 환경 등이 조합을 이룬다면 북한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거대한 중국시장과의 인접성을 생각해보라. 세계에서 중국이라는 경제대국과 1,400km의 국경선을 공유한 나라는 많지 않다. 분명 북한은 지금까지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는 주로 북한 지도부가 보여온 일련의 주관적인 정치적 결정들에 기인한 것이지, 객관적 구조의 제약 탓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북한은 세계경제공동체에 충분히 통합되어 번영하는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요소들을 갖추었다.
북한지도부도 변화를 바라는가
이는 즉각적으로 경제협력을 뒷받침할 좀더 구체적인 (즉 현재적이고 김정은체제와 연관된) 다음의 이유들과 연결된다. 설령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해도 북한이 그런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조치들을 취할 의지가 있는가? 경제개혁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가? 나는 다시금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방점은 ‘가능성’에 찍혀 있다.
① 나는 관료들을 포함한 북한 사람들과 숱하게 대화를 나눠보았는데, 무역의 형태를 띤 경제교류, 그중에서도 (명백히,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자신의 조건을 따라야만” 한다는 유보조항이 여전히 달려 있지만, 그런 태도도 다소 누그러진 것 같다.
② 나는 김정은체제가 외부 세계와 경제적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이 최근 감행한 미사일 발사, 핵실험, 정치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나의 입장을 수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 김정은은 권력구축 작업에서 중요한 단계에 도달했다. 북한 내부의 경제개발과 관련해 쏟아진 2012년의 뉴스들(고용, 해고, 구조조정)을 보면, 김정은이 행정수단을 동원해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져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에서 소비주의는 이제 굳게 자리 잡아 2002년 7월 개혁 이후 10여년간 각계각층 북한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놓았다. 휴대폰 대수만으로 거칠게 추산해봤을 때, 약 200만명의 중산계급이 등장하여 자신의 위상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계급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김정은이 인민의 생활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길 바라고 있는데, 김정은은 2011년 12월 권력을 물려받은 직후에도 그렇게 약속했고, 2013년 신년사를 비롯한 여러 자리에서 그런 약속을 되풀이한 바 있다.
북한경제를 개선하려면 불가피하게 시장경제 요소들을 도입해야 한다. 현재 북의 생산성과 제품품질이 낮은 것은 근본적으로 대개 체제의 문제 때문이다. 1978년 직후의 중국의 예를 따라 비교적 고립되었지만 그래서 안전한 농업 부문에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방식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훨씬 진행되었을 뿐 아니라 농업의 잠재력은 훨씬 작은 북한에선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방식이 북한에서 2002년에 시도되었으나 실패했다. 급등하는 농산물 가격으로 소수의 농민이 이득을 보는 반면, 많은 수의 도시민들은 피해를 봤다. 인플레이션은 불가피하고 고통스러운 귀결이었고, 여전히 북한경제 정책입안자들의 주된 걱정거리로 남아 있다. 그보다 더 알맞은 방식이 이른바 동아시아 모델, 즉 강력한 ‘발전국가’가 주도하는 수출 중심 산업성장이다.
한국의 현직 대통령인 박근혜의 아버지는 1960~70년대에 이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었다. 이 모델의 특징은 강력한 군사적 독재, 국영은행, 소수의 대기업, 강경한 무역통제 등이다. 그러나 수출 중심 성장은 안전한 고립상태에선 추구할 수 없다. 국제시장, 금융, 테크놀로지가 필요하며, 그에 따른 높은 수준의 개방이 필수적이다. 더구나 냉전시대에 남한의 심각한 인권유린과 보호주의를 눈감아주면서 미국이 베푼 것과 같은 외부의 정치적 지원도 필요하다. 북의 경우 중국이 그런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제재는 현 북한체제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북한식 동아시아 모델에는 치명적일 수가 있다. 자국 인민의 생활 조건들을 개선하기 위해 김정은은 위험이 따르더라도 외부와 협력해야 한다.
③ 소련의 연쇄붕괴가 이런 위험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지도층은 분명 소련과 비슷한 운명을 피하고 싶어 한다. 이는 거대한 이데올로기 문제를 수반한 복잡한 과업이지만, 미사일 실험에 연달아 성공하고 핵억지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적어도 경제개혁이 초래할 수도 있는 잠재적인 국내 문제에 외부 세력이 개입하리라는 두려움은 제거되었다. 김정은이 핵억지력에 기대어 외부세력의 개입을 예방하고 체제안정성을 확보한 가운데 수익을 늘릴수록 본인과 지도층은 경제정책에 따르는 위험요소들을 덜 회피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북한 경제개혁의 혜택은 늘고, 북한의 정치 및 안보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이런 경제모델의 대차대조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내릴지는 지켜볼 문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확실히 커지고 있다.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
④ 기회의 창 하나는 이미 닫혔다.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직후 그의 어린 나이와 미숙함을 두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매우 애석하게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에게 ‘전과’가 없다는 사실을 활용하려는 진지한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아버지인 김정일을 대할 때는 그가 오랫동안 해왔던 일이나 그에 따른 책임 등을 고려해야 했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그런 고려 없이 초대하고 방문하고 대화할 수 있었다. 2012~13년에 걸친 세번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서, 특히 3월과 4월에 강경한 수사를 동원하여 협박을 서슴지 않음으로써, 그런 기회는 무산됐다. 서양 정치인들이 북한지도자를 존중하는 것이 부적절할 뿐 아니라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인식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이전의 ‘정상적인 상태(normal)’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나 약간의 기회는 남아 있다. 김정은은 비교적 근래에 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아직 본인의 리더십을 전반적으로 행사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다. 서양과의 협력이 그 방법 중 하나가 되게끔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⑤ 김정은 개인의 성격을 추측하는 것은 마치 점집에서 점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가 공식석상에서 보인 모습을 비롯해 작년에 우리가 목격한 모든 정황으로 판단해볼 때, 김정은은 힘든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그런 모습이 국제사회의 항의와 예상되는 반격에도 불구하고 미사일과 핵을 실험하거나 핵공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이는 아주 심각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위험요소가 수반되는 다른 과감한 결정(가령 경제개혁)을 내릴 배짱을 김정은이 갖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김정은이 어쨌든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가정한다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보수적으로 변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경제발전과 개혁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그것도 지금 당장 해야 한다. 그가 경직되어 경제정책에 따른 위험요소들을 더욱 회피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
⑥ 마지막으로, 간과해선 안될 것이 있다. 바로 대안은 무엇인가다. 현재 한반도의 상황은 지금이라도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현재의 분쟁에서 크게 이긴 쪽은 북한과 미국이다. 북한은 국제적으로 많은 주목과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물론 북한은 증오와 조롱을 받고 있지만,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미국은 베이징과 모스끄바를 경악케 하면서까지 탄도미사일 방어체제를 배치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러시아의 미사일을 격추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로써 지역적인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적으로 힘의 균형이 흔들리고 있으며, 그 빌미를 북한이 제공한 것이다.
교류협력정책을 대신할 대안은 없다. 더구나 북한이 그런 정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는 여러가지다. 기회의 창문이 닫히고 있는 만큼, 시간이 결정적인 요소로 보인다.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자신감을 강하게 가지면 가질수록, 북한 지도층은 경제개혁의 위험요소들을 더 낮게 평가할 수 있다. 『로동신문』 4월 6일자는 이런 소식을 알린 바 있다. “조국이 핵보유국이 된 오늘 우리에게 강력한 전쟁 억제력에 기초해 경제 건설,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 자금과 노력을 집중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 마련됐다”(〈새로운 병진노선 따라 경제건설에 박차를 가하자〉, 로동신문 2013.6.4). 이 사설이 나의 평가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은 이제 자신의 정통성의 기반을 경제발전에 둘 것인지 국방에 둘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북한주민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점점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최근 보도와 전직 NBA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맨의 방북이 보여주듯, 핵무기 생산국이라는 이미지 뒤편에는 또따른 북한이 존재한다. 그 어느 쪽의 북한도 무시해선 안될 것이다. (배현 옮김)
2013.4.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