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에너지 위기 부추기는 민영화 바람
안현효 / 대구대 사회교육학과 교수
최근 여름 날씨가 그다지 덥지 않은데도 전력예비율 경보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장마가 겹친 7월은 겨우 버티겠지만 폭염이 오는 8월에는 예비력이 마이너스가 되어 큰 고비가 예상된다. 그 이유로 보도되고 있는 것은 비리로 인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이다.
물론 이것이 전력수급 위기를 가중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동 중단된 9기의 원자력발전소(총 용량 762만kW) 중 4기인 294만kW는 원래 정기점검으로 중단 예정이었고, 원전 비리로 가동 중단된 3기 300만kW는 예방정비 계획일이거나 4일 전에 가동 중단했다. 순전히 원전 고장으로 간주할 수 있는 용량이 2기 168만kW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가장 큰 원인으로 삼는 것은 다소 과장임을 알 수 있다.
전력수급 위기의 진짜 이유
전력수급 위기의 진짜 이유는 2004년 이후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대용량 발전소를 짓겠다고 약속해놓고 에너지 원료비가 상승하자 발전소 건설을 포기한 데 있다. 이들은 2001년부터 시작해 2년 간격으로 수립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상에 예정된 발전소 건설의 약 38%만을 건설했다. 그래서 예비율이 10% 이하로 급락한 것이다. 전력수급계획대로 발전소를 정상 건설했다면 수급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왜 이들이 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을 제출했다가 중단했는가? 유가 및 가스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되고, 민원이나 인허가 지연 등으로 건설이 중단되는 상황이 속출했다. 발전 공기업이었다면 계획대로 지었겠지만, 민간 발전이므로 건설을 강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민간 발전사업자들은 수급계획을 작성할 시기에는 이익이 될 것 같아 너도 나도 짓겠다고 나섰다가 정작 이익규모가 예상보다 낮을 것 같으니까 발전소 건설을 중지한 것이다.
2000년에 시작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2004년 6월 배전(配電) 부문으로의 확산이 중단됨으로써 발전 부문만 한국전력으로부터 한국수력원자력과 6개의 화력발전으로 분리한 선에서 중단되었지만, 이후 발전 부문의 민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부터 시작하는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민간 발전사업자들이 비교적 중간 규모인 기존의 가스발전에서 대규모인 석탄화력발전소를 대거 짓겠다고 계획을 제출했는데 이대로 실현된다면 민간 발전소의 비중이 무려 1/3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공기업에 의한 발전의 비중이 2/3로 줄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우리나라 전력 산업에서의 수급 불안을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
가스시장의 민영화 바람
2000년대에는 에너지 산업 전반에서 민영화 바람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에 한정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액화천연가스(LNG) 역시 전량 수입해서 소비하는데 LNG의 경우 도입계약이 20년에 이르는 장기계약이면서 물량도 확정해서 들여와야 하는 특수성이 있어 국내 도입을 한국가스공사가 독점해왔는데, 이를 분할 민영화하려고 했다. 이 계획 역시 실행하지 못하였지만 이후 스스로 소비하는 대용량 산업용 수요자의 경우 직도입을 허용해왔다.
세계 가스시장은 2000년대 초반에서 2004년까지 공급과잉이었는데 이 이점을 민간 산업용 수요자가 활용한 것이다. 이 시기 민간 직도입을 위해서 한국가스공사의 장기도입계약을 허용하지 않아 정작 한국가스공사는 저렴한 가격과 좋은 조건으로 가스 도입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게다가 2005년부터 가스시장이 공급자 위주로 전환되어 가격이 오르자 민간 직도입자들이 도입을 포기하여 이를 모두 한국가스공사가 현물시장에서 15%나 비싸게 구입해 공급해줘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한국가스공사가 우리나라 가스의 수급책임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미국에서 셰일가스(shale gas, 퇴적암층에 매장된 천연가스)의 개발로 가스공급이 다시 늘어나는 상황을 반영하여, 직도입을 더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즉 산업용 수요자의 직도입은 지금까지 일정 규모 이상만 허용했는데 직도입자들끼리 여분의 가스를 서로 매매할 수 있도록 도시가스법안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산업용 수요자들이 한국가스공사의 공급체계에서 더욱 이탈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가정용 도시가스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다.
에너지 민영화에 신중해야 하는 까닭
가스산업은 전력산업과도 긴밀한 관련을 가진다. 왜냐하면 액화천연가스는 복합화력발전소의 원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전력시장구조상 LNG 가격은 전력 가격을 상승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따라서 전력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전체 LNG 가격이 하락해야 하는데 일부 산업용 수요가 전체 물량에서 이탈한다면 전력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없고, 오히려 역으로 민간 가스발전사업자가 큰 이익을 보게 된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에너지 분야의 위기의 상당 부분은 전력산업과 가스산업에서 민영화 확대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에너지 위기시에 민영화는 매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2013.7.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