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성형괴물이라는 조롱, 대선 불복이냐는 반문
황승현 / 문화평론가
성형괴물의 준말이라는 ‘성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거듭된 성형으로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얼굴이나 서로 비슷비슷해 보이는 얼굴에 성괴라는 낙인이 어김없이 부여되곤 하니까 말이다. 그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다. 그들은 왜 비슷한가. 그들의 얼굴은 왜 모두 부자연스러운가. 그런데 그들이 천지신명의 조화로 그런 변화를 겪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절대자로부터 급격히 변한 얼굴을 하사받은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시술을 통해 성괴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성괴가 되고 싶은 욕심에 의사와 간호사를 병원 화장실에 감금하고 온갖 주사와 수술도구를 탈취한 뒤 스스로 자기 신체에 그런 수술을 결행했을까.
사실 성괴는 비용을 지불한 의료서비스의 산물일 뿐이다. 드러난 개인적 외모에만 초점을 맞춘 성괴라는 조롱은 의사의 수술행위가 없다면, 설령 되고 싶어도 절대 성괴가 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적 인과관계를 은폐한다. 성괴라 불리는 사람들이 실은 자본주의 시대의 파편화된 소비자라는 점, 그들이 교묘하면서도 무책임한 성형상술의 피해자일 가능성은 기이할 정도로 쉽게 망각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성형을 하지 않으면 성형이라도 하지 얼굴이 그게 뭐냐고 비난하다가도, 막상 성형을 하면 자연미인이 최고지 성형괴물을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빈정대는 출구 없는 외모중심주의 사회다.
공론의 장에서 삭제된 인과관계
위선적인 이중압력을 견뎌야 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예견된 사회적 희생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성형수술의 당사자를 사회적 맥락에서 이탈시켜 단순한 놀림감으로 격하하는 성괴라는 말은 사회적 인과관계와 자본주의적 인과관계 모두를 완벽하게 은폐하는 기만적 단어다. 이렇게 논의에서 고의적으로 배제되는 과정을 통해, 인과관계는 공론의 장에서 은밀히 처형되는 것이다.
최근 청와대는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향해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것인가?”라며 힐난을 쏟아냈다. 때를 맞춰 보수언론도 불복하지 말라며 총공세를 펼친 바 있다. 선거결과에 불복하는 행태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자상한 설명이 추가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들이 구사하는 ‘불복’이라는 단어는 맥락상 인과관계가 철저히 누락된 용어라는 점에서 ‘성괴’와 유사하다.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옹졸한 정치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현실의 구체적 맥락과 무관하게 소환한다는 점이 자본주의적 인과관계는 외면한 채 괴물의 이미지를 피해자에게 부당하게 투사하는 ‘성괴’의 경우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 결과 승복’의 대전제는 선거의 공정성이다. 먼저 따져보자.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걸 인정하는 것인가? 부정선거는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패자가 그 결과에 승복해야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니 승복하라는 뜻인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불복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기보단 그저 지난 대선이 공정했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면 선거결과에 아무리 강한 이의를 제기해도 그것을 결코 불복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것에는 그들도 동의하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부정선거에도 승복을 요구하는 반민주적인 인물들이 되어버릴 테니까.
부정선거는 맞지만 그래도 승복하라?
자, 그렇다면 왜 말하지 못하는가. 불복하지 말라고 수시로 다그치는 사람들이 정작 이번 대선이 티끌 한점 없이 공정했다는 말은 왜 자신있게 하지 못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실질적으로 국정원 덕을 본 건 없다는 궁색한 해명 말고 티 없이 공명정대한 선거로 당선됐다는 자부는 별반 접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정원장과 경찰청장등 권력기관 총책임자들의 조직적 개입의혹이 불거진 이번 선거를 두고 명실상부한 공정선거였다는 말만큼은 차마 할 수 없는가.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불복하지 말라는 힐난이 부정선거 의혹을 교묘하게 우회하여 회피하는 기만적인 언사라는 걸 스스로 폭로하는 정황이 아니겠는가. 부정선거 의혹에 동의하지 않을 때 취하는 가장 정상적인 반박의 언어는 ‘불복해선 안된다’가 아니라 ‘완벽한 공정선거였다’일 테니까.
성괴의 징표로 흔히 거론되는 비슷비슷한 얼굴들은 실은 성형산업의 실상과 한계가 정직하게 반영된 흔적이다. 제한된 성형기술로 인해 필연적으로 유사한 얼굴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성형산업의 진실을 그 비슷비슷한 얼굴들이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성형수술을 받은 개개인의 무능과 어리석음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마찬가지다. 부정선거 의혹을 둘러싼 엄연한 정치적 인과관계를 ‘불복하지 말라’는 석연찮은 호통으로 가릴 수는 없다.
선거가 공정했다는 직접적인 언급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그저 불복하지 말라는 고도의 동문서답으로 일관한다면, 이는 결국 ‘부정선거는 맞지만 그래도 승복하라’는 기묘한 부정선거 시인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 처신이 바로 부정선거 의혹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는 걸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과연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2013.7.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