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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철도의 꿈? 철도민영화 계획부터 버려야

윤순철 / 경실련 사무처장, 철도공공성시민모임 운영위원

 

"부산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가는 철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꿈을 꿨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이 뿌찐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 발언이다. 이른바 유라시아 철도. 한반도를 종단하여 모스끄바를 지나 런던을 잇는 꿈이다. 그러나 과연 이 꿈이 실현될 수 있을까. 정부의 철도민영화 방침 때문에 드는 회의이다.

 

유라시아 철도 같은 국책사업은 막대한 재정투자가 필요하고 이를 실행할 강력한 철도조직의 뒷받침이 있을 때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철도는 건설과 운영이 분리되어 있고, 정부는 철도운영에 민간을 끌어들이려 한다. 국책사업은 뭉치면 씨너지가 나지만 흩어지면 비효율이다.

 

소리소문 없이 추진되는 철도민영화

 

철도민영화는 IMF 외환위기 극복방안의 하나로 선택됐다. 당시 국민의 정부는 국가부채 축소를 위해 돈 되는 것들을 내다 팔아야 했는데 철도 또한 건설과 운영을 분리해 운영부문을 민간에 넘기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철도 네트워크의 훼손과 공공요금의 인상을 우려하여 건설(철도시설공단)과 운영(철도공사)은 분리하되 운영부문의 민영화는 중단했다. 그러던 것이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민영화가 아니란다. 이명박정부의 '경쟁도입'이 '철도산업발전방안'으로 단지 이름만 바뀌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달라진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동의 없는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던 대선후보 시절의 약속을 단박에 어기는 것이 민망했던지 이명박정부의 동시추진 계획(민영화 제도정비와 수서발 KTX를 민간에 넘겨주는 것)을 2017년까지 시간차를 두고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건설업 출신답게 막노동판처럼 시끌벅적하게 일을 추진했던 것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소리소문 없는 조용한 업무 스타일 때문인지 "민영화의 민자도 나오지 못하게 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그 흔한 설명회도 없었다. 그렇다고 국민이 모를까. 철도민영화의 선도자 세계은행(World Bank)은 건설과 운영의 분리, 민간의 사업참여, 경쟁의 수준 확보를 민영화의 요소로 제시한다. 또 국가소유 기업에서 상하분리와 운영분야의 개방성, 사업권 승인(불하), 서비스 공급계약(경영위탁), 사기업에의 임차, 사적소유권으로의 이전 등을 민영화의 방법이라 한다. 철도 같은 기반시설은 초기 투자비용이 커 민간의 참여가 쉽지 않아 민영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추진하는 수서발 KTX의 자회사 운영방식은 나중에 지분매각을 고려하여 일단 법인으로 만들어놓자는 민영화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안전 위협과 운임 폭증, 영국을 보라

 

사람들은 철도민영화가 나쁜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나쁘다 좋다의 대답에 앞서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영국을 보자. 철도민영화가 어떻게 공공성을 훼손하였는지, 시민의 안전이 어떻게 위협받게 됐는지, 또 우리의 미래가 얼마나 암울할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철도는 관제·선로·운행이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통제되어야 승객의 안전이 담보되는데 다수의 사업자들이 나눠 맡으면서 노선에 따라 운행정보의 전달체계나 운행방식이 달라져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오류를 키웠다. 또 민간운영자는 이윤을 위해 시설 유지보수에 필요한 투자를 기피했고 철로의 점검기간을 늘리거나 무자격 승무원을 운행에 투입했다. 운영안전업무 교육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그러고는 상품판매에 많은 인력을 배치하기도 했다.

 

싸우스홀, 패딩턴, 쎌베이 같은 대형 철도사고들은 시민의 안전을 돈으로 바꾼 인재(人災)였다. 또한 민영화 후 20년간 평균 물가상승률이 66%인데 철도요금은 최대 208%까지 인상됐다. 지난 10년간 철도요금의 상승률은 임금상승률보다 20%나 높았다. 교통서비스 유지를 위해 지급하던 보조금도 15억 파운드에서 60억 파운드까지 민간에 줘야 했다. 그럼에도 민간운영자들은 적자노선을 폐지하거나 운행 횟수를 줄여버렸다. 노동자들의 임금감축과 비정규직 증가로 고용의 질은 더욱 떨어졌다.

 

우리 산업안전공단의 홈페이지에는 마주 오는 열차의 충돌이나 탈선, 단선, 산업재해가 민영화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영국뿐 아니라 선진국의 철도민영화는 실패의 경험이다. 애초 내세웠던 높은 효율성, 낮은 재정보조금, 저렴한 요금, 보편적 교통서비스의 유지라는 목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효율성 내세워 공공성 훼손하는 댓가는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오자. 정부는 지난 7월 철도요금 자율화를 위한 용역을 발주했다. 9월에는 민영화 기반 마련을 위해 철도사업법 개정을 예고했고, 코레일의 새 사장이 오면 수서발 KTX의 법인설립을 한다고 한다. 걱정됐던 야당도 야성이 거세되어 거칠 것이 없단다. 그러나 정부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민간이 한다고 반드시 효율적이지만은 않다. 효율성만 따지자면 공공보다 민간이 나을지 모르지만 공공의 일은 효율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공공은 효율성 외에도 시민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해야 하기에 이윤만 챙기려는 민간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또한 철도의 부실은 상당부분 박정희정권이 재벌의존적 경제개발로 자동차산업을 육성하면서 도로에 투자를 집중하는 대신 철도에 대한 투자를 외면한 데서 비롯했다.

 

지금 와서 철도 종사자들에게 그 책임을 씌우고 그 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될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유라시아 철도의 꿈을 꾸기 전에 철도민영화 계획부터 버려라. 먼 길 떠나기 전에 신발끈을 동여매듯 유라시아를 꿈꾸기 전에 철도구조부터 세심히 다시 살펴야 한다. 출발도 하기 전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2013.9.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