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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이석기 사태’와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또다른 길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달 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을 압수수색하고 세명의 통합진보당 간부를 체포하며 시작된 이른바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에 대해, 보수신문과 방송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대한 양의 보도를 쏟아냈다. 그리고 일단 격발된 커뮤니케이션 흐름은 인터넷과 SNS 그리고 일상적 대화를 휘저으며 증폭되어갔다.

 

이 사건은 불법 선거개입 혐의와 개혁 압력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국정원의 의도, 형법상 내란죄의 적용(그리고 국보법 적용)의 타당성 문제, 그리고 이른바 '5월모임 녹취록'이 전하는 '이석기 그룹'의 생각에 대한 평가라는 세 측면에서 여론의 조명을 받았다. 논의가 무성했지만 가닥을 잡기 쉽지 않았던 이유는 제기된 의견 대부분이 세 측면 각각에 대한 의견들을 교차 제시하거나 순환적으로 전개해서이다. 그런 식의 논의가 많았던 것은 현 상황에서 자기 생각을 오해 없이 잘 전달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 탓이다.

 

무성한 논란과 왜곡된 언론지형에서 가닥잡기

 

이런 심리적 불편함은 현재의 언론환경을 생각하면 전혀 기우가 아니다. 상식적 다수의 입장은 이번 사건을 주도한 국정원의 의도 그리고 적용된 법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이석기 그룹의 발상과 발언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사안을 잘 분별하고 각각에 대해 적합한 해결책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당성 위기를 덮기 위해 감행된 10·4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번 사건은 의제를 교체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다. 그리고 그런 일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은 언론지형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 상황은 분별력있는 판단이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기 매우 힘든 형국이다. 민주당이 국회 정보위원회 한번 변변히 열어보지 못한 채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선선히' 동의해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상황의 압력이 강력함을 보여준다.

 

하긴 민생은 팽개친 채 국정원이 몇달째 계속 정치 전면에 나서는 유례 없는 상황을 방치한(어쩌면 조성한) 대통령이 야당더러 민생 문제를 의제로 삼는다면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말을 늘어놓아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높은 인기마저 누리는 것이 현재의 언론상황이다.

 

'이석기 분파'의 사고방식을 함께 성찰하고 넘어서자

 

이런 상황에서는 논의를 예민하게 가다듬어도 왜곡된 여론의 흐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성찰의 고삐를 단단히 쥘 필요가 있으며, 어쩌면 우리 사회 민주파가 미진하게 남겨두고 미뤄온 성찰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근인(近因)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아야 하거니와, 필자는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성찰의 핵심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은, 모두가 80년대 운동권의 골방 대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비판하며 거리를 두고 있는 이석기 그룹의 사고방식 자체이다. 그 이유는 비단 이석기 그룹의 사고방식이 국정원의 의도가 먹히는 설득력의 원천이어서만은 아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의 연원과 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것을 제대로 극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계속 우리 사회의 진보에 장애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면상 여기서 80년대 민주화운동 진영에서 NL 혹은 '자주파'의 탄생과 변모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석기 분파’ 같은 집단이 형성된 연원을 상세히 추적할 수 없다. 대신 핵심만 지적하자면, 이들이 현재 붙잡고 있는 문제 영역이 여전히 우리 사회의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문제를 파악하는 사유의 틀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는 점이다.

 

분단문제에 대한 일면적 인식과 반미로 치우친 댓가

 

확실히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하는 정전체제의 엄존이라든가, 그것을 매개로 북한을 고립화하며 동아시아의 목구멍에 커다란 가시처럼 깊숙이 박혀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을 생각하면 자주파가 착목한 지점이 잘못된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북핵을 일종의 민족적 성취로 이해하는 이석기 그룹의 발언에서 보듯이 NL의 문제의식은 상처받은 민족주의적 감정과 너무 쉽게 결합했다.

 

그 댓가는 세가지로 나타났다. 첫째, 분단이 하나의 체제로 발전하며 남북한 양쪽의 기득권세력이 상호적대 속에서 공존하는 양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었다. 둘째, 분단체제 극복의 에너지를, 분단으로 인해 우리가 매일 지불하는 사회적 댓가에 대한 성찰 그리고 보편적 가치관으로부터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순한 반미의식에 경사됨으로써 미국 자체의 복합성 및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문제의 복잡성에 대한 인식을 가다듬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실천적으로도 적합성 있는 전략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NL 일부 분파의 오류라는 목욕물과 함께 그들이 착목해온 분단문제라는 아기를 함께 내버리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석기 분파가 몰락하고 통합진보당이 심각한 실추를 겪는 이 시기에 우리는 오히려 PD 혹은 '평등파' 안의 일부 분파에게서 나타나는 오류에 대해서도 말할 필요가 있다. NL이 대체로 분단체제의 문제를 너무 쉽게 민족주의적 열정과 융합한다면, PD 내에는 이 문제를 잊으려 하는 경향이 상존하는 것 같다. 그러나 포식자를 보지 않기 위해 구석에 머리를 파묻는다고 타조가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사상운동의 전개

 

남는 길은 NL적이지 않은 형태로 분단체제를 분석하고 분단체제 극복을 모색하는 것, 혹은 PD의 사유마저 내부로부터 혁신하는, 분단체제 극복의 사상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세계적 규모의 불평등구조와 대결하는 보편적 투쟁의 구체적 장으로서 한반도를 사유할 수 있으며, 분단체제를 미국 주도 세계체제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우리 내부를 가로지르는 적대성 그리고 그 적대의 상호투사 속에서 만성화된 성찰 회피의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고, 분단체제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사회경제적 댓가는 물론이고 상상력의 제약을 포함하는 정신적 댓가와 싸울 수 있으며, 그것이 극복된 형태를 온전한 민족국가의 완성으로 여기는 목적론에서 벗어나 독창적이고 복합적인 정치공동체의 구상으로 펼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현재의 사태는 분단체제를 더욱 제대로 정면에서 응시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2013.9.1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