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함께 꿈꾸자 ‘십만대권 프로젝트’
고재열 / 시사IN 기자
그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그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강정마을을 세계적인 책마을로 만들자는 문인들의 '강정 평화책마을'을 돕기 위해 십만권의 책을 모아서 보내주자는 '십만대권 프로젝트'를 제안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실행되었을 때, 오직 십만권의 책이 제주항을 통해 강정마을로 전해지는 것만 상상했다. 십만권의 책이 마중물이 되어 절망의 강을 희망의 바다로 바꿔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5개월여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이르러…… 우리는 여전히 미약하다. 책은 십만권이 아니라 삼분의 일 정도인 삼만오천권 정도만 모였다. 모은 책을 강정마을로 옮기는 '바다택배'를 위해 삼천만원의 거액을 주고 빌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는 최소 300명이 참여해야 하는데 100여명 정도만 신청했다. 그래서 걷힌 돈도 1000여만원 남짓으로, 필요한 금액의 삼분의 일에 불과하다.
강정 책마을 프로젝트의 일환, '평화상륙작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3000만원의 계약자는 모임의 좌장격인, YTN 해직기자 노종면 기자다. 미약한 우리는 당장 중도금부터 감당해내지 못했다. 노종면 기자가 부족한 금액을 조용히 감당했다. 배가 출발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1000만원 이상의 돈이 더 필요하다. 부족한 금액을 나눠서 감당할 '결사대'를 황급히 조직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배가 뜨느냐 마느냐, 자체가 관건이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염두에 둔 것은 '그러다 말겠지' 하는 체념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일본 원폭피해 마을 주민을 그린 만화 「저녁뜸의 거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그냥 우리가 조용히 죽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아"…… 강정마을에 대한 우리의 정서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해군기지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사람들은 이제 강정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지겨워한다. '지겹지도 않냐, 이제 그만 떠들어라'라는 비난과 '억울한 줄은 알겠지만, 이젠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체념 사이에서 망각을 기원한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든 아니든 사람들은 거기서 계속 살아야 한다. 계속 이어져야 할 그들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절대로 강정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강정마을을 세계 7대 해군기지가 아니라 세계 7대 책마을로 바꾸는 것은 해군기지를 극복하는 길이고, 해군기지 찬반을 놓고 갈라진 마을을 다시 봉합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의 금기어가 된 '슬픈 강정'
그런데 프로젝트가 시작하자 거대한 벽을 만났다. 진행 과정에서 '슬픈 강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강정'이라는 말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나 단체가 의외로 많았다. '책 모으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강정으로 얽히긴 싫어' '강정에 대한 것은 저희 단체 입장에서는 좀 부담스럽습니다'…… 강정이 우리 사회의 '금기어'가 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사람들에게 강정은 '관여하지 말아야 할 어떤 것'이었다. '강정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로 핑계는 충분했다. 책을 나누지 않고 계속 소유하는 것이 보수가 아니듯, 책을 기증하고 나누는 것도 진보가 아닐 것이다. 책을 모으고 책마을을 조성해 해군기지 문제로 야기된 분열과 반목을 해소하자는 것인데, 사람들은 피하기 바빴다. 상처를 극복하는 시간으로 기대했던 프로젝트 진행기간은 상처를 확인하는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강정을 잊고 싶어하는 삼분의 일과 피하고 싶어하는 삼분의 일이 빠져나간 만큼 책이 덜 모이고 돈이 덜 걷혔다. 방법은 남은 이들이 세배 더 힘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모은 책을 나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십만대권 프로젝트'의 선봉대는 이참에 컨테이너 도서관까지 만들겠다며 준비 중이다. 대책이 없을 때는 더 판을 키우는 것이 대책이 되는 것일까? 이들은 아직 꿈을 삼분의 일로 줄이지 않았다.
모두가 함께 나누는 강정의 꿈
다시 이 프로젝트의 두가지 숙제를 생각한다. 강정에 대한 체념을 극복하고, 강정에 대한 외면을 막아낸다는, 모아서 전달하는 과정에서 풀어내려고 했던 이 숙제가 결과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책이 강정마을에 전달되면 비로소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 강정을 잊지 않았고, 강정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지 않을까?
'십만대권 프로젝트'의 마지막 채색을 고민해야 할 지금, 새로운 스케치를 끄적여본다. 그 그림은 이렇다. '강정 평화책마을'로 전국에서 직접 책을 보내준다. 책마을 조성을 위한 후원금을 보내준다. '평화책방 2호점, 3호점, 4호점'을 지어준다. 그래서 구럼비를 잃은 강정을 사람들이 다시 찾아 구럼비에 대한 책을 읽는 모습을 꿈꾼다. 이 꿈, 모두가 함께 꾸어볼 만하지 않을까?
* 강정책마을십만대권프로젝트(http://cafe.daum.net/100000book) 기획단이 주관하는 '강정평화상륙작전'은 10월 17일 인천항에서 출발해 18일 제주항에 도착하는 동안 선상에서 다양한 문화행사를 엽니다. 추후 창비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에서 선상 공개방송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편집자.
2013.10.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