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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원칙’은 국정원 개혁 출발점

김인회 /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대선개입이 발생했다. 민주공화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사와 재판은 당연하다. 그런데 검찰은 이 와중에 국정원 직원을 기소유예하면서 사건을 축소했다. 진실을 밝히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야 할 검찰이 불의의 편에 선 것이다. 이들이 상급자의 지시를 받아 정치개입, 대선개입을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미 확립된 이론과 판례는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불법한 명령에는 따르지 않아야 한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불법한 명령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 정도는 법률가들에게는 기초이고 일반인들에게도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놀랍게도 국정원 직원들을 기소유예했다. 법률과 정의가 국정원을 비켜간 것이다.

 

국정원 직원에 대한 재판회부는 당연한 결정

 

국정원을 둘러싼 이러한 현상은 국정원이 법률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점, 전 국가기관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즉 국정원의 정치개입, 대선개입이 ‘일시적이고 우연한 법률위반 사건’이 아니라 ‘상시적인 법 무시 상황, 항상적인 법률 군림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지난 9월 23일 법원이 국정원 일부 직원을 재판에 회부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국정원도 ‘법대로 원칙’, 법 앞에는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다만 국정원 직원 5명 전원이 아니고 간부만이 기소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국정원에 ‘법대로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국정원이 초과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초과권력은 법률 이외의 권력이고 정치권력이 임의로 부여한 권한이다. 국정원의 초과권력은 한때 폐지되었으나 이후 부활한 국정원장의 대통령에 대한 독대보고에서 잘 나타난다.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보력에 의존함으로써 국정원에 근거한 정치를 하게 되니 자연히 국정원에 힘이 쏠리게 된다. 이러한 초과권력을 가지고 정치와 선거에 개입하고 국민을 사찰하고 수사과정에서 인권침해도 벌이는 것이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안보정치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국정원은 ‘상시적인 법 무시 상황, 항상적인 법률 군림 상황’에 있는 것이다.

 

국가공권력에 대한 통제는 엄격하고 예외가 없어야

 

국정원의 이러한 상태는 먼저 ‘법대로 원칙’을 엄격히 지킴으로써 통제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치개입 금지나 직권남용행위를 엄격하게 적용함으로써 국정원을 최소한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통제할 수 있다. 가장 나쁜 법도 관료적 전제보다는 낫다. 국정원에 대한 그 어떤 특혜나 특례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나아가 국정원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직접 책임지는 공권력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하게 통제해야 한다. 검찰, 경찰, 국정원 등 국가공권력은 사람을 구속하고 물건을 압수하며 수사를 통해 재판까지 청구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국가공권력에 대한 통제는 이중 삼중으로 엄격해야 한다. 법률에 근거하여 다른 기관에 의하여 엄격하게 통제되어야 하고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는 처벌되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마음대로 침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이다.

 

법대로 원칙을 넘어 제도개혁, 관료개혁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국정원 개혁은 ‘법대로 원칙’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현재의 법률체제가 국정원에게 과도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국가정보원법이 부여하고 있는 국내보안정보 수집기능은 분리되어야 한다. 국내정치 개입의 실마리가 되고 실제로 대선개입까지 초래한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해외정보 전문기관으로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내란죄나 국가보안법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권은 폐지되고, 사안에 따라 검찰 또는 경찰에 전담수사기구를 마련하는 식으로 적절히 이관되어야 한다. 국정원을 순수 정보기관으로 재정립하여 권한 남용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 또한 현재 유명무실한 국회의 국정원에 대한 통제기능을 강화하여야 한다.

 

나아가 국정원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관료개혁까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의 공권력관료는 경제관료와 함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적인 힘이다. 정치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과 함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 위에 다른 권력과 함께 국민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이러한 카르텔 구조를 깨지 않고는 민주주의도 정착되지 않고 국민의 실생활도 나아지지 않는다. 이번 법원의 기소결정은 이런 면에서도 중요하다. ‘법대로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입장에서 국정원을 개혁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역시 이번 재판이 국정원 개혁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공권력의 입장이 아닌 국민의 입장에서 재판에 최선을 다하기를 당부한다.

 

2013.10.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