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논술 편집증의 사회적 기원: 3불정책은 폐지되어야 하는가
김진경 | 시인, 아동문학가요즈음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것 중의 하나가 논술과외 광고이다. 그중에는 유치원 아동을 대상으로 한 광고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걸 볼 때마다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의 삶일수록 놀이의 원리가 우세하게 작동하고 있고, 놀이와 현실, 놀이와 공부가 어우러져 잘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어린이의 특성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지적 요구를 강요하면 오히려 흥미를 잃게 하고, 창조적 잠재력을 죽일 수 있다.
그런데 아동책 출판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게 그냥 한탄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아동책의 판매동향을 보면 대학입시 논술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가 판매량을 결정하는 큰 요인이다. 그래서 논술과 관련된 지식정보 기획물 쪽으로 시장이 이동하고 있고, 신문광고를 보면 창작물에도 흔히 대학논술에 이러저러하게 도움이 될 거라는 광고문구가 달려 있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로서 참 곤혹스럽다. 아이들의 특성과 현실, 다가올 미래를 고민해서 땀 흘려 쓴 작품들은 잘 안 나가는데 가볍게 쓴 작품들이 뜻밖에 잘 팔리는 경우가 많다. 주제가 뚜렷이 드러나 있어서 논술교육의 읽을거리로 적당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나마 동화 쪽은 논술 읽기자료로 어느정도 유용성이 인정되어 형편이 나은 편이지만, 그림책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입시 참고서 시장만 있고 본격적인 청소년 독서시장은 없는 중고등학교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동 독서문화가 내용적으로 황폐화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입시논술이 지배하는 아동 청소년 독서시장
아동출판 시장이 어른출판 시장과 다른 특성은 대개 구매자와 독자가 같지 않다는 점이다. 책을 읽는 건 어린이인데 책을 실질적으로 선택하고 사는 것은 부모 등 어른인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책을 선택하게 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책을 고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보통의 관심과 열의로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출판 시장의 건강성은 어쩌면 구매자와 독자의 일치 정도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80년대 이후 성장해온 <창비> <사계절> <우리교육> <문학동네> 등 중견 전문출판사들의 건강한 아동출판은 독자와 구매자의 간격을 좁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아동출판의 성장은 따지고 보면 70, 80년대 우리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진취적 모습을 보였던 중산층이 기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동출판 시장에서 독자와 구매자의 간격을 좁혔다는 것은 도구적 아동관, 즉 아동기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 수단,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의 변화를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며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회의 민주화 흐름이 모처럼 가능하게 했던 이러한 아동관과 아동출판의 변화 흐름이 꺾인다면 그것은 단순히 아동문화의 손실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아동출판 시장의 변화 속도이다. 아무리 대학입시에 논술이 도입되었다고 하더라도, 중고등학교도 아닌 아동출판 시장에서까지 어떻게 그렇게 빠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걸까? 여기에는 아무래도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보다 더 깊고 넓은 원인이 있는 듯싶다.
사교육 광풍을 부추기는 기득권의 이해관계
앞서 밝힌 대로 아동출판 시장의 지속적 확대는 경제성장에 따라 두터워지는 중산층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 들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양극화가 급격히 진전되고 중산층이 엷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그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 불안감이 중산층을 부동산과 사교육 등 방어적 투자로 내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정책수단으로도 부동산 투기와 사교육 열기가 잘 꺾이지 않는 것이다. 아동출판 시장의 변화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대학논술은 여기에 기름을 부어 그 속도를 빠르게 한 것뿐이다.
근래의 학교교육을 둘러싼 논쟁을 보면 '권력실조증'에 빠진 기득권층이 중산층의 추락에 대한 불안감을 부채질하여 편집증(偏執症) 상태로 몰고가는 듯한 느낌이다. 평준화와 3不정책(기여입학제·고교등급제·본고사 금지)을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현재의 특수목적고·자립형사립고 학생수가 전체 고교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과거 일류고가 전체 학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1.5배나 넘어섰다. 그런데도 특정 언론과 사회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특목고·자사고의 확대를 부르짖는다.
뿐만 아니라 강남 고등학생의 이른바 일류대 진학률이 전남의 9배에 이르고 다른 서울내 학군의 4~5배에 이른다. 특목고·자사고 학생수가 전체 학생수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나, 중산층 지역과 소외지역의 일류대 진학비율 차이로 보나 평준화는 사실상 무너졌다. 현재 정부가 평준화란 이름으로 가까스로 막고 있는 것은 고교입시의 부활이다. 고교입시가 부활되어 고등학교는 물론 전국의 중학교까지 서열화하고 입시지옥으로 만드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입시제도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굳이 평준화 해제, 즉 고교입시 부활을 통한 중고등학교 서열화를 요구하고 있다. 구태여 그러는 이유는 대입에서 고교등급제를 실현함으로써 내신 반영에서의 불이익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일부 집단의 그 작은 이익을 위해서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시 입시지옥으로 몰아넣어도 좋은 것일까?
3불정책 폐지와 '유전 일류대, 무전 삼류대' 현상
그렇지 않아도 최근 몇몇 대학들은 3불정책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보수언론을 비롯한 힘있는 집단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 가난한 집 아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 간다는 게 옛이야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모 대학의 학생생활연구소가 제시하는 자료들을 분석해보면 금방 확인이 된다. 중산층 이상의 학생들 비율이 압도적이다.
그런데도 세계에도 유례가 드문 기여입학제를 허용하고, 특목고·자사고에 유리한 고교등급제를 허용하라고 요구한다. 또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한때 선례가 있었던 본고사를 허용하라고 한다. 논술만으로도 유치원까지 과외가 번지는데, 본고사마저 부활된다면 사교육 열풍을 부채질하고 사교육비 투자 정도가 대학 입학을 결정하는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 뻔하다. 3불정책 폐지, 평준화 해제는 결국 '유전 일류대, 무전 삼류대' 현상의 심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OECD 관계자는 우리나라 대학의 운영이 지나치게 불투명하기 때문에 현상황에서는 3불정책의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보수언론은 OECD도 3불정책 폐지를 권고했다고 대대적으로 왜곡보도를 했다. 그리고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서울대발전위원회는 3불정책이 대학의 질을 낮추고 있다고 공식적인 불만을 토로했고, 이어서 사립대들이 3불정책 폐지 의견을 내놓았다.
'중산층의 불안심리를 부채질하라'
우리나라 고교 졸업생의 학력은 세계 3위로 최고 수준이다. 그중에서도 서울대는 1% 미만의 우수한 학생들만 뽑아간다. 그런데 서울대는 세계 100대 대학에 겨우겨우 턱걸이를 할까 말까 한 수준이다. 대학에 만연한 노예적 도제제도, 논문 베끼기를 놔두고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지식인의 양식을 따지기 전에 파렴치하다. 왜 기득권층은 사실을 왜곡하면서까지 이런 주장을 하는 걸까? 누가 들으라고 하는 걸까?
그들은 중산층에 말하고 있다. "지금이 기회다! 밑에서 다시는 올라올 수 없게 계급의 벽을 쌓아라! 무엇보다도 부동산과 사교육이 최고야. 그걸로 쌓으면 절대 넘어올 수 없어!"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은 그렇게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속삭여 중산층의 불안감을 편집증으로 몰고가려 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고도산업화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 저출산 고령화, 코시안 외국인노동자 새터민 등 다문화사회로의 진입 같은 질적으로 새로운 문제에 부딪쳐 있다. 무엇보다도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지 않으면 사회경제적 양극화에서 비롯한 갈등이 폭발하여 그 사회적 비용 때문에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새로이 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각자의 이해관계에만 몰두하면 선진사회의 문턱에 주저앉아 다 죽는 길로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분열의 벽을 쌓도록 부추기고 그에 대한 편집증을 만연시키는 보수언론과 기득권층의 행위는 가히 반역사 적 죄악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7.03.27 ⓒ 김진경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