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배심원 만장일치 평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박성우 / 시인

 

셔츠를 입으면 옷깃이 유독 더러워진다. 입 밖으로 나가려는 더러운 말을 목이 진땀 흘리며 막아내기 때문이다. 안도현 시인에 대한 검찰의 기소 이후 그와 동행해 검찰과 법원 한 귀퉁이를 다녀올 때마다 내 와이셔츠 옷깃은 유독 심하게 더러워져 있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더러워져도 그만이었을 입 대신 와이셔츠 옷깃한테만 더러워지라고 한 것 같아 진땀 흘린 목에게 미안해지곤 했다. 앞으로는 더럽게 궁금해도 참아요. 바보 같은 안도현 시인에게, 왜 그리 극빈한 궁금증을 냈었느냐고 막말로 따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별말 없이 다시 와이셔츠를 꺼내 입고는 지난 10월 28일 안도현 시인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전주지방법원으로 향했다. 법원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방청객이 많았지만 나는 운 좋게도 번호표를 받아 목에 걸고 밤 열두시 가까이 이어진 국민참여재판을 지켜볼 수 있었다. 길었으나 짧은 하루였던가.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7명은 안도현 시인에게 무죄평결을 내렸다. 만장일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배심원들과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선고를 11월 7일 수능일로 미뤘다.

 

시인이 검찰에 출두한 까닭은?

 

안도현 시인과 동행해 전주지검에 처음 간 건 지난 3월이었다. 그때 시인은 피진정인 신분이었다. 사건에 관한 근거자료를 보내면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면서도 그는 부러 검찰에 출두하겠다고 했다. 정동철 시인과 나는 밖에서 안도현 시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인의 표정은 당당하게 밝았다. 시인은 전주지검장실에서 지검장, 부장검사 등과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진정이 들어와 형식상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니 별것 아니라는 것. 담당검사의 방에서 간단한 조사를 받으면서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한 근거자료를 넘겨주었다고 했다.

 

헌데 어찌된 일인지 5월말, 안도현 시인을 조사했던 첫번째 담당검사가 비위 혐의로 면직처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젊은 검사가 혹시 자신을 기소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상부에 냈다가 보복성 징계를 당한 건 아닌지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다. 6월에 안도현 시인은 다시 검찰에 불려갔다. 출두한 시인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는 두달 반 만에 피진정인에서 피의자로 바뀌어 있었다. 전주지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안도현 시인을 불구속 기소했다. 작년 12월 안도현 시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을 문제 삼았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비방 혐의를 적용했다.

 

시인이 올린 트위터 내용은 감쪽같이 사라진 보물 제569-4호인 안중근 의사 유묵의 소장자가 박근혜라는 기록이 각종 도록과 학술논문에 적시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이 보물은 ‘도난문화재정보’란에 등록되어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소유자는 청와대로 되어 있다. 시인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불구속 기소되던 날 똑같이 불구속 기소되었다. 국정원의 유례없는 불법 대선개입을 희석시키기 위해 상대편에서도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궁색한 논리를 펴고자 기소한 것은 아닐는지, 자꾸 의문이 일었다.

 

무색해진 국민참여재판의 시행취지

 

안도현 시인은 트위터에 관련 글을 17번 올리는 동안 박근혜 후보가 안중근 유묵을 훔쳐갔다고 쓴 적이 결코 없다. 선거기간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후보를 검증하는 건 시민의 권리이다. 표현의 자유를 거론해야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는 권력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수십년 지속해오던 시 쓰기를 중단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자꾸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을 전혀 조사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서면조사나 방문조사가 가능하다는 것쯤은 우리는 알고 있다. 검찰은 최소한 박근혜 대통령의 동의를 받아 서면조사라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전주 경기전에는 태조어진(太祖御眞)이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전시를 위해 경기전에 있던 태조어진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져갔다. 문화재청은 이때 태조어진 일부가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진의 보관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어진을 오랜 동안 전주에 반환해주지 않았다. 태조어진은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야 경기전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1987년 보물 제931호로 지정되었던 태조어진은 2012년 국보 제317호로 승격되었다. 이는 문화재청이 얼마나 혼신을 다해 문화재를 관리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헌데, 보물 제569-4호인 안중근 유묵 관리는?

 

배심원은 재판에 참여하지 못하는 다른 국민들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한 배심원들이 마치 지역주의나 편협한 정치논리에 따라 평결한 것처럼 매도되고 있다. 배심원의 의견은 국민의 의견이다. 배심원이 자신들의 상식과 양심에 따라 내린 평결은 곧 국민의 평결이기도 하다. 재판부가 국민을 대표하는 배심원의 의견을 존중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믿으며 새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을 서두른다. 와이셔츠여, 제발 더러워지지 말기를!

 

2013.1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