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자본권력에 의해 배제된 영화
최혁규 / 문화연대 활동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삼성을 겨냥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다. '삼성공화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땅에서 삼성의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많은 이들이 잘 알기에 영화는 개봉 전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최근 몇년 전부터 영화가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어떤 흐름이 생겼고 대중들도 이 흐름에 일정하게 응답하고 있는 현실을 봤을 때, 이 영화가 만들어낼 사회적 파장도 적지 않을 것이라 예상된다.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노동자 고(故) 황유미씨 가족의 실화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2월 11일자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결과에 따르면 이 영화는 개봉 6일 만에 누적관객수 약 22만명을 동원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4위와 예매율 6위를 달리고 있다. 같은 날 개봉한 블록버스터 영화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이 박스오피스 순위 5위에 올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또 하나의 약속」의 초기 스코어는 꽤 성공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이 영화는 개봉을 앞둔 지난주에 어이없는 일을 겪었다.
누구에 의한 검열인가
영화는 기본적으로 극장에서의 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기 때문에 일정한 스크린 수의 확보가 필요하다. 「또 하나의 약속」은 애초에 300개관 개봉을 목표로 했지만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가 상영관을 거의 내주지 않아 100개도 안 되는 상영관에서 개봉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심지어 롯데시네마의 경우는 상영취소 및 단체관람 대관취소를 하기도 했다. 당시 전체 예매율 3위에 개봉예정작 중 예매율 1위를 보이고 있었음에도 영화관 측에서 스크린을 적게 배정하고 심지어 상영취소까지 했다는 점은 뭔가 수상한 냄새를 풍긴다. 이것은 누구에 의한 검열인가?
이른바 '잘 팔리는 영화'의 상영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멀티플렉스 극장의 영화상영 논리를 봤을 때, 「또 하나의 약속」에 대해 극장 측이 상영관 수를 늘리지 않고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세 대형 배급사가 삼성의 외압을 겪었거나, 무의식적으로 자기검열을 한 것이라고 추측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전자든 후자든 문제는 심각하다. 만약 전자라면 문화적 표현물에 직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해 시민들이 영화를 볼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대기업 자본의 횡포가 문제요, 후자라면 삼성이라는 거대한 자본권력이 문화 분야 종사자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의 개봉을 둘러싼 잡음에는 두가지 혐의가 모두 걸리는 것 같다.
최근에 외부압력에 의해 영화상영이 위협을 받은 사례가 또 있다. 천안함사건에 대한 의문을 다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의 상영중단 사태가 그것인데, 한 보수단체의 협박에 의해 메가박스가 관객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영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사건이다. 정치적 외압 때문에 이미 개봉한 영화의 상영을 중단하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사태가 연이어 벌어지는 원인을 조금 더 살펴보면 이는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한국영화산업에서 영화관이 담당하는 역할이 변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보다 무거운 현실
티켓 한장이면 2시간 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또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영화관이다. 하지만 이런 장소가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독점되었다. 우리가 영화를 만나는 곳은 대부분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라는 거대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이 3대 극장 체인이 전체 극장수의 90%를 차지하는 한국에서 이들이 상영관을 내주지 않으면 영화가 관객을 제대로 만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이 상영을 독과점함으로써 휘두르는 힘은 자본권력의 논리가 영화상영의 지배적인 방식이 될 것이라는 세간의 많은 우려 속에서도 여전히 견고한 듯하다.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가갈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무엇이 선택되고 무엇이 배제되는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고르려 하는데 그 영화들이 다 누군가에 의해 이미 선택된 것이라면?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했다. 이 영화는 삼성의 부정적인 면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에 상영기간 동안은 물론 상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삼성과 싸우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비록 영화 자체의 미학적 완성도가 그리 뛰어나다고 생각진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본의 권력에 맞서는 이 영화의 싸움을 지지한다.
2014.2.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