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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로의 경제력집중, 더이상은 안된다

위평량 /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경제학에서는 경제력(부와 자산의 크기)이 어느 한편으로 집중되는 것을 경계해왔다. 그런 연유로 시장경제체제는 독점금지법 또는 경쟁법 등을 통해 경제행위자들의 경쟁상태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했다. 이는 한국으로 치면 공정거래법으로, 필자는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다.

 

공정거래법은 1980년에 만들어졌고, 특히 1987년 개정을 통해 재벌들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출자총액제한과 지주회사설립금지 제도 등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1998년 지주회사가 허용되고 출자총액제한은 후퇴를 거듭한 끝에 2007년 사실상 폐지된 이후 2008년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법제도의 후퇴는 투자활성화-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기업 내 이른바 시장근본주의 세력과 철학이 부재한 정치권 인사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심화해가는 경제력 쏠림 현상

 

재계 및 시장근본주의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경제력집중은 심하지 않을뿐더러 이러한 시각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경제력집중 수준을 통상적인 국내총생산(GDP) 비교 방식이 아닌 국가자산(비금융법인, 순자산)과 기업매출총액과 직접비교하는 최초 방식으로 분석하면서 재계 및 주류경제학자들의 주장을 검토해보자.

 

첫째, 전체 재벌그룹(2012년 기준 62개 그룹 약 1,600개 계열사)의 총자산이 국가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1년 46.0%에서 2012년말 기준 57.4%로 24.6% 증가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재벌은 계속 분화(계열분리)를 해옴에 따라 단순히 자산규모 30대 재벌의 경제력집중을 보기보다는 매년 재벌오너가 있는 그룹, 즉 30대 총수가 있는 재벌그룹을 봐야 한다. 이 집단의 자산집중도는 같은 기간 31.7%에서 37.4%로 17.9% 증가했다. 추세적으로는 2004년까지 증가 수준이 축소되는가 싶더니 2007년부터 급격히 상승했다.

 

둘째, 재벌가문으로 보면, 삼성가문이 2000년 6.7%에서 2012년 9.3%로 약 39.9% 증가했고, 범4대가문(범삼성, 범현대, 범엘지, SK) 비중이 같은 기간 22.9%에서 25.6%로, 범8대가문은 27.9%에서 31.1%로 증가했다. 특히 삼성가의 자산증가가 독보적이다.

 

셋째, 국내 자산기준 상위 200대 기업을 추적한 결과 재벌그룹 소속 계열사가 1987년말에는 97개(48%)였으나 2012년말에는 171개(85%)로 증가했음은 물론 상위 5대 재벌가문의 자산비중이 56.4%로 나타나 상위 재벌그룹으로의 자산집중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넷째, 재계는 경제력집중이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라는 근거로 2011년 기준 네덜란드의 로열더치셸(Royal Dutch Shell)의 자산이 GDP 대비 56%, 노르웨이의 스타토일(Statoil)은 24%, 핀란드의 노키아(Nokia)는 20%라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기준 주요국의 제조업 기준 매출액 상위 10위 기업 자산을 각국의 GDP와 비교해본 결과 미국은 15.1%, 일본 22.0%, 프랑스 29.4%, 독일 30.1%, 영국 30.3%, 한국 47.1%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당국가의 상위 10위권 기업 또는 20위권 기업을 우리나라와 같이 5대 재벌가문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사례는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국가자산 중 분야별 자산비중 추세를 보았다. 1997년 기업(법인)자산 비중은 33.8%에서 이후 등락을 반복하였으나 2005년 33.12%로 최저점을 기록한 이후 2012년말 39.90%로 급증한 반면, 개인자산 비중은 1997년 46.5%에서 등락을 반복한 이후 2005년 46.4%를 최고점으로 이후 급락하여 2012년말 39.99% 수준이다. 즉, 2000년대 중반 이후 국부가 증가했으나 개인부문보다는 기업부문의 자산이 크게 증가했다.

 

경제민주화와 구조전환이 해답이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2000년대 중반 이후 재벌그룹 및 대기업, 상위 재벌가문으로 경제력집중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산순위 200대 기업 중 171개가 재벌계열사로 구성되어 한국경제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 역시 2000년 중반 이후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근 8년간 부의 증가가 가계보다는 법인에게 집중되어 가계의 소비여력이 감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력이 집중되면 어떤 사회경제적 병폐가 발생하는가. 경제학계는 이러한 병폐를 오래전부터 정리해왔고, 이는 최근 한국사회를 음미해보면 거의 들어맞는다. (1)경제적 효율성 저하, (2)소유 집중에 따른 분배적 형평 저하, (3)소수 자연인의 의사가 시장기구의 자동조절작용을 대체함에 따라 분권주의에 입각한 경제민주주의 역행, (4)정치·행정력과 결부된 정경유착, (5) 거대해진 경제력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강력한 권력이 주는 민주주의체제의 내재적 위험, (6)이해집단 간의 사회적 갈등, 정치적 분극화, 그리고 이에 따른 자본주의체제의 내적해체요인 전개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사회경제적 병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근본주의적 경제학자 및 전문가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며, 재벌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고 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확산되도록 정부가 근본적인 경제민주화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 중심의 성장동력 확보전략 구사, 중장기적 관점에서 산업구조 개편, 조세정책 등의 개혁도 필수적인 과제이다.

 

2014.2.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