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카운슬러」가 보여준 폭력과 섹스의 새 경지
한기욱 /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미국문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는 우리 시대 폭력의 특성을 깊이 사유하는 소설들을 썼고, 그중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와 『로드』(The Road)를 비롯한 몇편은 성공적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직접 씨나리오를 쓰고 할리우드의 명감독 리들리 스콧(Ridley Scott)과 함께 만든 영화 「카운슬러」(The Counselor, 2013)는 기대와는 달리 흥행에 실패했을뿐더러 평단으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지도 못했다. 감독과 작가의 유명세에다 초호화판 배우진에도 불구하고 호평보다는 혹평이 훨씬 많고, 양쪽의 평가가 극명하게 갈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카시가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독창적인 발상과 감각으로 가득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액션보다 담론이 승한 스릴러
「카운슬러」는 멕시코/미국 국경의 마약거래 사건을 다룬다. 텍사스의 한 잘나가는 변호사(마이클 패스벤더)가 연인 로라(페넬로페 크루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며 청혼하는 한편 마약밀매상인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의 요청에 응하여 2천만달러의 마약거래에 가담하게 된다. 그런데 마약을 숨겨 들어오는 분뇨 트럭을 누군가가 가로채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변호사는 마약 카르텔로부터 배신자로 찍히고 약혼녀 로라가 납치되어 살해되는 보복을 당한다. 사실은 라이너의 연인인 말키나(카메론 디아즈)가 마약을 가로채려 했고 마약중개상 웨스트레이(브래드 피트)를 죽인 뒤 그의 은행계좌를 턴다. 이런 우여곡절과 반전에다, 섬뜩한 살인과 섹스 장면 덕분에 영화는 스릴러의 양식을 띠게 된다.
그러나 스릴러치고는 특이하다. 액션보다 말과 이야기가 분위기를 주도하며, 철학적 담론이랄까 거창하고 난해한 발언이 심심찮게 등장하여 장르적 감상을 방해한다. 가령 변호사가 약혼녀를 구하려고 접촉한 마약 카르텔의 한 두목은 "당신이 실수를 되돌리려는 세상은 그 실수가 행해진 세상과는 다르다"라든지 "세상은 당신이 창조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당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다.
이 영화의 평점이 낮아진 데는 이런 '심오한' 발언 탓이 크다. 이런 무게 잡는 말은 소설에는 통할지 몰라도 영화에는 안 통해!라고 생각하는 평자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이런 사변적인 거대담론이 매카시가 '세상'을 논하는 토대가 되는 구체적인 장소와 결부되면 적실성이 높아진다. 치타가 토끼를 추적하는 미국 남서부의 황량한 사막 풍경도 주목할 만하지만, 이때의 장소성은 사회학적이고 지정학적이다.
후아레스/엘 파소 지역의 장소성과 경계 이야기
변호사와 로라의 섹스 장면으로 시작되는 씨나리오와 달리 영화 첫 대목에 오토바이 한대가 '후아레스'(Ciudad Juárez)와 '엘 파소'(El Paso)가 각각 쓰인 도로표지판 두개를 쏜살같이 통과하는 장면을 배치한 것은 스콧 감독이 장소성을 중시하는 매카시의 의중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다. 텍사스의 엘 파소와 시우다드 후아레스 사이에 미국/멕시코 국경이 지나가지만 두 도시는 샴쌍둥이처럼 붙어 하나의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둘이면서 하나인 후아레스/엘 파소 지역은 영화에서 실제이자 하나의 은유로도 작동한다. 마약거래의 주요 루트인 만큼 사건의 실제 공간이 되지만, 미국의 유복한 자유주의 세계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무자비한 폭력의 세계가 서로 타자이자 한몸임을 암시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변호사가 마약거래에 손을 대는 순간 엘 파소의 세계에서 후아레스의 세계로 건너온 것인데, 마약 카르텔 두목이 변호사에게 충고하는 것은 자기의 세상과 판이하되 한몸을 이루는 이 세계를 직시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영화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때의 경계는 실제의 경계이자 마음속의 경계이기에 두 차원의 이야기가 병행된다. 변호사와 로라는 자유주의 세상에서 나름으로는 '난하게' 놀았지만 치명적인 사건 이전에는 경계를 넘어본 적이 없다. 이에 비해 라이너와 말키나, 웨스트레이는 경계를 넘나드는 인물로 모두 '갈 데까지 가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셋 중에 경계에 가장 걸림이 없는 자는 말키나이고 그녀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섹스와 폭력의 새 경지
경계에 대한 내공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는 섹스와 폭력이다. 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말키나가 차(페라리)와 섹스하는 장면일 것이다. 라이너의 이야기로 전해지는 문제의 광경은 말키나가 라이너를 앞좌석에 앉힌 상태에서 팬티를 벗은 채 뚜껑 없는 페라리의 앞 유리창에 올라타 가랑이를 180도 벌리고 성기를 유리창에 문대어 절정에 이르는 동작이다.
라이너는 "그런 것을 보면 사람 자체가 바뀐다"라고 하면서 말키나가 겁나게 무섭다는 말을 한다. 말키나의 이 행위는 야하게 느껴지기보다 전통적으로 간직해왔던 마음속의 어떤 경계가 돌파되어버리는 느낌을 준다. 그에 비해 변호사와 로라의 정사 장면은 두 사람이 꽤 난잡하게 놀아본 이력을 보여주지만 서로 간에 애틋한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 말키나의 섹스 장면은 그녀가 가톨릭 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해를 받아달라고 신부를 윽박지르는 장면과 연관된다. 고해성사에서 믿음과 사면의 의미를 제거하고 더없이 음란한 이야기로 이 제도를 망가뜨리고 싶은 심술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폭력은 기술공학적 참수(斬首)이다.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쇠줄을 설치하여 고속으로 달리는 오토바이 운전자의 목을 날리는 것이라든지 노련한 웨스트레이가 '볼리토'라 불리는 쇠줄장치에 걸려 영락없이 목이 잘리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참수 형태는 말키나의 페라리와의 섹스처럼 어떤 인본주의적 경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물리적 계산으로 밀고나가는 방식이다. 물론 이런 냉정한 방식의 참수에도 무의식적인 욕망이 개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폭력은 후아레스 세계의 본격화를 예고하는 징후의 느낌이 강하다. 새로운 강도의 섹스와 폭력이 결합된 형태는 로라가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스너프 필름 제작 과정에서의 참수와 시간(屍姦)일 텐데, 그 사체가 후아레스의 매립지에 버려지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매카시와 스콧의 「카운슬러」는 새로운 차원의 섹스와 폭력의 감각적 강도를 통해 우리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사유하는 작품이다.
2014.3.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