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우리는 불효자식이 아닙니다
김민수 / 청년유니온 위원장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은 수익성을 우선하는 여타 민간연금보험에 비해 보장성이 높고 성실하게 오랜 기간 납부할수록 가입자에게 유리하다. 특히 누진성을 갖기 때문에 나처럼 소득이 낮은 가입자의 보장성은 더 높다. 다시 말해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사회정의에 이바지한다.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연금체계에 신뢰를 가지고 성실하게 납부할수록 국민연금은 더욱 튼튼해지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롭게 된다.
나는 스무살이 된 이후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등 여러 사업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왔지만 4대보험, 콕 집으면 국민연금에 가입된 적이 없다. 사장님한테서 가입하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도 없고, 아르바이트 주제에 굳이 요구해야 하나 싶기도 했다. 80만원 수준의 알량한 월급에서 보험료가 빠져나가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정확히는 4대보험(사회보험)이 왜 중요한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사회보험이 갖는 의미와 이로움을 하나씩 깨닫게 되었고 국민연금에 가입되지 않았던 수년의 시간들을 후회했다. 땅을 치고.
상생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사회
내가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배운 국민연금의 기본 개념이다. 나의 이익을 위해 성실히 납부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로움을 가져오는 상생의 모델. 왜 학교에서는 이렇게 중요한 상생의 원리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인터넷 뉴스의 '국민연금 조만간 고갈' 따위 선정적인 헤드라인만 접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조건에서 어느 누가 국민연금에 신뢰를 갖고 성실히 납부할 수 있겠는가. 어차피 이 사회에서 상생의 원리에 입각한 노후보장체계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묵시록적 상황이나 지켜보라는 것인가? 이 해도 해도 너무한 상황에 대통령이 쐐기를 박았다. 말 많고 탈 많은 기초연금안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지난 대선 때 노인세대에게 약속한 기초연금 20만원을 지급해야 하는데 세금이 부족하니 여러분이 납부하신 국민연금을 끌어다가 써야겠습니다.'
국민연금을 끌어다 쓰는 이 기초연금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지금의 20대는 노후에 4,260만원씩 손해를 보게 된다.(국회예산정책처) 오랜 기간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한 이들에게 손해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면 부모의 연금 수령을 가로막는 불효자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셈이다. 손해를 보거나 불효자식이 되는 두가지 선택지밖에 없는 이 제안은 사실상 공갈협박이다.
청년세대에게도 큰 문제가 될 기초연금안
세간의 어설픈 오해와 다르게 청년들은 이기적인 불효자식이 아니다. 우리는 노인세대의 사회안전망이 강화되는 것에 찬성한다. 아니 강화되어야만 한다. 자녀들의 소득이 파악되어 기초생활수급 자격이 박탈되자 스스로 삶을 저버린 어느 노인의 비극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노인세대가, 우리의 부모세대가 경제적 어려움 없이 편안한 노후를 누리길 바란다. 지금의 노인세대가 마주하는 현재의 삶은 앞으로 우리 세대가 겪게 될 미래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하루하루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나 기초연금과 같은 노후보장체계는 특정 세대 일방의 문제가 아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같은 사적부담의 시스템으로는 지금의 노인세대 전반이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 이는 게다가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계층을 불효자식으로 만들어버리는 대단히 나쁜 시스템이다. 용돈을 받아야 하는 부모세대, 용돈을 드려야 하는 자식세대, 그 와중에 용돈을 드릴 수 없는 자식들을 모두 고통스럽게 하는 이 시스템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국가적 차원의 노후보장체계를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적부담 시스템을 튼튼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에 기반한 공적부담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거대한 전환은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세대와 세대가 편을 갈라 싸우는 땅따먹기 게임이 아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상생과 공존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적 합의가 요구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보장성을 강화하여 노후보장체계를 제대로 확립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이 어려운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담대한 제안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 담대한 사회적 합의를 회피하고, 자식세대를 불효자식으로 만드는 땅따먹기 게임을 제안했다. 그가 야당 대표이던 시절에 했던 발언대로 '참 나쁜 대통령'이다.
2014.4.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