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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새정치연합의 기초선거 정당 무공천 철회와 정치문화

김종엽 /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주 새정치민주연합은 기초선거 정당 무공천 공약을 철회했다. 이 과정은 몇가지 점에서 우리의 정치문화, 특히 민주진보진영의 정치문화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 우선 들고 싶은 예는, 새정치연합이 무공천을 고수하려 했던 시기에 몇몇 정치평론가와 정치학자가 정당정치의 발전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정당 무공천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주장한 일이다. 이런 주장을 듣는 동안 그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감수성이 약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기초선거 후보자에 대한 정당 공천과 무공천은 각각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 당파적 이익을 넘어서 어느 편이 정치발전에 큰 도움이 되는지는 꼼꼼히 따져봐야겠지만, 그렇게 해본다 해도 정확하게 분별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에 비해 지난 대선에서 주요 후보자들이 모두 무공천을 약속했다는 사실은 분별의 노력조차 불필요할 정도로 명백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약속은, 일단 이루어지고 나면 그 약속이 지켜진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 발전을 뜻하게 된다. 왜냐하면 정치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하느냐 하는 문제는 정치적 약속의 실현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약속의 능력이 퇴행하면 정치도 형해화된다.

 

버려진 약속과 난감한 약속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집요하게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했는가에 대해서 성찰해봐야 할 점이 있다. 더구나 기초선거 정당 무공천은 기초연금이나 국민행복기금처럼 예산제약을 가진 공약도 아니었다. 그런데 예산제약이 있는 공약도 지키려는 시늉은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정당 무공천 공약은 해명 한마디 없이 내버린 것이다. 이런 행태를 파당적 이익에 집착하는 보수언론이나 정권에 납작 엎드린 공중파가 싸고도는 거야 어쩔 수 없을지 모른다(사실은 이런 행태에 대해서 비판하길 그쳐선 안된다). 하지만 진보적 매체들마저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지 뭐' 하며 그런 약속파기를 너무 쉽게 '양해'해주는 면이 있었다.

 

다음으로 새정치연합의 결정과정에 대해 짚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공천 공약 위반으로 도리어 새정치연합이 약속 고수와 철회의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제1원인이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그렇게 된 것과 관련해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경륜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을 함께 지키자고 요구하는 것과 상대의 선택과 무관하게 약속을 지키는 것은 다른 수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큰 부담이 따르는 상황에 스스로 빠져든 면이 있다.

 

하지만 딜레마의 '두 뿔'보다 더 나쁜 것은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고 결정이 지연되는 사태였다. 오래전 데까르뜨(R. Descartes)가 말했듯이 숲에서 벗어나려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며, 어느 방향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공천이든 무공천이든 결정이 이루어진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다.

 

각자의 책임을 다하는 정치는

 

문제는 그런 결정을 위해 여론조사를 이용한 것이다. 여론조사가 결정의 수단으로 동원되어온 맥락을 모르는 바 아니다. 민주진보진영만 놓고 보면 여론조사는 대중의 관심을 높이고 참여를 높이는 수단이었는데, 그것이 달콤한 승리의 요인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씁쓸한 패배의 원인인 때도 여러번 있었다.

 

이제는 여론조사에 정치적 결정을 맡기는 일을 자제할 때가 되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패배의 요인이기도 해서가 아니라, 여론조사가 기본적으로 사태를 이해하는 수단이지 결정의 기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을 결정에 사용하게 되면 오차범위에 대한 입장, 결과를 결정에 산정하는 방식, 쌤플링, 질문구성 방식, 질문시기의 효과 등 숱한 쟁점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기술적인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렇게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것이 정당이 의당 내려야 할 결정을 회피하고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정당정치는 정당이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에 대해 (심지어 결정의 의도치 않은 결과까지도) 책임지는 일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민주진보진영의 정치적 공론장의 특성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싶다. 안철수 대표가 무공천 약속을 지킬 것을 내세우고 있었을 때, 야권의 공론장은 들끓다시피 했다. 새정치연합이 당원과 대중의 의사를 물어 당론을 정하기로 한 맥락은 정치적 공론장이 활발하게 작동한 때문이다. 이런 에너지 자체는 높이 살 만한 것이며, 그 뒤에 간첩사건 조작이 횡행하는 상황을 타개할 정치적 승리, 즉 지방선거에서의 야권 승리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는 것도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파워트위터리언, 기자, 정치평론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사실상 서로의 경계를 다소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로 넘나들며 진행된 논의방식은 생산적이라기보다 혼란스러운 면이 많았다. 정당 조직원들이 개별적으로 그리고 임의적으로 정당 내부 문제를 대중에게 가지고 나오고, 대중이 이슈에 휩쓸려 소란스럽게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는, 질서 있는 토론으로 정당역량을 강화하며 그 과정을 정당과 지지자 집단의 결속으로 이어가기 어렵다. 정당과, 나 같은 사람을 포함해 지지자 대중 모두 자제되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더욱 노력할 때라 생각된다.

 

지지 대중과 함께하는 품 넓은 정당으로

 

그리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범야권 정당들의 분화 및 불화 그리고 분열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다수를 향한 현실적 고려와 이념적 지향 사이에서 복잡하게 분포하는 지지자 집단이 더 직접적이고 열정적이며 질서 있게 정당정치에 참여할 길이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정당으로서 안정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그것에 일체감을 느끼는 지지자 집단이 상당히 크고 견고해져가는 상황은 역으 로 현재의 야권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시사한다. 야권 정당들이 수권능력을 가진 대중정당을 건설하여 자신의 지지자 대중과 더 정규적으로 만날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새정치연합보다 더 큰 틀, 대중적 신뢰를 가진 진보정당의 일부가 참여하는 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작업이 지방선거 이전에 이루어지긴 어려울 것 같다. 아니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조직적 난관과 심리적 장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는 행위가 아니라 결과를 지향하는 행위임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넘지 못할 장애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4.4.16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