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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사과하고 보상하라 그리고 더이상 죽이지 마라

임자운 / 반올림 상임활동가, 변호사

 

세월호 참사에만 어울릴 법한 이야기일까? 아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십, 수백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자본가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이, 그리고 관료들의 무책임이 함께 빚어낸 참사다. 그런데 마땅히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비판이 커지자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에만 몰두한다. 심지어 남 탓을 하며 여론을 호도한다. 일부 언론마저 그러한 여론몰이에 적극 동참한다. 유족들은 더 크게 절망하고 상처받는다.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더니, 또다시 '관망 중'?

 

삼성에서 반도체‧LCD‧휴대폰 등을 만들던 193명의 노동자가 백혈병‧뇌종양‧유방암 등 각종 중증질환에 걸렸다. 그중 73명은 사망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에 제보된 숫자만 그렇다. 이 문제가 제기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삼성은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모두 개인 질병일 뿐이라 했다. 하지만 피해가족들은 끈질기게 싸웠고 반올림이 그들과 함께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국내외 비판여론은 삼성으로서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적지 않은 압박을 느꼈을 것이고 최근 떠들썩했던 삼성의 입장발표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지난 4월 14일 삼성은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으로 투병 중이거나 사망한 직원의 가족과 반올림, 심상정 의원 측이 삼성전자의 공식사과와 제3의 중재기관을 통한 보상안 마련 등에 관한 제안을 했다"라며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른 시일 내에 경영진이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라고 했다. 일단 "산업재해로 의심되는 질환"이라는 표현이 반가웠다. 노동자의 백혈병‧뇌종양 등이 산업재해라는 매우 합리적인 의심을 삼성은 그저 악성 루머처럼 취급해오지 않았던가. 아울러 반올림 측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니 환영할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가 이상했다. "제3의 중재기관을 통한 보상안 마련"은 심상정 의원 측의 독자적인 제안일 뿐 피해가족들과 반올림의 제안은 아니었다. 그래서 즉시 그 점을 바로잡았다. 그랬더니 삼성의 입장이 돌변했다. "반올림의 입장변화가 혼란스럽다" "검토대상 없어져 일단 관망 중"이라 했다. 전형적인 본질 흐리기와 남 탓이다. 특히 '관망'이란 표현이 걸린다. 삼성이 지난 7년간 이 문제를 대하는 기본적인 태도였던 관망, 그것을 계속 이어가겠다니 도리어 익숙하다.

 

삼성의 제안으로 시작된 교섭, 그것부터 성실히 임하라

 

두가지만 짚자. 우선 삼성이 문제해결의 걸림돌인 듯 부각시킨 '반올림'부터 이야기 하자. 반올림은 고(故) 황유미 님의 아버지인 황상기 님의 싸움으로 시작된 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 인정 투쟁을 사회문제로 만들고 이끌어온 단체다. 특히 지난해 시작된 삼성과의 교섭을 위해 따로 '반올림 교섭단'이 꾸려졌다. 황상기 님을 단장으로 하여 대부분 삼성반도체‧LCD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뇌종양 등에 걸린 피해 당사자 혹은 그 가족들로 구성되었다. 삼성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반올림의 입장은 곧 반올림 교섭단의 입장이고, 이는 곧 교섭에 참여하고 있는 피해가족들의 입장이다. 그런데 삼성은 반올림을 피해가족과 별개의 운동집단처럼 언급했다. 이 또한 익숙하다. 겉으로는 "임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을 소중히 여긴다"라고 하지만 정작 그 임직원들이 스스로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노조를 만들면 괴이할 정도의 거부감을 보이며 탄압에 나서는 삼성이 아니던가.

 

둘째로 반올림의 입장은 과연 변하였는가? 삼성은 지난해 1월 반올림 측에 "대화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라는 공식 제안을 했다. 피해가족들이 '반올림 교섭단'을 꾸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의제와 범위'를 먼저 정하자는 삼성의 제안에 따라 총 다섯차례의 실무협상을 거쳤고,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을 본 협상의 의제로 합의했다. 지난해 12월 17일, 반올림 교섭단은 세 의제에 대한 요구안을 정리하여 삼성에 공식 전달했다(요구안은 반올림 까페에도 공개했다. http://cafe.daum.net/samsunglabor/MHzN/185). 그 요구안을 기초로 하여 성실한 교섭을 통해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어 보자는 것, 그게 반올림 교섭단의 입장이다. 본 교섭이 시작된 12월 18일 이래 변함이 없다. 그 와중에 갑자기 내용도 불분명한 '제3의 중재기관'이라니 느닷없다. 만일 이게 정말 반올림 측의 제안이라면 그야말로 대단한 입장 '변화'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반올림 측이 '우리는 그런 제안 한 적 없다. 하던 교섭이나 마저 하자'고 하니 삼성은 그제서야 "반올림의 입장 변화가 혼란스럽다"라고 했다. 정말 입장 '변화'가 혼란스러운 거라면 이제라도 입장을 '확인'하면 될 일이다. 이미 수차례 확인해주었음에도 못 알아먹겠다면 직접 만나서 물어보는 게 제일 정확하다. 그런데 삼성은 이미 4월 16일로 약속되어 있던 교섭을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무기한 연기한 채, 언론을 향해서는 계속 '혼란스럽다'고만 한다.

 

아마도 삼성은 당사자들과의 직접 대화보다는 '제3의 중재기관'을 통한 해결이 무던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왜 그런지는 대충 알겠다. 하지만 거쳐야 할 순서가 있다. 반올림 측에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먼저 제안한 쪽은 삼성이다. 그 대화에 성실히 임하는 게 우선이다. '제3의 중재기관'이 그렇게 좋으면 그 대화에 나서서 적극 제안해보라. 앞서 전달한 피해가족들의 요구안보다 제3의 중재기구를 통한 문제해결이 어떤 점에서 더 나은지를 설명하고 설득해보라. 그게 대화다.

 

"사과하고 보상하라. 그리고 더이상 죽이지 마라."

 

삼성은 지난 4월 14일, '공식사과'에 대한 입장발표도 예고했다. 이참에 피해가족들이 바라는 사과가 무엇인지를 정리해본다. 요컨대 세가지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첫째 반도체‧LCD 생산공장에서 안전관리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점, 둘째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신청 및 인정을 적극 방해한 점, 셋째 지난 7년간 이 문제를 제기해온 피해가족들에 대해 무시, 폭언과 폭행, 형사고소‧고발 등으로 대응한 점.

 

삼성이 정말 그러했느냐고 묻는다면 우선 영화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의 관람을 권하겠다. 그 영화 속 이야기들이 정말로 있었던 일이냐고 또 묻는다면 풍부한 진술과 자료에 근거하여 성실히 답하겠다. 두 영화가 미처 담지 못한 사건들까지 꼼꼼히 설명하겠다.

 

그리고는 다시 묻고 외치겠다. 이러한 사실들을 두고도 사과하고 보상하지 않겠느냐고. 더이상 죽이지 말라고.

 

2014.5.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