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한민국호의 참사, 현재진행형
세월호 참사는 우연한 것도 아니고, 순간적으로 일어난 단발형의 사고도 아니다. 오래전부터 원인이 쌓여왔고 사고 이후에도 비극이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기도 한 사건이다.
이번 참사는 동시에 대한민국호의 참사이기도 하다. 정상적으로 보였던 사회체계는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되어 있고, 국민을 보호하리라 믿었던 행정체계는 국민을 버리고 도망가는 수준이었음이 아프게 드러났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고질들
사고 이후에도 참사는 이어진다. 사건을 그 자체로 보고 해결에 집중하기보다는 나쁜 영향이 미칠까 전전긍긍하는 정치권력의 모습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민주적 정당성이 크게 훼손된 것처럼, 이번 사건을 대하는 과정에서 공화적 정당성마저 잃어버린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하다. 오보와 왜곡이 넘쳐나는 언론기사,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의심케 하는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언동 등은 우리 사회의 병이 어느 한 부분이 아닌 전체에 걸쳐 있음을 확인케 한다.
그래서 실종자를 모두 찾고 배를 인양해도, 선장이나 세월호의 실질적 소유주로 지목된 유병언 등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형식적으로 마무리한다 해도 이 사건이 수습되었다고 치부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총리와 장관을 경질하고, 문책의 의미로 수십년간 존속되었던 해경을 형식적으로 해체한다고 하여 이런 비극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사건 자체만이 아니라 그 구조적 원인을 직시하는 노력과 더불어, 각자 자신의 바깥에서 원인을 찾는 이상으로 우리 안의 원인을 고통스럽게 찾아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고 이제는 뼛속까지 물들어버린 물질지상주의에 적정한 규제가 필요하다. 안전에 대한 규제와 이윤창출 구조에 대한 규제는 서로 별개가 아니다.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곧 생명가치의 저하로 이어지고, 악화가 득세하는 온상이 되기 십상이다. 생명의 안전을 위하여 조금의 불편과 비용지출은 감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민주적이고 공화적인 가치의 재확인이 필요하다. 이번 과정에서 드러난 정치의 실패는 우리 헌법의 최고가치인 민주와 공화의 가치를 잃은 데서 기인한다.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자기 정파의 유불리가 판단의 우선순서를 차지해서는 최대다수가 동의하는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설 자리가 없고, 공정성과 정의가 판단의 기준이 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타인, 특히 소수자에 대한 연대와 배려의 정신,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도 중요하다. 승객의 안전을 무시하고 자신만 탈출한 선원들의 행동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쏘시오패스를 양산하는 공감능력을 상실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번 사고는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아니 사고를 야기한 길고 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 과거의 사고로 기억하기보다 보고 느껴야 하는 현재적 사건이어야 한다. 사건이 사건을 덮는, 흐르는 시간이 해결 아닌 해결책이 되어온 지난날의 관성을 깨야 한다. 이번 사고를 야기한 원인에 대한 발본적인 해결책이 논의되고 실행되기 전까지는 이를 과거의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
사회의 많은 영역, 특히 정치영역의 흐름은 이런 희망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듯하다. 강성의 공안적 통치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다. 극단적 인사행태도 변화의 기미를 감지할 수 없다. 불통의 답답함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사회의 전환을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우리가 주권자고 우리가 책임자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부당한 요구에 우리는 순응할 수 없는 것이다.
백승헌 / 변호사
2014.5.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