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남북 인권대화, 가능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적확한 언급처럼 북핵문제와 북한인권 문제는 우리 대북정책의 핵심 관심사이다. 금번 제69차 유엔총회에서 한·미·일 3국이 보인 특이한 현상은 악화된 북핵문제를 계속 방치한 채 북한인권 문제에 공조를 과시한 점이다. 9월 23일 열린 ‘북한인권고위급회의’가 그것이었다.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상기하며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와 북한인권사무소의 한국 설치를 거론하였다. 이에 맞서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27일 총회 연설에서 핵개발을 자신의 자주권과 생존권 수호와 연계시킨 논리를 폈다. 이 외무상은 또 “인권문제를 특정한 국가의 제도 전복에 도용하려는 온갖 시도와 행위에 반대한다”라고 주장하면서도 “우리를 적대시하지 않는 나라들과 인권 대화와 협력을 해나갈 용의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 외무상의 발언은 유엔총회 개최에 앞서 북한이 최초로 발간한 인권백서라 할 수 있는 <조선인권연구협회 보고서>의 요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북한은 자신의 인권보장을 가로막는 주요 난관으로 자체 문제점을 언급하지 않은 채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압박을 거론했다.
북한인권 압박에 나선 대통령에 대한 우려
유엔총회에서 박대통령의 북한인권 언급은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재확인하고 한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표명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작 북한 측으로부터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박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 직후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성명, 그리고 여론 관영언론을 통해 격렬하게 반응했다. 요지는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추종해 인권문제를 소재로 압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9월 30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이 직접 나서 북한의 거친 반발은 “그만큼 인권문제가 아프기 때문이다”며 맞받아쳤다. 이와 별도로 국내에서도 야당과 일부 언론 및 시민단체에서도 비판여론이 일어났다. 대통령의 북한인권 언급은 백분 이해하지만 언급 시점과 논조 등을 감안할 때 북한인권 개선을 이끌어낼 가능성과는 거리가 먼 발언이었다는 평가다. 그 언급 이후 벌어진 남북 간 격렬한 상호 비방은, 적대와 불신의 관계에서 일방이 타방의 약점을 문제 삼는 것은 문제해결보다는 관계만 더 악화시킬 뿐임을 말해준다. 박대통령의 일련의 북한인권 발언은 그런 점까지 고려하며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비판만 있고 대안은 없었던 것이다.
남북한은 여전히 체제경쟁이 지속되는 관계이고 그 연장선상에서 인권관에서도 냉전시대 동서 두 진영의 시각이 맞서고 있다. 물론 북한의 계급중심, 집단주의, 국가주권 우선의 인권관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분단체제의 맥락을 누락한 채 북한정부를 무시하고, 나아가 최고지도자를 국제형사재판에 회부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법을 만들어 반북활동에 나서는 단체들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려는 방안의 인권개선 효과에 회의적인 여론도 결코 작지 않다. 또 이명박정부 등장 이래 남한사회에서의 인권후퇴 상황도 북한에 대한 일방적 인권개선 요구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건설적 대화와 대안 제시 없는 압박과 비판 위주의 북한인권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남북 인권대화를 위한 지혜를 모아야
금번 유엔에서 북한이 처음 보인 인권대화 제의에 대해 윤병세 외교부장관은 “환영한다”고 하며 “북한이 납북자 문제, 국군포로 및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남북한의 책임있는 당국자들이 국제무대에서 인권대화에 나설 의향을 밝힌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윤장관의 발언은 남북 인권대화의 의제를, 리 외무상의 발언은 인권대화의 조건을 각각 강조한 것이다. 이 둘을 묶으면 남북 인권대화가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남한의 북한인권정책 기조에 북한이 호응해올 것인가이다. 어렵다. 물론 북한의 인권대화 대상이 남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많은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인권결의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국제인권단체, 남북 동시 수교국 등이 북한과 인권대화나 기술협력에 먼저 나설 가능성이 높다. 남한은 이를 지지·지원하며 남북 인권대화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한의 입장에서 북한인권 문제는 민족의 문제를 보편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난이도 높은 사안들의 집합이다. 특히 안보 민감성이 높은 북한이 인권문제도 그렇게 보고 있는 조건에서 일방적이고 압박 위주의 접근은 실효적이기보다는 자기만족적인 면이 더 커 보인다. 체제 이질성에서 오는 민감한 사안은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적 접근을 하는 대신, 교류협력으로 풀어갈 사안은 남북 간에 직접 추진하는 유연한 자세가 요청된다. 그 둘을 인권대화가 연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남북 인권대화 성사를 위해 쌍방이 취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남북이 역시사지(易地思之)하는 진정성과 선이후난(先易後難)하는 실용적 자세이다. 그런데‘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인권 문제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서보혁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인문한국연구교수
2014.10.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