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세월호특별법 여야 합의에 부쳐
지난주 세월호특별법을 두고 여야 간 세번째 합의안이 마련되었다. 세월호참사 가족대책위는 이 타협안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이 불화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세번이나 거듭된 여야합의안을 걷어찬 가족의 융통성 없는 태도가 문제일까? 아니면 가족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 협상안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여야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3차 합의안 타결 직전 세월호 가족은 시종일관 주장해왔던 입장, 즉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큰 폭으로 양보하여 특별검사 제도를 이용하는 방안도 조건부로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식 총회의 의결에 기초한 제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임에 틀림없었다. 가족들이 특검 방식을 받아들이는 대신 양보할 수 없는 최저기준으로 제시한 것은 여야 2차 합의안 +α, 즉 여·야·가족 3자가 합의하는 인물로 4명의 특검후보군을 추천하는 보완책을 전제조건에 추가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외면당한 세월호 가족의 바람
현행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 법에 따르면, 7인의 특별검사 추천위원 중 야당 추천 2인을 제외한 여당 추천 2인, 법무부 추천 1인, 법원행정처 추천 1인 등 최소 4인 이상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대한변협 추천 몫 1인이 정권의 의중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여야 2차 합의안 성안과정에서 여당이 자신의 몫 2인을 추천할 때 가족들의 사전동의를 구하는 방안이 제시되었지만, 이 방안은 본질적으로 여당이 추천권을 행사하는 방안이라는 특성 때문에 가족들의 신뢰를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가족들은 여당 추천 몫 특검추천위원을 거부할 수 있는 안전장치와 더불어 특검후보군 4명을 3자 합의로 추천하는 또다른 안전장치를 확보하고자 했던 것이다.
기소권·수사권을 양보하면서 가족들이 지키려고 했던 마지노선은 적어도 특별검사를 청와대나 정부·여당이 좌지우지할 수 없도록 최소한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세월호참사는 정부의 재난예방·구조구난 체계의 총체적인 실패로 인한 것이므로 그 진상을 규명하는 일, 특히 수사와 기소를 담당할 주체를 정하는 일에 대통령이나 여당의 입김이 작용할 것을 경계하는 것은 국민 대다수의 일반적 정서라 할 것이다. 특히 가족들이 그런 의구심을 갖는 것을 나무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가족들이 마지노선으로 제안한 방안은 여당의 입맛에 맞는 인물이 특검후보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는 반면, 여당 역시 가족들이 선호하는 예비후보를 낙마시킬 수 있어 마치 양날의 검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제안은 9월 30일 오전 종교계와 시민사회 지도자 20명으로 구성된 ‘세월호 사회적 대화 추진모임’이 제안한 중재안보다 훨씬 더 유연한 안이었다. 9월 30일 이 모임은 청와대와 여당이 특검추천 과정에 여하한 영향력도 행사할 의사가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특별검사의 독립성을 둘러싼 의구심을 해소하라고 촉구했던 것이다.
원칙 없는 합의 과정이 야기한 문제
하지만 새누리당은 “당사자인 가족이 특검 선정에 참여하는 것은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라고 강변하면서 가족들의 제안을 거부했다. ‘중립성’은 애매한 용어다. 특별검사의 역할에 대해서 논할 때는 ‘독립성’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특별검사를 영어로 independent special prosecutor로 표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이나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독립적인 검사라는 뜻이다. 여당이 ‘중립성’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내세워 가족들을 배제하면서 옹호하려 하는 것은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할 독립성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VIP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인물로 특검을 세우라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
새누리당이 가족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변할 때 새정치민주연합의 지도부 어느 누구도, 배제되어야 할 것은 가족이 아니라 정부·여당이라고 주장하며 배수진을 치지 않았다. 법안보다는 등원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최종합의에서 가족이 제외되었지만 이후 야당이 당론으로 가족이 원하는 특검후보를 추천할 터이니 믿어달라고 호소한다. 하지만 가족들이 기소권·수사권을 주장할 때 단 한 차례도 공식의제로 채택한 적이 없었고, 1·2차 타협 과정에서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제시한 마지노선을 단 하루도 유지하지 못한 야당을 가족들이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원칙 없는 타결 중 또다른 치명적인 내용은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이른바 유병언법이나 정부조직법 따위와 연계하여 10월말까지 처리하기로 합의한 대목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은 진상규명을 통해 근본적인 재발방지대책 논의를 착수하기 위한 출발점인 데 반해 정부조직법 개정 등은 대책의 마무리 단계에 해당한다. 게다가 지금 제출된 법안은 정부가 국면탈출을 위해 미봉책으로 내놓고 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골칫덩어리다. 이 둘을 연계하는 것 자체가 가당치 않다.
한달 간의 추가협상 시한이 남아 있지만 현재 지리멸렬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처지나 여당의 고압적인 태도를 감안하면 타협안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검찰대로 장황한 세월호 수사 설명자료를 발표하고, 보수언론과 더불어 특별검사가 임명되어도 특별히 더 조사할 게 없다는 식으로 여론을 몰아 자신의 독점적 기소권을 지키려 하고 있다. 검·경은 이미 정신적 내상이 깊은 세월호 가족들 중 일부의 실수를 침소봉대하여 여론재판으로 내모는 한편, 대통령을 모욕한 자들을 색출한다는 구실로 SNS망을 공공연히 사찰함으로써 여론을 통제하려 한다. 가족들을 보상이나 노리는 파렴치범으로 매도하고 심지어 ‘시체장사’라고 모욕하는 반인륜적인 극우 캠페인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여야 합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
지금 청와대와 정부·여당, 그리고 보수언론은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모독하고 분열시키고 좌절시키는 데서 정치적 위기의 탈출구를 찾고 있는 듯하다. 세월호 가족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것은 참사의 성격상 필연적이며, 이들이 정부를 상대로 성역 없이 진상을 밝히고자 하는 것 역시 당연한데 여기에 정치적 색깔을 덧씌우려 한다. 팽목항에서는 아직 실종자 수색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사 피해 가족을 이기고 무찌르려는 기세로 이들의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또다른 상처를 만드는 잔인한 폭력이 가해지고 있다. 이렇게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동원해낸 비이성과 비인간성은 세월호 가족은 물론 우리 사회를 회복하기 힘든 절망과 극단주의로 몰아갈 수 있다.
정치권은 세월호 가족들과 국민들의 최소한의 요구에 다시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족들을 제압하여 당리당략을 실현하고자 하는 근시안과 저열함을 떨쳐내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 그리고 검찰이 스스로의 조사결과와 평가를 신뢰한다면, 가족들이 마지노선으로 제안한 3자 합의 특검후보군 추천 방안은 물론이고 추천 자체를 야당 등에 일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 방법을 통해 세월호참사 이후 국민대통합을 이루는 출발점을 마련할 수 있다.
정치인들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면 ‘사회적 대화 추진모임’ 같은 종교계와 시민사회 원로들이 나설 수 있다. 이들이 증인이 된다면 뻣뻣한 법조문 논의 대신 다른 합의방식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특검추천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진상조사위 활동에 대해서도 적극 협조하겠다고 각 종단의 지도자들 앞에서 가족에게 약속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이태호 / 참여연대 사무처장,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2014.10.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