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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톱니, 제대로 맞춰야

김창수

김창수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일인 지난 10월 4일, 북한의 실세 3인방이 깜짝 방남했다. 모처럼 남북관계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가 했으나 서해 5도 일대에서 남북한의 교전, '삐라' 살포와 남북의 총격전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12일에 열린 2차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북 간의 대화를 강조했다. 이로써 3인방 방남 이후 어지럽게 진행되는 남북관계의 가닥을 조금이나마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산 넘어 산이다. 

 

10월초 남북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요양 중으로 알려진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간접적인 소통을 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15 경축사에서 남북 사이에 ‘작은 통로’를 낼 것을 제안하였다. 이번에 북한의 2인자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자신들의 방남으로 ‘오솔길’은 냈으니 앞으로 ‘대통로’를 열자고 화답했다. 당연히 김정은 제1위원장의 결정이 있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의 간접적인 소통이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과 북의 소통은 가능해질 것인가

 

이제 톱니바퀴를 맞물려 돌리기 위한 남북의 두 축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비뚤어져 튀어나온 톱니가 있다. 북한의 실세 3인방 방남 이후 남북관계가 어지럽게 진행된 것은 튀어나온 톱니 때문이다.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삐라 살포가 그것이다.

 

북한이 삐라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거기에 김정은 위원장과 그의 부인인 리설주에 대한 선정적인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유일체제인 북한체제의 특성상 북한 공안기구는 생존을 위한 내부논리 때문에라도 삐라에 대한 내부단속을 강화하고 남측에 항의를 하는 측면이 있다. 삐라가 뿌려지면 북한의 지역 안전보위부는 북한 주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한다. 삐라가 살포된 지역을 통제하고 누가 삐라를 보았는지 뒷조사를 한다. 삐라를 본 사람들은 본 내용에 대해서 조사를 받아야 하고, 신고하지 않은 주민은 발각될 경우 처벌을 받는다. 삐라는 북한의 공안기구의 주민 통제를 강화시켜줄 뿐이다.

 

삐라를 비롯한 심리전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신뢰성과 확산성이 필요하다. 북한 최고지도부에 대한 이런 저차원적인 비방을 어떤 북한 주민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신뢰성이 없는데 어떻게 입소문이 나서 확산이 될 수 있겠는가. 심리전의 기초는 ‘선전의 최고수단은 진실이다’는 경구를 지키는 데에 있다. 진실을 전달하기 위한 길과, 감정과 비방이 섞인 저급한 비방은 거리가 너무 멀다.

 

또한 남북대화를 추진하려는 남북당국의 정책방향에 역행하는 심리전은 효과 제로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1970년에 8·15 선언을 하면서 1995년까지 비방·중상을 중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7·4 공동성명부터 노태우정부가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정부가 합의한 6·15 선언, 노무현정부가 합의한 10·4 선언까지 역대 남북정부는 비방·중상 금지를 약속했다. 비방·중상이 남북대화와 병행할 수 없다는 것을 역대 정부는 잘 알고 있었다. 서독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군과 민간을 동원해서 동독을 비방하는 삐라를 살포했으나 1970년대부터 동방정책 추진을 위해 중지했다. 대신 언론교류와 같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다. 그것은 동독주민들이 서독을 이해하는 데 삐라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했다.

 

위험만 부추기는 삐라 살포

 

지난 10월 10일 삐라 살포 후 남북이 총격전을 한 것만 알려졌다. 하지만 총격전 이후 북한은 장사정포를 발사대기 상태로 전환했다. 우리 군의 K-9 자주포도 사격 가능한 상태였고, 대구 공군기지에서는 F-15K 전투기가 발진준비 상태로 들어갔다. 자칫하면 포격전과 국지전으로 확산될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것이다. 북한에 대한 삐라 살포는 효과가 아주 낮다. 북한 주민의 생활을 피곤하게 만들고 남한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만든다. 남북 당국 간 대화 분위기가 역행할 뿐 아니라 군사적 충돌로 확전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10월 1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다수가 정부가 대북 삐라 살포를 차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가 헌법상의 권리라는 이유로 삐라 살포를 방치하고 있다. 하지만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에 대해서는 제재를 해야 표현의 자유가 더욱 확실히 보장된다. 우리 헌법도 21조에서 이 정신을 수용하고 있다. 멀쩡한 들판에서 ‘불이야’ 하고 소리치는 것은 표현의 자유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어두운 극장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다. 이런 위협을 차단해야 들판에서 소리를 지르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SNS 망명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다면 절대 금해야 할 검열은 너무 쉽게 하고 있다. 일본의 극우언론인을 기소하며 언론자유의 투사로 만들어주는 것도 표현의 자유에 역행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작 삐라 살포와 같은 명백하고 현저한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은 공공의 질서 유지를 위해 위험에 최소한도의 조치를 취하게 되어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남북교류협력법의 시행규칙으로 지역경제와 주민의 안전 위협, 남북의 군사적 충돌 유발, 남북합의사항 이행에 역행 등을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규정하고, 이에 따른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다. 헌법-법률-시행령-규칙의 법체계에서 규칙으로 처리하자는 것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최근 격화되는 동북아 정세에까지 겹치는 첩첩산중의 남북관계를 차근차근 넘어갈 톱니바퀴를 튼튼하게 만드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김창수 /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

2014.10.1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