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쑨 거 『사상이 살아가는 법』

동아시아는 사상이 될 수 있는가
- 쑨 거 『사상이 살아가는 법』

 

 

sasang동아시아와 사상의 빈곤

 

동아시아 담론이 지금처럼 ‘성업’인 때가 있을까. 1993년 발표된 최원식의 「탈냉전시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을 기점으로 삼는다면, 동아시아론이 한국 학술계에 제기된 지도 벌써 20년이다. 그사이 동아시아라는 말은 엄청나게 번창했다. 인문사회 분야도 그렇지만 정치, 외교, 경제 같은 사회과학 쪽에서 더 적극적으로 소비되었다. 물론 여기엔 중국의 부상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까지도 ‘pivot to asia’(아시아 회귀)를 외치며 달려오지 않았는가. 그러면서 동아시아는 지난 세기 이래 또 한차례의 거센 격류를 맞고 있다.

 

‘동아시아론’에 대해서는 관심도 많았지만 말도 많았다. 동아시아론의 실체가 무엇이냐, 그것이 과연 구체적 내용과 방향을 지닌 담론이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들이 제기되었다. 과연 동아시아론의 ‘실체’가 무엇일까? 그것을 답하는 게 가능할까? ‘동아시아’라는 말 앞에 종종 ‘~(으)로서의’라는 말이 붙는 것은 이런 곤혹 때문인지 모른다. 방법으로서의, 시각으로서의, 실험으로서의 등등. 유럽이나 미대륙, 아프리카에 이런 수식어가 없는 것을 보면, 분명 동아시아에 타 지역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쑨 거(孫歌)의 ‘동아시아’에 만약 수식어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사상으로서’일 것이다. 그녀의 책을 정독한 것은 이번이 세권째이다. 『아시아라는 사유공간』 (창작과비평사 2003),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 (그린비 2007)에 이어 작년에 나온 『사상이 살아가는 법』(윤여일 옮김, 돌베개 2013)까지. 물론 그사이 잡지에 실린 글을 보기도 했고 또 십년이라는 시간이 내게 준 변화도 작지 않겠지만, 이번에 『사상이 살아가는 법』을 읽는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 쑨 거는 빼어난 문장가는 아니다. 복잡한 개념이나 화려한 이론으로 독자를 제압하는 타입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지적 만족보다 더 깊고 무거운 것이었다. 이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겠구나 하는 신뢰 같은 것이랄까. 동아시아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위해 십여년간 우직하게 걸어온 이 사상역정에서, 내가 배워야 할 것이 지식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가 동세대 가운데 중국에서 동아시아를 온몸으로 고민해온 유일한 학자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한국이 동아시아를 말한 데 한국적 상황이 있듯, 중국인이 동아시아를 말하는 데는 중국의 곤혹이 있다. 하물며 메이지유신 이래 ‘탈아(脫亞)’와 ‘흥아(興亞)’가 기복했던 일본에 비한다면, 지난 백년을 통틀어 중국에서 아시아가 주목받은 적이 몇번이나 있었던가. 그런 중국에서 동아시아 담론이 유례없는 성황을 이루는 목전의 상황은 쑨 거에게 곤혹이자 도전이다. 그 넘쳐나는 ‘동아시아’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사상의 빈곤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이 왜 아시아를 말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쑨 거는, 중국이 아시아, 적어도 동아시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시아가 중국에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에서 아시아가 사상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사상이란 궁극적으로 자기의 구조를 근저에서 뒤흔들어 스스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아시아는 구조에 도전하기는커녕 번번이 그 안에 안착해버리고 만다. 중국이 아시아를 말하는 것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경역(硬譯)’에 대하여

 

쑨 거가 꺼내든 무기는 일본이었다. 중국 안으로 쉽게 흡수되지 않는, 그래서 중국이라는 주체성의 공고한 구조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이물질로서 말이다. 특히 그가 자신의 사상의 근거지로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를 택한 것은 기묘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지난 세기 중반, 타께우찌 요시미는, 일본의 근대가 구조는 그대로 두고 외피만 바꾼 것이라면, 중국은 구조가 대단히 강고하여 근대가 잘 들어오지 못하지만 일단 들어오면 구조를 부수고 안에서 자발적인 힘을 만들어낸다고 비교한 바 있다. 지금 쑨 거는 중국이라는 단단한 구조를 부수기 위해 타께우찌를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2005년 중국 전역에서 대대적인 반일시위가 일어났을 때, 그가 드디어 반일이 구조성을 마련했다며 반겼던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주체성의 구조를 부수고 이물질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번역에 비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번역의 정확성보다 번역의 입장을 중시했던 타께우찌와, 생경한 번역 즉 ‘경역(硬譯)’을 주장했던 루쉰(魯迅)에게서 공통점을 짚어내는 대목은 그야말로 날카롭다. ‘경역’이란 알맹이를 훼손하지 않고 하나의 언어체계에서 다른 언어체계로 옮기는 것의 불가능성, 다시 말해 자기를 깨거나 잃지 않고 타자를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며, 번역과정에서 생기는 ‘공백’과 ‘전환’을 거부하는 몸부림이다. ‘공백’을 거부한다는 것은 타자에겐 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단어를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번역하는 것이며, ‘전환’을 거부한다는 것은 타자의 언어에 대응하는 자기 언어가 없을 경우 있는 말로 적당히 대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번역이란 그 자체가 자기의 언어구조를 훼손하고 거기에 생경한 단어를 밀어넣는, 자기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공사인 것이다. 그것은 다케우치가 강조했던 번역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가 난징과 히로시마를 함께 보는 것은 이같은 번역의 실천과정이라 할 수 있다. 난징대학살을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번역하려 할 때 맞닥뜨리는 이 가공할 ‘공백’과 ‘전환’을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 일본과 중국이 각각 끌어안고 있는 중일전쟁을 상호 번역하기 위해서는 각자 자기의 기억을 찢고 상대의 기억을 그 자리에 쑤셔넣는 대수술을 감행해야 한다. 이 수술을 쑨 거는 역사로 ‘진입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소여(所與)’로서의 역사를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외피를 찢고 들어가야 한다고. 그러면서 우리에게 간청한다. 당신의 존재를 부수고 그 안에 중국을 밀어넣어달라고,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중화주의 ’ 같은 당신 안에 굳어진 틀을 부수고 중국을 읽어달라고. 중국을 읽을 때 생기는 공백과 전환을 피하지 말아 달라고.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쉬운 일이 아니다. 쑨 거 자신도 단칼에 자신을 찢어낼 메스를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진 않다.

 

반감이라는 계기

 

어쨌든 메스를 든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위험하지 않다면 사상이 될 수조차 없다. 쑨 거의 메스가 겨눈 첫번째 부위는 대담하게도 ‘연대와 침략의 이분법’이었다. 일찍이 그것에 맘먹고 칼을 댔던 타께우찌의 「일본의 아시아주의」나 「오카쿠라 텐신」은 연구자들이 은근히 기피하는 텍스트가 되어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방치되어 왔다. 타께우찌를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의 원흉이라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너무 싱거워 오히려 아무런 울림도 남기지 못한다.

 

이제 쑨 거가 다시 이 이분법에 도전한다. 쑨원(孫文)의 ‘대아시아주의’를 다시 읽고 오까꾸라 텐신(岡倉天心)의 ‘아시아는 하나’를 뜯어서 재독하는 과정에서, 또 하마시따 타께시(浜下武志)의 조공체제론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나는 반감이 일었다. 여기에 항변이라도 하듯, 그는 묻는다. 우리는 왜 동아시아를 말하는가. 단순히 내셔널리즘이나 대국주의를 해체하기 위해서라면, 그 자리를 차고앉을 다국적 세계화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우리 자신의 알맹이가 없다면, 동아시아는 누구의 동아시가 될 것인가,라고. 분명 이런 논리엔 위험한 부분이 있다. 문제는 그 위험을 찾아 골라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는 것이다.

 

국경이 낮아지고 교류가 늘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지식은 나날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감이라는 나의 감정구조를 찢고 들어오지 않는 한 진정한 지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아니 동아시아로 한정해도 남북한, 중국, 일본, 대만이 자기를 부수고 그 틈으로 상대를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그러나 넘쳐나는 ‘동아시아’ 언술 속에 사상의 빈곤이 두드러지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지난 세기 번성했던 아시아 담론이 결국 상대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로 미끄러지고 만, 그래서 사상형성의 기회를 놓쳤던 지난날의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다. 

 

 

백지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2014.11.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