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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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통증의 형식’과 ‘공감의 형식’

정홍수

정홍수

“생각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을 수도 있다”. 김희업의 시 「통증의 형식」(『비의 목록』, 창비 2014) 첫 행이다. 혹독한 아픔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일 테지만, 누구에게나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비슷한 경험은 얼마간 있을 법하다. 그렇게 무심히 시를 읽어가다 다음 구절에서 멈추게 된다.

 

오늘도 추운 곳에서 빙하가 녹는다 진리처럼 모순처럼 / 따뜻한 통증을 동반한 채

 

어떤 사실이 전혀 다른 맥락에서 살아나 “따뜻한 통증”의 모순을 담담한 진리의 요청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여기서 빙산 아래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고통의 빙하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읽는 이의 당연한 예의이겠지만, 그보다 두 시행이 극한의 고통과 모순 한가운데에서 찾은 ‘통증의 형식’이 너무나 담대하고 눈부시다. ‘사랑’이 있다면, 이런 ‘통증의 형식’을 경유해 가능하리라는 뜬금없는 생각마저 든다. 물론 시인은 안다. 통증의 형식은 ‘미완성’이라는 것을. 이어지는 마지막 연은 그 사실의 수락일 테지만, 체념이나 포기의 기운은 없다. “그러니/멀리 근처에도 통증은 있어/언젠가 상쾌할 거라는 가설은 미완성으로 남겨놓는다”.

 

생각해보면 통증의 소멸이 그 형식의 완성은 아닐 것이다(‘따뜻한 통증’도 엄연한 통증이다). 완성되지 않은 나머지 형식은, 이 시에서는 역설의 형태로 발화되었지만(“좁힐 수 없는 거리가 세상에 존재하듯/아프고 안 아프고의 차이는 아픈 차이”) 통증 건너편 세상의 몫일 것이다.

 

2014년을 돌아보며...

 

아픔과 슬픔이 많은 한해였다. 믿을 수 없는 바다 앞으로 직접 달려간 이들도 많았고, 광장은 애도와 나눔, 분노와 탄식의 마음으로 넘쳐났다. 그러지 못한 이들이라고 해서 마음이 달랐으랴. 혹한의 추위 속에 70미터 공장 굴뚝 위로 올라간 쌍용차 해고노동자 이창근, 김정욱 씨를 생각하며(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23일 현재, 화학섬유회사 스타케미칼의 노동자 차광호씨는 210일째 구미공장 굴뚝에 있으며, 씨앤앰 하청업체 노동자 강성덕, 임정균 씨가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에 오른 지도 42일째다. 이번에 트위터를 통해 처음 알았다) 잠시라도 따뜻한 잠자리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다.

 

그러나 사정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도 우리는 안다. 소수의 광기 어린 행동이라고는 해도, 세월호 유족들에게 어떤 험한 말들이 퍼부어졌는지 우리는 안다. 적어도 우리가 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겉으로 끄집어내어서는 안되는 말들이었다. 그리고 일부 언론의 저열한 이념몰이와 선정주의가 기이한 방식으로 부추기고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혐오와 적의, 냉소의 시선이 우리 사회 한편에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는 사실도 우리는 안다.

 

좀더 분명히 말한다면,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찢어져 있다. 피해자나 약자, 소수자, 배제되고 버림받는 사람들의 아픔과 같은, 당연히 연민과 공감의 마음이 먼저 스며들어야 할 자리에서마저 우리는 너무나 멀리 찢어져 있다. 그 정치적·구조적 원인과 근인의 이야기를 여기서까지 서투르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나 자신 간혹 스스로에게서 섬뜩하게 확인하는 그 분열의 연루, 종종 확인하는 냉담과 냉소의 바닥에 대해서는 고백해두고 싶다. 그리고 그럴 때면 나 스스로 ‘공감의 언어와 행동’, 앞서 인용한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공감의 형식’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익숙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당혹해지기까지 한다.

 

공감, ‘좁힐 수 없는 거리’의 모순을 생각하며

 

W. G.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문학동네 2014)에서 읽은 인상적인 삽화 한 대목이 떠오른다. 작가인 소설의 화자가 1980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베네치아로 떠나기 전에 오래된 지인인 에른스트 헤르베크를 방문한다. 헤르베크는 스무살이 되던 해부터 정신질환을 앓았다. 1944년 10월 군대에 징집되었으나 이듬해 3월 제대 조치되었다. 종전 1년 후 영구적인 입원 진단이 내려진다. 작가가 방문했을 때는 34년의 병원생활 끝에 가퇴원 처분을 받고 양로원에서 연금생활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양로원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근처 도시로 가을날의 한나절 소풍을 떠난다. 작가는 쓰고 있다. “휴가라는 기묘한 단어가 떠올랐다. 휴가철, 휴가철 날씨. 휴가를 떠나다. 휴가 중이다. 휴가. 일생 동안의.” ‘휴가’와 ‘일생 동안’의 낯선 언어적 동행이 이 가을소풍의 이야기를 압축한다. 두 사람은 걸어서 돌아오기로 한다. “두 사람 모두에게 너무 먼 거리였다. 가을의 태양 아래서 기진맥진한 채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초등학교를 지날 때 헤르베크는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돌연한 과거로의 회귀, 인생에서 일어나는 급작스러운 작별과 상실의 이야기를 나직하게 들려주기도 하지만, 식당에서의 담배와 맥주 한모금을 마지막으로(이때야 작가는 헤르베크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두 사람의 짧은 한나절 여행은 끝난다. 양로원 앞에서의 작별은 이 만남이 마지막일 거라는 암시를 준다. 가을의 뜨거운 볕 아래 말없이 지친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의 동행은 「통증의 형식」을 읽으며 ‘공감의 형식’이라는 말을 생각해보고자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상(像)이었다.

 

김희업 시인이 쓴 대로 세상에는 “좁힐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그 거리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아픈 이다. 그렇게 해서 어떤 이는 “따뜻한 통증”의 모순을 상상한다. ‘통증의 형식’은 미완성이지만, 그 미완을 조금이라도 메우는 일은 건너편 세상의 몫이다. 기실 우리는 언제든 그 양쪽에 함께 있다. ‘통증의 형식’에 응답하는 ‘공감의 형식’은 개인의 삶에서도 사회적 차원에서도 세심하게 이야기되고 상상되어야 한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4.12.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