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임종태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근대의 변방 조선을 오롯이 품다
- 임종태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 지리학 이해』
근대성과 같은 거대담론을 따라잡기엔 지식 밑천이 없는 나에게도 최근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하나의 담론으로 자리하는 것이 목도된다. 그 이유를 제기하고 답하는 것도 나에게는 도가 높은 오지랖일 것이라 염려하면서도 지식계 언저리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궁금함을 어찌하지 못하고 이러한 추측을 감히 제기해본다. 근대성에 대한 세계적 차원의 반성 흐름에 힘입고 동시에 근대성의 과제를 부분적으로 또는 부실하게나마 이행해 이제 숨 좀 돌리고 돌아볼 수 있는 내적 성숙기에 온 덕이라고. 한국인에게 근대성이란 문화적으로 서양에 일방적으로 입양된 것에 다름 아니었다. 흐릿한 전통의 기억을 뒤로하고 근대를 향해 자신을 매진해온 뒤 어느덧 성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이제, 전통과 근대가 분기한 그때를 되돌아보며 근대성에만 가려진 자신의 정체성을 복원해보는 때가 되었다.
중국, 서구 지리학의 침투와 전복
나는 한국 과학기술역사 연구자이자 교육자인 임종태의 『17,18세기 중국과 조선의 서구지리학 이해: 지구와 다섯 대륙의 우화』(창비 2012)를 한국의 근대성에 대한 고고학적 탐사라는 관점에서 읽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관점일 뿐 저자는 유물이 있어서 탐사하고 유물을 훼손시킬세라 조심스러운 고고학자의 위치를 견지한다. 그런데 적어도 내가 근대성이라는 관점에서 써먹고 싶은 재료 밑천이, 저자의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충돌 및 접합이라는 주제에 있다는 점에서 내가 아예 무관한 해석을 하고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저자 역시 ‘서양의 지리학’은 서양문명의 침투적 또는 적어도 팽창적 성격의 상징이자 수단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당시 외부에서 파고드는 서양문명을 동양사회가 직면한 ‘외부로부터의 근대성’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명대 말에 본격화된 서구의 동양(중국) 침투를 상징하는 인물인 마떼오 리치는 지리학을 동양문화권에 침투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그가 중국을 위해 그려준 지도는 중국을 지도의 중심에 놓는 타협책을 보여주지만 기본적으로 그의 지리학은 중화주의를 무력화시키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의 침투였다. 서구가 중국에 들여온 트로이의 목마로 해석할 만한 이 사건에 대해 저자는 해프닝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싱거운 해석을 한다. 중국이 특유의 문화적 어법인 중국의 원천 지적재산권 주장으로 희석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세세한 과정을 제하고 결과만 보면 서구의 동양(중국) 침투는 성공했다고 봐야 한다. 1800년대 중엽 아편전쟁 패배 이후 중국의 지식인들마저 중국에 대한 혐오 표현을 기탄없이 쓸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 서구와 중국에 대한 이중의 변방성
중국의 서양지리학 이해과정에 대해 ‘침투와 전복’이라는 전형적인 전쟁 내러티브가 부여된다면 한국에 있어서는 어떤 것을 부여할 수 있을까? 저자의 서술을 단순화하면 내러티브조차 없다는 것이다. 패배자도 전쟁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중국은 비련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한국은 서양문명의 동양침투라는 서사에서 이렇다 할 위치 자체가 없다. 저자는 ‘서론’에서, 애초에는 조선이 서양의 지리학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라는 문제에 답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 배경으로 중국을 연구했던 것인데, 결과적으로 중국은 하나의 주체로서 위치가 분명하지만 한국은 중국에서의 논쟁을 50~100년의 시차를 두고 일부 지식인들이 수입한 것에 불과했음을 발견했다고 설명한다. 거칠게 말하면 ‘한국의 서구 지리학 이해’라는 것은 ‘중국의 서구지리학 이해’의 ‘부록’ 수준밖에 안된다는 것일 게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을 주인공으로 상정했던 저자가 겪었을 좌절과 무력감이 짐작된다. 그러나 공들여 고고학적 탐사를 했는데 ‘별것 아닌’ 결과물을 얻는다면 허탈하겠지만 그것을 냉정하게 인정하는 것 또한 지식인의 본분이다. 한국이 서구의 근대성에 있어서 소외된 입장이었을 뿐 아니라 중국에 대해서도 주변부에 불과했다는 이 이중의 ‘주변부성’은 마음에는 내키지 않아도 머리로는 잊지 않아야 할 중대한 사실관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17,18세기 조선이 서구에 대해서도 중국에 대해서도 주변부밖에 안될지라도,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그것은 그것대로 중요한 기억이다. 친숙해야 할 존재임에도 낯설었던 친부모를 있는 그대로 만나서 받아들인다는 것 역시 정체성의 복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발굴하거나 재조명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그러한 친부모 같은 존재들이다. 이익, 홍대용, 서호수 등 조선의 근대적 담론에서 족적을 남긴 지식인들은 한국인에게도 ‘낯선’ 존재들이다. 성호 이익의 우주회전설이나 홍대용의 오늘날 우주관과 유사한 ‘초라한 지구’(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이론도 독자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한 주장이 전적으로 새롭지는 않지만 분명 조선의 탁월한 천재들이 보여준 재기발랄한 발상이라 할 수 있기에 그들 지식인의 후예로서 자긍심 또는 적어도 친근함을 갖게 된다. 서호수라는 정조 때의 지식인이 티코 브라헤의 천문 실측을 칭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흔히 조선의 지식인이 서양과학에 대해 ‘무지몽매’했고 근대과학은 1900년대 이후에나 들어왔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17,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은 그동안 ‘근대의 한국인’들에게도 주변부 대접밖에는 못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한국인에게 뉴튼은 홍대용보다도 먼 존재일 수밖에 없다. 임종태의 책을 통해 이익, 홍대용, 서호수 그리고 박지원 같은 16~18세기의 지식인들이 비록 낯설지만 만나자마자 순식간에 친근해지는 것은 문화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근대성의 고고학에서 확인되는 한국의 주변부성에 심리적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낯선 근대성을 전통의 언어로 조금이나마 친숙하게 하는 조선의 근대적 담론가들을 두레박 삼아 오르게 된다. ‘우물 안’이 현실임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일은 도약이고, 그것을 인정하는 선에서 우물 안도 그 구성원들에게는 크고 아름다운 터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얻은 지혜이자 위안이다.
김석현 / 독립기고자, 전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원
2015.4.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