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대통령은 왜 국회법 개정을 거부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판을 키우고’ 있다. 국회법 개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국회법 개정을 거부하는 자신의 행동에 어마어마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정치인들을 싸잡아서 모진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이며, 대통령이 국회의 결정에 재의를 요구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그런데 이번 일은 왜 이토록 시끄럽게 진행되는 것인가? 대통령이 이 일을 가지고 큰 싸움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거부권 행사의 숨은 의도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국회법 개정이 위헌이라고 하면서 그것으로 인해 생길지 모를 국정의 난맥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대통령이 위헌 문제를 그렇게 절실히 걱정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박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에는 이번에 여야가 합의한 것보다 훨씬 더 강제성을 가지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두번씩이나 발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추진했던 국회의원 때의 생각은 무엇이며, 지금 그것을 반대하는 대통령으로서의 생각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다. 따라서 지금 위헌이 걱정이라는 주장의 진정성은 믿기 어렵다.
박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을 그토록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회법 개정은 법률의 위임이나 취지를 벗어난 행정입법을 국회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는 세월호특별법시행령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하려는 야당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세월호특별법의 취지가 실현되기 어렵도록 행정부가 시행령을 마음대로 만듦에 따라 진상규명 활동이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국회법을 개정하여 그 시행령을 바로잡으려고 내놓은 것이다. 박대통령은 이런 정치적 맥락이 처음부터 마뜩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공무원연금법안에 대한 야당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 야당이 주장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수용해버렸다. 이것이 대통령이 정치인들을 싸잡아,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비판을 퍼부은 배경이다.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정치적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유승민 대표가 자기정치를 하느라 조직인으로서 본분을 다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배신이라는 말이나 자기정치라는 용어는 집단적 실천의 세계인 정치사회에서는 최고 수준의 비난과 불신을 담은 말이다. 대통령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유승민 대표와 같은 정치인은 선거에서 국민이 심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갈 데까지 간 말이었다. 정치인에게 선거에서 떨어지라는 말 이상의 저주는 없다.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국회법 개정을 반대하는 의미를 엄청나게 키워버렸다.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치인은 배신자고 자기정치를 하는 자며 선거에서 심판해야 할 자라는 싸움의 틀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정치싸움의 기술로 치면 박대통령을 제대로 상대할 정치인이 없다는 말이 맞다.
정치싸움으로 비화시킨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판을 키우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롯해 새누리당에서 대통령과 뜻을 달리하는 세력을 묶어서 무력화시키려 한다. 박대통령의 파벌은 새누리당에서 다수파가 아니었다. 그래서 국회의장 선거에서도 성공하지 못했고, 당대표, 원내대표 선출에서도 실패했다. 거기다가 박대통령과 뜻을 달리하는 세력은 틈만 있으면 대통령의 무능을 조롱하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가 그랬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훨씬 더 공공연했다. 그는 복지를 강화하고 세금을 늘리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박대통령이 대통령후보 시절에 취했던 통합노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의 주장은 국회연설에서 많은 사람의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청와대로서는 그 말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무능을 지적하는 것으로, 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데서 생긴 감정의 앙금은 보통이 아니었을 것 같다.
감정의 앙금만이라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국회의원 총선거의 공천문제와 관련한 권력투쟁은 훨씬 더 심각한 현실적 고민거리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 거부를 계기로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세력에 대해 전면적 싸움의 구도를 만들었다. 그것을 신호로 대통령의 파벌은 결집을 시작했다. 그렇게 하면서 싸움판에 들어와 있는 세력들에, 그리고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박근혜냐 유승민이냐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갈등적 상황을 만들면서 대결구도를 형성하고 지지세력을 결집하는 싸움의 기술은 정치적 승부사들이 택하는 전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계속되는 국정지지도의 추락으로 새누리당 내부에서조차 지도력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국회법 개정 거부를 고리로 싸움의 틀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대통령의 파벌을 단단하게 뭉쳐서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통령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이 아니라 한 정당 내부 분파의 이익을 위해 저토록 몰입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을 거부하면서 싸움의 판을 키우고 있는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5.7.1 ⓒ 창비주간논평